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간의 시골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니 본격적인 무더위가 한창이었다. 오자마자 더위에도 아랑곳 않고 대대적인 정리 정돈을 하며 그의 자취를 몽땅 들어내었다. 삼복더위에 이게 무슨 고생이냐며 가까운 가족과 지인들은 나를 말렸지만, 더위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내 이혼의 진짜 마무리는 함께 살던 공간을 정리하며 묵은 먼지를 탈탈 털어내는 것이었나보다.
처음에는 그를 생각나게 하는 물건들을 처분할 계획이었는데, 어쩌다 셀프 리모델링에 가까운 뚝딱거림으로 몇주를 보내고 나니 이제 내 집은 이전과는 꽤 달라 보인다.
머무는 공간을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차분히 바꾸어가는 과정은 분명히 즐겁다. 땀을 담뿍 흘리며 집을 꾸미며 나는 내 마음의 방도 청소하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내 취향대로 공간을 탈바꿈시키며 나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몇 가지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었다. 집안에 노란색 계열의 물건이 많은 것을 이제야 알았다. 새로 고른 페인트나 소품들도 대부분 뭉근한 버터색 같은 옐로 계열이라, 마구잡이로 고른 듯해도 의외로 서로 잘 어울린다. 아이가 노란색을 좋아하는 것도 알게 모르게 한몫했으리라.
베란다에 작은 화단을 만드는 중이다. 공간이 좁아 많은 식물을 키우지는 못하지만 하나둘씩 늘어가는 작은 초록들이 평화를 준다. 며칠 전, 처음으로 화원에 가서 식물을 샀다. 가드닝 초짜 티를 팍팍 내며 이것저것 식물 이름을 물어보고, 가장 키우기 쉬운 것들을 추천받았다. 고심 끝에 잎사귀가 물감으로 그린 듯, 그래피컬한 느낌이 물씬 나는 뷰티스타를 샀다. 옆자리에 새 친구를 태우고 돌아오는 길에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아이가 처음으로 그린(그렸다기보다 아무렇게나 선을 그은) 그림을 걸고 비슷한 무드의 러그를 그 앞에 놓았다. 노랗고 파란, 알록달록한 무늬가 있는 패브릭으로 장식된 거실에서 노는 아이를 보면 나도 동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강렬한 원색이 주는 에너지에 푹 빠져 하루를 보낸다.
대청소를 하다가 선반 뒤편에서 묵인 먼지를 잔뜩 입은 잡동사니들을 발견했다. 포장도 뜯지 않은 작은 레고 박스, 언젠가 친구가 선물해 준 캔에 든 향초, 여행 중에 구입했던 빈티지 소품 등 철저히 나의 취향인 예쁜 물건들. 참 한결같은 취향에 웃음이 났다. 지금도 여전히 마음에 드는, 어디에 놓아도 어색하지 않은 나다운 물건들을 만지작대는 것 만으로 힐링이 된다.
버리고, 채우기
분명히 공간은 심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바바라 페어팔은 그의 저서 <공간의 심리학, 서유리 옮김, 2017>에서 공간이 어떻게 사람을 움직이고 심리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는지, 그 환경적 요소와 심리의 관계성을 논한다. 나는 언젠가 논문을 쓸 때 이 책을 읽은 적이 있지만, 요즘 들어 다시 읽어보니 저자의 시선과 메시지가 조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내가 심리적 안정을 위해 집을 뜯어고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공간의 작은 요소를 바꾸는 것 만으로 정신적인 안정감이 드는데, 딱히 가구를 새로 사지 않아도 기존의 것을 리폼한다던지 위치를 옮기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특히나 나의 경우에는 그와 같이 살던 집에 머무는 것이므로 왠지 집 분위기 자체가 무겁고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아 이 작업이 더욱 중요했다.
페인트를 두껍게 바른 묵직한 현관문에 올리브 잎으로 만든 리스를 달고나니 지난 과거의 나쁜 기운들이 빠져나가는 듯했다. 올리브의 꽃말이 평화와 지혜, 안전이라고 하니 더욱 마음에 든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여기에 전구를 달아야지, 생각하면서 진심으로 기뻤다. 앞으로 올 그 어떤 날을 행복한 마음으로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나를 안도하게 한다.
페어팔은 특히 철저히 개인적 취향에 근거한 '예쁜 물건'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의 생활이 어떻게 심리적 안정감과 만족감을 주는지를 시사한다. 나는 이 부분에 극히 공감한다. 가장 나다운 것들을 주변에 두면서 개인의 헤리티지를 정립하는 것. 눈길이 가는 구석구석에서 작은 만족을 주는 내 눈에 '예쁜' 것들을 두는 것. 이렇듯 취향을 확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다시금 깨닫는 것은 자존감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가 주로 쓰던 가구나 물건들은 죄다 내버렸음에도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물품이 있다. 그가 책상으로 쓰던 내 화장대.
끝까지 이걸 버릴까 말까 고민했지만, 큰맘 먹고 구입했던 좋은 나무의 단단함이 아쉬워 결국 리폼을 했다.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에서 한동안 잊고 살던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기억해 냈다. 모양을 완전히 바꾸고, 새로 칠한 화장대 여기저기에는 여전히 오래된 흠집이 남아있다. 본질을 그대로 지닌 채, 새로운 모습으로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화장대를 볼 때마다 나는 조금 감동한다. 나 역시 여기저기 상처 입고 흠집이 났어도, 나는 새롭게 나를 재정립하고 일어서는 중이다.
그러니 환경과 공간의 변화가 얼마나 뿌듯하고 가치 있는 일인가. 이렇듯 소소한 시도들을 통해 개인의 역사를 다시 쓰기도 하는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