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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스띠모 Sep 21. 2023

몽골 | 욜링암

초원에 누워서 첫키스를 할 거야, 3 Weeks in Mongolia


‘욜'새가 살았던 곳.


몽골에 이런 곳이 있을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곳.


몽골 여행 3일차, 오늘은 욜링암에 간다. 3일 된 몽골이 좋냐고 묻는다면 아직까진 실망스러웠다고 대답하겠다. 바가가자링촐로, 차강소브라강 모두 내가 생각한 만큼 좋진 않았다. 그나마 흥미로웠던 건 과거에 바다였던 차강소브라강이라고 해야하나. 나 혼자만 별로라고 느끼는 줄 알았는데, 다들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나중에 지아씨가 말해줬는데 차강소브라강까지는 몽골 진짜 별로라고 생각했단다. 비단 나만의 생각이 아니여서 다행이다. 그래서 사실 욜링암이 별 기대는 되지 않는다.


욜링암은 과거 소련이 몽골을 지배하던 시절 냉장고로 썼을 만큼 추운 지역이라고 한다. 얼마나 춥길래 냉장고로 썼을까. 지금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그 정도는 아니라던데. 라는 말을 하며 푸르공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우리의 일정에 따르면 욜링암에서 승마체험을 하기로 되어있었는데, 비수기라 욜링암에 말이 없을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별 상관은 없었다.



다행히 욜링암에 도착했을 때 말이 있었다. 말을 타기 전 입구 앞에 있는 노점상에서 갖가지 기념품들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내 눈에 들어온 건 이 모자 하나였다.



당장이라도 사야할 것 같았다. 6만 투그릭이라는 가격 때문에 사실 고민했다.


결국 사버린 모자

말을 타고 3km를 계속해서 걸어간다. 혹시 몰라서 미러리스 카메라를 차에 두고 왔는데, 내 몽골 여행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을 고르라면 이 날을 고를 것이다. 욜링암은 푸르공에서 봤던 몽골 여행 책으로는 충분하게 설명되지 않았다. 그에 비해 훨씬 아름다웠다. 돌산으로 둘러쌓인 협곡과 파란 하늘, 욜링수(?). 이보다 완벽할 수는 없었다. 욜링암이 내게 아주 극적인 장소로 남아있는 이유는 바가가자링촐로와 차강소브라강에 갔을 때 날씨가 흐려 제대로 보질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여행 마지막 날 푸제가 ‘차강소브라강 날씨 좋았으면 조금 더 예뻤을 수도 있어'라는 말을 남긴 걸 보니, 평소에는 굉장히 아름다운 곳인가보다. 물론 우리가 갔을 때 예쁘지 않았다는 건 아니였다.

1급수라서 마셔도 된다는 말에 욜링수로 갈증을 잠시나마 해소시켰다. 너무 시원해서 계속 마실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배탈은 안 났답니다.


욜링암은 여행 중에도,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계속해서 회자되었다.


“나 욜링암 하루만 더 있고 싶었어”


“난 3일"



그도 그럴 것이, 욜링암에서 묵었던 숙소가 우리 몽골 여행 숙소 top 3에 들기 때문이었다.

울란바토르에서는 추위에 떨고, 첫 날부터 제대로 씻지 못한 나는 (물론 첫 날에는 온수가 나왔지만 추워서 화장실에 가는 것 조차 싫었다.)

근 3일만에 제대로 된 샤워를 했다. 심지어 샤워실은 과장 보태서 리조트 급이었으며, 푸세식 화장실이 아닌 양변기가 있었다.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이후로 이렇게나 편안하고 따뜻한 숙소는 여행 마지막 날까지 만나본 적이 없다.

채소가 있던 아침

또 한 가지, 욜링암이 top3에 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식사였다. 몽골에 가기 전, 양고기 매일 먹어도 괜찮겠냐는 지인들의 말에 ‘없어서 못 먹어요. 음식은 중요하지 않아요.’라며 호기롭게 대답했지만 나는 한국에 돌아온지 3개월이 되어가는 지금도 양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다. 누군가 메뉴를 고르자고 하면 양고기 빼고요. 라는 말을 필수로 하게 된 안타까운 후문이 있다. 한국에서는 세 끼 중 최소 두 끼에 녹색 채소를 먹는 내게 온통 갈색 고기밖에 없는 몽골 식단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근 이틀 간 화장실에서 큰 일을 절대 볼 수 없을 것 같은 비주얼의 식사를 해왔었다.


욜링암 숙소는 아늑한 게르, 완벽한 화장실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식사까지 완벽했다. 녹색 채소와 계란 등등. 한국에서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몽골에선 당연하지 않았다. 내가 저녁에 먹을 채소가 없으면 집 앞 편의점에 가서 사올 수 있지만 몽골에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만큼 내가 당연했던 것들이 이 곳에선 얼마나 힘든 건지 깨달았다.




가장 크게 깨달았던 건,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음식을 한 번도 가리지 않았던 내게 몽골 음식이 가장 최악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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