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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즈 Apr 04. 2023

양면성, 생명의 존엄성과 윤리적 문제에 대해

프랑켄슈타인

오늘은 SF장르의 원형이라고도 하는 고전 <프랑켄슈타인>에 대해서 서평과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랑켄슈타인> 속 주제의식과 해석은 아직까지도 분분한데요. 크게,

인간의 양면성

차별과 소외

생명의 존엄성

인간의 권리

다양성의 범위


그리고 그 시대상을 고려해 봤을 때는

노예해방

여성차별

러다이트운동

으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SF소설장르와 책표지와 주제에 충실하기 위해제가 선정한 주제는 '양면성'입니다.


현대판 프로메테우스라고 하는 <프랑켄슈타인>.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신화에서 인간들에게 불을 가져다준 신입니다. 여기서 불이 인간에게 이로움과 파괴성 양면의 모습이 있지요. 과학도 불과 같이 인간이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이로움과 파괴성이 공존하기에 양면성이 존재합니다. 과학의 양면성으로 우리의 삶이 윤택하게 발전하고 있음과 동시에 우리의 목전의 문제로 다가온 로봇, 인공지능, 복제의 윤리적 문제와 이들과 함께 공존하여 살 수 있을 것인가. 선과 악의 양면성,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로즈의 책서평&생각거리


 로봇과 인공지능, 복제의 인조인간 등 인간을 대체하는 무언가 생명을 탄생시키는 건 '인간'입니다. 과학으로,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인위적인 힘을 가하여 발명과 발전을 꾀할 때는 그것이 미치게 될 영향에 대해서 반드시 생각해야 합니다. 목표를 설정할 때는 적어도 목적이 있어야 하며 그 일을 행할 때는 사후 일어날 파급효과와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관점에서 계획수립이 필요합니다. 일례로 현재 무분별한 계발로 환경이 파괴되어 겪는 여러 부작용도 후손들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소설에서는 '인간'이 하나의 창조물을 생명으로 탄생을 시켜놓고 내가 생각한 바와 다르다 하여 무책임하게 버리고 도망갑니다. 그리고 그 창조물은 인간을 파괴하게 됩니다.


 빅터 박사의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입니다. 괴물의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이 아니지요. 괴물은 이름조차 없습니다. 거대한 몸집과 위압감과 다르게 내면은 여리고 순수합니다. 살아 움직이고 사고할 줄 알고 심지어 감정도 느낍니다. 배우고 싶어 하고 사랑하고 사랑을 받고 싶어 하며 관계를 만들고 싶어 하고 가족을 필요로 합니다. 행복해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괴물은 자신의 진심 어린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디에도 존속되거나 이해받지 못하고 단지 외모가 기괴하다는 이유로 배척당합니다. 극심한 외로움과 좌절감을 느끼고 처음 마음을 주었던 인간들에게 믿음을 배신당하자 처음에 순수하고 선했던 괴물은 절망하고 그 분노는 자신을 창조해 낸 창조자에게 향하게 되며 점차 악으로 변하게 됩니다. 본인이 이해받지 못했단 이유로 복수심에 불타버린 그의 악행은 자비가 없고 잔인하고 처참합니다.


 호기심으로 창조했으나 두려움에 도망간 창조자, 괴물의 외모와 내면의 차이, 선과 악, 모두 양면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의도하든 의도치 않았든, 자의식이든 외부로부터 온 영향이든, 아님 그저 시대적 흐름이나 사회적 관념과 인식이든, 어떠한 요소들에 의해 모든 건 극단으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은 늘 양면성을 띱니다. 기만과 위선이 그것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표현이지요. 그리고 처음 목적했던 순수한 의도를 지속적으로 관철시키지 못한다면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목표지점이 다다르게 됩니다. 그것이 만약 좋지 못한 결과라면 '의도하지 않았다'라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괄하게 되지요.


 인류에게 도움이 되고 확실한 발전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일에는 어떨까요? 하지만 그러한 결과를 위해서 수많은 목숨이 희생되어야 하고 자연과 환경이 파괴되고 불법과 탈법이 자행되고 수단을 가리지 않는 과정은 용납될 수 있을까요? 이런 부분을 고심하는 것이 윤리적인 문제라 생각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타협을 해서는 안 되는 고귀하고 신성한 영역이 있습니다. 바로 생명의 존엄성입니다. 생명은 소중하고 숭고하며 어떠한 이익이나 이윤을 위해서 희생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생명은 목적이 되어야지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에게는 그것이 인권으로 표현되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인간 외의 생명은 어떨까요? 인류를 위해 그들의 희생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으며 윤리적인 범위는 어디까지이고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런 기준은 누구의 관점일까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인간은 신중하고 책임감을 지녀야 합니다. 본인이 하는 일에 옳은 신념을 가지고 범지구적인 사명감을 지니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개인의 욕망과 욕심에 의해서 그 어떠한 것도 쉽게 희생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항상 최선의 방법을 모색해 보고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안들을 간과하지 않으며 윤리적인 시각에서 다시 한번 더 고심해 보는 태도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과학이 우리에게 엄청난 편의와 편리를 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4차 산업시대로 로봇과 기계와 공생하는 시대입니다. 이제는 과학과 기술이 선택의 영역이 아닌 필수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켄슈타인>은 우리에게 많은 의문점과 생각거리를 던져주며 경각심을 알려주는 소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랑켄슈타인' 작가 <메리 셸리>의 삶.

암흑한 시대 속에서도

정말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많은 불행들을 연속으로 겪게 되는데도

문학창작활동을 어어나가고

예술로 승화했던

그녀의 삶에 존경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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