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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스띠모 Oct 05. 2023

몽골 | 별 걸 다 먹는 몽골

초원에 누워서 첫키스를 할 거야, 3 weeks in Mongolia

조금 일찍 일어난 우리는 알타이 마을을 산책했다. 그 숙소가 65년이 되었다면 이 마을이 만들어진지도 꽤나 오래되었다는 소리인데, 또 다시 이상한 호기심이 생겼다. 이 도시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위키피디아에도 검색해보았지만 2008년 기준 인구가 15,800명이라는 것 외에는 별 다른 정보가 없었다.


아침을 해결해야 했지만 그 오래된 숙소에 식당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우리는 근처 슈퍼마켓에 들러 라면같은 간편 식품으로 간단한 아침을 해결하기로 했다. 몽골에 있을 때 라면을 꽤 자주 먹었지만 사실 라면은 내가 한국에서 절대 먹지 않는 음식이다. 대학교 시절에 너무 많이 먹은 탓인지 언제부턴가 라면을 끓여먹지 않게 되었다. 점심이 지급되지 않는 회사에 다닐 때에도 입사 초기에만 라면을 몇 번 먹고 이후로는 입에도 대지 않았는데, 몽골에서만 몇 번째 라면인지. 그런데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사람은 굶겨놔야 음식에 대한 소중함을 안다고 했나, 나는 굶김을 당하지도 않았는데 그저 몽골의 음식들이 입맛에 너무 안 맞아서 라면이 맛있을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의 이야기는 몽골음식에 관한 이야기다. 우선 현재의 나를 말하자면, 양고기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속이 울렁거린다. 몽골 여행을 가기 전의 나는 양고기를 없어서 못먹는 사람이었다. 음식에 돈을 많이 쓰지 않는 내게 양고기는 늘 비싼 음식에 속해왔기 때문에 정말 맛있는 걸 먹고 싶은 날 ‘날을 잡고' 먹는 음식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양고기를 매일 먹는다는 건 내게 전혀 문제없는 일이었다.


몽골의 양고기는 음… 뭐랄까.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맛이다. 한국의 양고기는 양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냥 다른 고기라고 보는 게 맞겠다. 먹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를 맛이다. 돼지고기 비린내와는 다른 차원의 냄새가 난다. 몽골은 우리나라처럼 어린 양을 잡지 않고 다 큰 양을 잡아 먹기 때문에 어린 양보다 당연히 냄새가 날 수밖에 없는데, 고기에 간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그냥 ‘익힌 양고기'를 먹는다고 보면 되는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음식때문에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육백수 중에는 나, 나무언니, 준수 세 명이 양고기에 거부감을 많이 느꼈고, 유진언니, 지아씨, 준열이는 잘 먹었다. 사람마다 비린내를 느끼는 정도도 다르니 이건 도저히 먹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몽골 여행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앞으로는 쌈장이나 고추장, 김을 제발 가져가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몽골에서 정말 다양한 음식을 먹었다. 양, 야크, 낙타, 말, 소, 돼지 등.

1인당 하나도 먹지 못한 몽골 만두

양고기는 보통 구이였지만 두어번 정도 양고기로 만든 만두를 먹었는데, 나는 몽골 만두가 몽골에서 가장, 아니 내 인생에서 가장 먹기 힘들었던 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글을 쓰다 보니 또 속에서 몽골 만두가 올라오는 것 같다. 아무튼. 몽골은 양고기를 그렇게나 좋아하던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좌) 소고기인줄 알았던 야크고기

야크고기는 우락부락한 야크의 비주얼처럼 굉장히 씹기 힘들고 질겼으며, 낙타를 딱딱하게 굳혀 만든 낙타고기는 굉장히 기름지고, 약간 사골국에 들어갈 것 같은 비주얼의 고기였다. 사골국 맛이 나는 수테차와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나는 한 입 먹고 내려놨지만 준열이가 끝까지 남아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준열이는 대부분의 식사에서 끝까지 남아있는 1인이었다.

말고기는 많이들 먹어봐서 알 수 도 있지만 <양, 야크, 낙타, 말> 중에는 가장 내 입맛에 맞는 고기였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익히 아는 그런 맛이었다. 그나마 살 수 있었던 건 ‘가이드 요리' 일정에 푸제가 구워주는 삼겹살 덕분이었다. 때문에 나는 일정표를 매일 확인하며 ‘현지 식당'이 아닌, ‘가이드 요리'가 적힌 날을 오매불망 기다리고는 했다.



한 번은 작은 마을에서 마트에 들렀는데 삼겹살이 없는 것이다. 서몽골의 특징 중 하나가 카자흐스탄인의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무슬림인 그들의 문화적 특징으로 인해 삼겹살을 찾기 어려운 것이라고 푸제가 말했다. 총 세군데의 마트를 들렀는데 조금의 삼겹살도 찾을 수 없었다. 우리의 유일한 선택지는 닭볶음탕이었고 푸제는 닭볶음탕보다 삼겹살을 더 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유진언니가 푸제에게 고기가 없어도 괜찮다고 얘기했는데, 당시 몽골 현지식에 예민할 대로 예민해진 준수와 내게 삼겹살은… 정말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먹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우리 둘 다 굳은 얼굴로 ‘이젠 안 괜찮아'라는 대답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결국 삼겹살을 못 찾고 닭볶음탕을 먹었지만. 닭고기가 어디인가.



음, 전기, 데이터, 샤워의 소중함을 알게 됨과 더불어 음식이 내 생각보다 살아가는 데 중요한 요소라는 걸 깨달을 수 있던 아주 진귀하고 다시는 안 해도 될 것 같은 경험이었다.


이렇게 양고기에 힘들었던 3인방에게도 단 한 번, 양고기가 정말 맛있었던 날이 있었다.


바로 ‘허르헉'


몽골의 전통 요리로, 뜨거운 돌에 양고기를 쪄서 만든 요리이다. 가이드 푸제의 말에 의하면 이런 요리라고 한다.

“가장 높은 요리에요. 명절이나 귀한 사람들 왔을 때 하는 요리예요"


허르헉

몽골에 가기 전 가장 궁금했던 요리가 허르헉이었지만 이미 양고기에 거부감이 생길 대로 생겨버린 나는 허르헉을 기대조차 하지 않았었다. 하르노르 호수 숙소에서 점심으로 허르헉을 먹게 되었는데, 그냥 양고기겠거니 싶어 입을 대기가 두려웠다. 그런데 어떤 레시피로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허르헉에서는 내가 그동안 먹어왔던 양고기 맛이 나지 않았다. 나 뿐만 아니라 준수, 나무언니도 너무 맛있다며 잘 먹을 정도로 신기하게 비린내가 없었다. 그 동안 나무언니는 숟가락을 가장 먼저 내려놓던 사람이었는데 이 날 처음으로 나무언니가 맨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1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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