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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야 Jul 24. 2023

시차는 있어도 오차는 없다

인과응보

 사실 이 내용을 써도 될지 조금 망설였다.

 얼마간 고민을 하다가 결국 쓰고자 마음먹은 이 사건은 하필 법적으로 이혼이 성립된 마지막 조정일에 마치 짜 맞춘 드라마처럼 벌어졌고, '정말 잘 한 이혼'이라는 관계의 완벽한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이혼 조정이 성립되던 날, 몇 시간에 걸친 마지막 지질한 공방전 끝에 판사 앞에서 확인 서명을 했다. 비가 왔고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개운하면서도 그리 편안하지는 않은, 그렇다고 또  아쉽거나 슬프지는 않은 복잡한 느낌.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온 결말이 반갑고도 씁쓸한 귀갓길이었다.


 친구 J를 잠시 만나고, 다시 시골로 돌아갈 짐을 챙기는 중이었다.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정체불명의 동영상과 함께.

 '000 아시죠? 지금 저의 아가씨와 이렇게 놀다가 저희에게 걸렸습니다. 지금 즉시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합의보고 (영상) 지우라고 하세요. 주소록 지인들에게 지금처럼 보낼 겁니다'


 000은 전 시아버지의 성함이었고, 영상 속 분할 화면에는 홀딱 벗은 채 가슴을 내놓은 젊은 여자와 그분이 있었다. 화상채팅으로 음란행위를 하는, 그런 종류의 동영상이었던 것이다. 얼굴과 중요부위가 고스란히 찍힌 역겨운 동영상을 보았음에도 나는 상황 판단이 되질 않았다.

 자 다시 말하면, 나는 상대방의 유흥업소 및 성매매로 이혼을 했고, 그 이혼이 성사된 바로 '그날' 전 시아버지의 음란채팅 동영상을 받은 것이다. 이 무슨 말도 안 되고 드라마 같은 일이냔 말이다.


 한동안 대체 내가 뭘 본 건지 믿기지가 않아서 그 문자를 몇 번이나 읽어보았다. 그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 동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던 중에도 현실감이 없었다. 절대 합성 따위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영상, 그분이 맞았다. 전남편의 부정행위 증거를 수집할 때는 손이 달달 떨리고 심장소리가 관자놀이에서 들렸는데 이건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불분명한 어법, 맞춤법 등을 보면 아마 그 아버지는 제3 국 사람들에게 일명 '몸캠 피싱'을 당한 모양이고, '며느리' 등으로 저장되어 있을 내 연락처로 협박성 문자가 온 것 같다. 이미 끝난 사이이니 내 얼굴에 침 뱉는 격은 아님에도 내가 너무 수치스러워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사태 파악이 되자마자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면접교섭이고 뭐고 이런 집구석에 내 아이를 절대 보낼 수 없었다. 당황한 변호사도 어안이 벙벙해서 몇 번이나 상황을 묻고 또 물었다. 그 또한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으리라.

 당일에 합의가 끝난 면접교섭안을 이제와 바꿀 수는 없더라도, 몇 가지 제한적인 대응 안을 마련할 수는 있었다.

통화 막바지에 문득 변호사가 말했다. 아마 내가 이 문자를 받은 사실을 안다면, 그가 면접교섭에 안 올 수도 있겠다고. 리고 나의 '탈출'을 축하한다고 했다.

 

 탈출. 그래, 탈출. 길었던 어두운 시간 한 단어로 압축되었다. 내가 겪은, 혹은 겪어야 했을 수모와 모욕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저 단어에 갑자기 머리가 맑아졌다.


 내가 이런 문자를 받은 걸 보면 분명 그 가족들 모두에게도 발송되었을 것이다. 갑자기 그들이 겪을 수치와 난장판이 눈앞에 펼쳐졌다. 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스스로 자멸해 버린 부자(父子)그의 아내이자 어머니, 이제 더 이상 그들과 관계없는 나.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어둠은 빛 앞에 드러나게 되어있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감히 나의 이혼을 성경에 비유할 수는 없겠지만, 내게는 완벽한 출애굽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21세기 탈출기가 아니고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날 저녁 나는 웃었다. 남의 불행에 웃을 일은 아니지만 내가 벌인 일은 아니지 않은가. 자칫 우울함으로 기억될 '이혼한 날'이 그들의 자폭으로 인해 완벽한 끝맺음이 되었다.


 사실 이혼이 확정되면 나는 그 부모에게 정확한 이혼 사유를 보낼 생각이었다. 본인들도 자식을 키운 부모이니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최소한 그가 아이에게 부끄러운 아버지로 기억되지 않도록 그 가족들이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건 내 아이를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말이다.

 그러나 더 이상 구구절절 메시지를 보낼 필요도 없어졌다. 이미 그의 아버지는 SNS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모두 지운채 잠적했고, 나는 그와 그 어머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러한 불쾌한 영상과 협박성 문자를 받았는데, 나는 더 이상 당신들의 가족이 아니니 이런 연락받지 않도록 단속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자질구레한 자신의 물건을 보내달라는 요구를 했던 그는 저 메시지를 끝으로 더 이상 말이 없었고, 그 어머니는 '알겠어요. 끝까지 가정을 지켰으면 좋았을 것을'이라는 답변을 보냈다. 마지막까지 내 탓을 하는 것으로 느껴졌지만 더 이상 깊게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나는 끝내 답을 하지 않고 그녀와의 채팅방을 삭제했다. 그래, 당신은 아들의 모든 부정함을 감쌌듯 남편도 그렇게 이해하고 사시라는 묵언의 답변이었다. 더 이상은 숨은 뜻을 해석하거나, 그들의 언어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다.


 그날은 속없이 통쾌해했지만, 저런 종류의 피싱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니 나는 그들이 조금 안쓰럽기도 하다. 본인의 분명한 잘못으로 걸려든 것이라 해도 어쨌든 범죄의 희생양이 된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가까이서 위로도, 도움도 줄 수 없고 그저 그들이 더 이상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를 빌어줄 뿐이다. 그리고 제발 내 아이를 위해 심각한 범죄에 연류되지 않기만을 바란다. 어쨌든 나, 이혼하길 잘 했다.


 한 순간의 욕구나 잘못된 판단으로 한 가정이 해체되고 때론 오랜 시간 어려움을 겪는다. 나도 겪었고, 누군가도 겪고 있고, 또 어떤 누군가는 이 상황을 알지 못한 채 껍데기를 믿고 산다. 사람의 마음을 농락하고 속이는 것은 그 본질에 있어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의 이혼은 이러한 사건으로 인해 일말의 아쉬움도, 서러움도 없이 끝을 맺었다.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결말이 있을 수 있냐고 가족들은 혀를 내둘렀지만 나는 이래서 인과응보니 권선징악이니 하는 말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내가 쓰면서도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어떻게 이렇게 자로 잰 듯 같은 종류로 자체 복수극을 벌일 수 있는지. 그러나 한편으로는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 하필, 지금 내가 이혼한 날 벌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이밍이 좋았다, 아니 완벽했다. 어쨌든 이 사건과 함께 그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다. 내게 어떠한 비난도, 모욕도 더 이상 와닿지 않으니 나는 그저 완벽한 해방감을 느낄 뿐이다.


 언젠가의 글 '비밀은 없어'에 이런 말을 쓴 적이 있다. 인과응보에 '시차는 있어도 오차는 없다'는 것. 인간은 더없이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이고, 모든 섭리를 내 손에 쥐고 흔들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삶은 더욱 놀랍고 소중하며, 때로는 두려운 것이다.

 


타이틀 이미지

 Ads of the World ,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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