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사리 Aug 23. 2023

고양이 하는 말을 듣자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기는 격’이라는 속담이 있다. 왜 이런 속담이 생기게 되었을까 생각하다 보면 이야기가 하나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옛날 어느 마을에 생선 가게를 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난히 정이 많은 사람이었고 고양이를 아주 좋아했다. 생선을 손질하고 남은 부위 같은 것을 고양이들에게 주었는데, 그래서인지 가게 근처를 기웃거리거나 가게 안까지 찾아오는 고양이들이 많았다. 평소처럼 진열대를 앞에 두고 앉아있던 그에게 집에 급한 일이 생겼으니 빨리 와보라는 연락이 온다. 가게를 닫고 가야 하나 고민하던 그의 눈에 마침 곁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낮잠을 자던 고양이가 눈에 들어온다. 회색 털옷을 입은 그 고양이는 평소 유난히 그를 잘 따랐기 때문에 (톰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주었다.) 잠시 다녀올 동안 가게 좀 보고 있으라고 쓰다듬어주고는 겉옷을 걸쳐 입으며 가게를 나선다. 두어 시간 후 가게에 돌아온 그가 보게 될 장면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고양이가 생선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아마 그래서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긴다는 속담도 생겨난 모양인데, 고양이에 대한 사실이라면   가지 중요한  있다. 그건 ‘고양이는 까다롭다 . 까다롭다는 말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확실하게 거부 의사를 나타내는 고양이는  까다로운 존재로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까다롭다는 말은 어느 정도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다. 다루기 쉽지 않고 까탈스럽다는 것, 그러니까 원만하지 않고 어딘가 모가 나서 대하기 어렵다는 뜻인데, 그 의미를 잘 보면 거기엔 ‘까다로운 이를 상대하는 그다지 까다롭지 않은 이’의 시각이 담겼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까다로운 이 자신’의 시각에선 어떨까? 까다롭다는 건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안다는 뜻이니까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 자기 취향을 잘 아는 사람, 유한한 삶의 시간을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하면서 흘려보내지 않을 사람이 곧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사람이라면 좀 멋지지 않나?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까 내 눈엔 멋져 보인다고 쓰는 게 낫겠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까다로운 사람으로 보인다는 건, 다른 누군가에겐 꽤 멋진 사람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 도미의 까다로움을 점수로 매겨보면 80점 정도 될 것 같다. 그 말은 어떤 고양이는 10점 안팎으로 그다지 까다롭지 않을 수 있고, 100점쯤 되는 고양이는 무지하게 까다로울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인간의 성격이 저마다 다르듯 고양이들도 개체마다 다른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미는 꽤나 까다로운 편에 속하는 고양이인데, 그 까다로움이 바로 고양이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건 이미 이 고양이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는 증거인 것이다.


몇년 (2018) 일이다. 도미가  먹는 고양이 캔이 단종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자기가 먹는 브랜드의 맛을 귀신같이 아는 도미는 값이  나가거나 다른 고양이들이 아주 좋아한다고들 하는 캔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마치 원래 먹던 밥을 가져오라는 시위라도 하는  같았다. 고양이들이 생고기를 좋아한다길래 우리 집에서는 사람도 먹지 않는 붉은 살의 고기를 조금 사다 줘도 마다하고, 생새우를 싫어하는 고양이는 없다길래 그걸 구해다 줘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기는 격이라는 속담도 있는데 설마 생선은 거부하지 않겠지, 생각하고   생선을 조금 주니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고양이에게 꼭 생선 가게를 맡겨야만 한다면 도미에게 맡겨주시면 될 것 같다. 신선한 생선마저도 거부한 도미는 오랜 시간 같이 지내면서 알고 보니 익히지 않은 고기는 싫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음식보다는 공장에서 가공한 실체를 알 수 없는 캔에 든 음식을 더 좋아한다. 취향이 까다로운 덕에 새로운 캔을 찾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다행히 도미의 입에 맞는다는 캔을 찾았다. 그러는 과정에서 밥을 주는 두 인간이 도미의 확실한 취향까지 배우게 되었으니 도미로서는 이득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걸 보면 취향이 까다롭다는 건 멋져 보일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득이 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까다로운 고양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확실하게 안다. 아무 데서나 잘 자는 고양이의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게 지붕 위든, 담장 위든, 인간의 눈엔 너무나 불편해 보이는 곳에서도 해만 잘 든다면 고양이에겐 편안하게 늘어져 잠자기 좋은 곳이다. 전형적인 고양이답게 햇볕을 쬐며 낮잠 자는 걸 좋아하는 도미는 아침부터 글을 쓰는 나에게 와서 고양이 말로 열심히 말한다. 나가자, 밖에 지금 해가 나. 그럴 때 도미 말을 들어야 하루치 햇살을 받아 비타민D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 말을 듣지 않고 안에서 글 쓰겠다고 버텼다간 변화무쌍한 이곳 날씨에 금방 구름이 가득한 하늘로 바뀌고, 언제 다시 해를 볼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될 테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꼭 지금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인지, 도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기분 좋은 표정을 하고 나를 바라보며 앉았다.  


까다로운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모난 성격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오래 전의 나는 많이 애썼다. 도미는 햇볕이 드는 자리에 아무렇게나 누워 무엇이 그렇게 두려워서 그랬니, 하고 묻는다. 그 옆에 누우며 생각한다. 그러게. 가끔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마주친다. 내가 내가 되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들. 내가 그와 다른 나인 것이 거북하고 불편한 사람들. 그러나 도미라면 이렇게 말하겠지. 그런 사람들이라면 나도 많이 알지. 나는 그래서 집을 나왔잖아. 그랬다가 이런 내가 좋다는 너희랑 만난 거잖아. 나를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나를 바꾸기 위해 애썼던, 노력이 부족해서 못 바뀌는 거라고 스스로를 다그쳤던 어린 나에게 도미는 말할 것이다. 너를 왜 바꿔? 이렇게 멀쩡한데. 네 주변을 바꿔. 그럼 나아질 거야.  


그러니까, 고양이 하는 말을 듣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것을 먹자. 바닥이 얼마나 불편하든, 지붕이 얼마나 경사졌든, 가장 좋아하는 햇살을 바라보며 순간을 즐기자.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해야만 한다. 가능하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그렇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거라고, 부족하다는 마음이 들지 않을 거라고, 날 보면 모르겠느냐고, 도미는 옆으로 아무렇게나 누워 기분 좋은 노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누웠다. 고로롱 고로롱 소리가 낮게 들려온다.


 


<고양이 잠>


작가의 이전글 손을 잡고, 생의 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