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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스띠모 Oct 11. 2023

몽골 | 타왕복드로 가는 길

초원에 누워서 첫키스를 할 거야, 3 weeks in Mongolia


‘몽골 최서단에 가면 타왕복드라는 몽골에서 가장 높은 산맥이 있대'

라고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 하나로 시작된 이 여정. 지금 생각하니 ‘한국 제주도에 가면 한라산이라는 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 있대' 라는 말과 뭐가 다른가 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지나간다. 학창시절에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호기심을 표출할 길이 없었던 탓인지, 성인이 된 후, 정확히 말하면 여행을 시작한 이후 어떤 분야든 간에 직접 부딪히며 늘 호기심과 맞서 싸워왔다. 타왕복드도 내 호기심 중 하나였다. 그 거대한 산에 둘러쌓여 잠시 누워도 있어 보고, 지금껏 내가 살아온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와 거대한 몽골에 대해서 생각도 좀 해보고, 멋지게 사진도 찍고, 그러고 싶었다.

아르바이헤르, 알타이, 홉브드, 바앙울기를 지나 타왕복드에 가는 길이었다. 서몽골로 나아가는 길에 서몽골에는 카자흐스탄 사람들의 거주 비율이 굉장히 높다고 한다. ‘그래도 언어는 비슷하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만난 카자흐스탄인들은 몽골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유일하게 통하는 언어라고는 몽골의 ‘센베노'와 비슷한 ‘세노'라는 인삿말 하나 뿐이었다.

잠시 점심을 먹으러 들렀던 곳에서 흔쾌히 우리를 반겨준 집은 돌 산 아래에 사는 카자흐스탄 가족이었다. 역시나 말은 통하지 않았다. 푸제는 늘상 하듯 마당에 테이블을 펴고, 점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아와 유진이 사라져 찾아보니 집 안으로 초대를 받은 것이었다. 따라서 들어가니 할머니가 따뜻한 눈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몽골 냄새가 잔뜩 배인 빵을 몇 입 베어물고는 가족들과 대화를 하려고 했지만 몽골어를 아예 할 줄 모르시는 듯 했다. 몽골어와 카자흐스탄어를 할 줄 모르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 번역기를 사용하려고 해도 문명에서 벗어난 타왕복드라는 곳은 우리의 대화를 호락호락하게 허락하지 않았다. 이 집에는 아이들이 넷 있었는데, 몽골에서 인기가 많다는 블랙핑크나 방탄소년단을 혹시나 알까 싶어 물어봤는데 아이들은 대답이 없었다. 그래. 전화 신호도 안 잡히는 곳에서 유튜브를 볼 리가 만무하다.

우리가 식탁에 앉아서 바디랭귀지로 열심히 대화를 시도하고 있을 때, 저기 방 한 켠에 2살 정도 되어보이는 아기가 있었다. 유진언니, 지아씨, 나 셋 모두 아기와 인사하려고 다가갔는데 모두 거절당했다. 내가 아기여도 갑자기 웬 큰 사람 3명이 델을 입고 냅다 다가오면 무서워서 자지러질 것 같다. 지아씨는 몽골의 아이들과 소통하고자(?) 한국에서 지아씨의 어머니가 만든 뜨개질 인형을 몽골에 두어개 정도 들고 왔는데, 그 동안은 아기들을 발견해도 푸르공 트렁크 안에 있는 캐리어를 꺼낼 수가 없어 한 번도 개시하지 못한 상태였다. 마침 오늘은 푸제가 요리를 하고 있어 푸르공에 있는 짐을 밖으로 모두 빼놓아 캐리어에 달린 뜨개질 인형을 가져와 전해주기로 했다. 인형을 보고도 처음에는 무서워서 겁에 잔뜩 질린 표정이었는데, 이내 배시시시 웃으면서 인형을 손에 꼭 쥐었다.


라면을 간단히 먹고 가려는데 지아씨가 뭘 굉장히 맛있게 먹고 있었다.

 

“이거 먹어봐 진짜 맛있어”


먹자마자 미각이 붕괴되었다.


“맛없는데 일단 웃을게요"


최대한 내 감정을 티내지 않고자 하하하하 웃었다.


“진짜 맛없어?”


“네 진짜 맛없어서 뱉어야 할 것 같아요"


라는 말을 남기고 혼자 하하하하 웃으며 저 멀리 구석에 가서 살짝 뱉어냈다. 암만 생각해도 나는 몽골의 유제품과 잘 맞지 않는 듯 했다. 몽골에서 거의 매일 아침마다 버터를 먹었지만 이렇게 먹기 힘들었던 버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마지막이었던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그렇게 충격적인 버터를 맛보고 나서 푸르공에 탔는데, 이동 내내 버터 맛이 입 안에 그대로 맴도는 기분이었다. 차 안에서 양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전에 동남아 배낭여행에 갔을 때 누군가 준 두리안 과자를 먹고 하루종일 입 안에 두리안을 머금었던 찝찝한 날과 비슷한 하루를 보낼 것 같아 느낌이 좋지 않았다.


산이 점점 가까워질 수록 길은 더욱 가팔라졌고, 푸르공은 말 그대로 돌 산을 뚫으며 가고 있었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타왕복드에 가는 길. 하지만 이 도로라고 생각되지도 않는 길을 계속해서 가다가는 내 호기심을 다 잃을 판이었다. 어느샌가부터 다들 동태눈이 되어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또한 동태가 되어있었다.

계속해서 산을 올라가다 어느순간 탁 트인 풍경이 보이고, 우리를 감싸고 있는 수많은 설산들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기 보이는 ‘Welcome to Altai Tavanbogd National Park’. 드디어 타왕복드에 도착했다.

몽골여행에서 가장 짜증이 났던 건, 이동하는 게 너무나도 힘들고 다들 동태눈이 되어있다가도 이런 풍경을 보면 마음의 화가 싸악 가라앉는다는 것이었다. 이 곳에 잠시동안 머무르며 생각했었던 건, 몽골이라는 나라는 사람을 화가 날 수 없게 만드는 곳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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