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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Aug 15. 2023

손을 잡고, 생의 춤


겨울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아침이면 하얗게 서리가 내린 땅에서 대부분의 식물들은 봄이 오면 싹 틔울 생명을 속에 품은 채 고요하게 죽음과 삶 사이에 머물러 있다. 조용한 텃밭에서 시금치와 케일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오가는 듯한 속도로 자란다. 짧은 가을 동안 경주라도 하는 것처럼 여기저기 자라나던 버섯들 마저도 겨울에는 속도를 늦추고 조용해진다.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가 검은 틈 하나 없이 흰 눈으로 꼭꼭 덮이고, 좀처럼 눈이 쌓이지 않는 가까운 곳의 낮은 산은 웬일인지 중턱까지 눈이 흩뿌려진 모습을 하고 있다. 추워서 어쩔 수 없었다는 듯 흰 담요를 덮은 둥글한 낮은 산은, 낮이 되니 좀 살 것 같았는지 덮었던 흰 눈을 벗어버리고 본래의 몸을 드러낸 채 해를 받으며 서있다.


언젠가 펼쳤던 책에서 ‘구구소한도’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옛 선비들이 겨울날 그렸다는 구구소한도는 구구, 그러니까 9와 9를 곱한 81 송이의 매화를 그린 그림이다. 왜 선비들은 여든한 송이나 되는 매화를 그려야 했을까. 그건 길고 느리게 흐르는 겨울의 시간 때문이었으리라.


솜을 덧댄 옷을 여러 겹 껴입고 찬 바람을 막으려고 창호문을 닫아둔 채 방바닥에 앉아있는 가난한 선비가 있다. 추운 방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책을 읽을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릴 수도 있었겠지만 겨울은 길고 길다. 책을 다 읽고, 그림을 그리고 나서도 시간이 많이 남았을 것이다. 방에서 찐 고구마를 먹고 곶감을 먹다가 이제 고구마가 얼마나 남았을지, 곶감이 얼마나 남았을지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쌀은, 김장 김치와 땔 나무는 겨울을 날 만큼 충분할지, 이런저런 걱정이 따라올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선비는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시작하면 마음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주 깊은 겨울날, 그러니까 일 년 중 가장 밤이 긴 동지를 보낸 선비는,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종이를 한 장 크게 펼친다. 그리고 거기에 매화 여든한 송이를 그려나간다. 아직 색을 칠하지 않은 검은 먹 선의 매화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선비. 잠시 방 안을 둘러보던 그는 완성되지 않은 것 같은 그 그림을 창문 옆 벽에 붙인다. 그리고는 붓을 들어 붉은 물감에 담갔다가 매화 한 송이에 콕 찍어 색을 채운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스쳤다 사라진다. 하루하루 지나는 동안 매화 송이 하나하나에 붉은빛이 들어찬다. 마흔한 번째 매화 송이가 붉게 피어날 때 선비의 얼굴에는 미소가 더 오래 머무른다. 첫 번째 매화에 색을 입혔던 날에 비하면 바깥 풍경도 사뭇 달라진 것만 같다. 남은 흰 매화 마흔 송이가 모두 붉게 물드는 날 선비의 긴 겨울은 모두 지날 것이고, 마당에는 봄이 내려앉아 있을 것이다.


몇 주 전 동지가 지났다. 동지 이후에도 추위는 계속되었다. 동지를 지나는 일은 겨울의 가장 깊은 골짜기를 지나는 것과 비슷하다. 골짜기 언저리에서 보기에 남은 겨울은 여전히 아득하기만 하다. 옛 선비들이 다른 날도 아니고 꼭 동지 다음날 구구소한도를 그린 이유는 그 때문이었으리라. 오랜 내리막을 달려 가장 낮고 춥고 어두운 지점에 도착했을 때 다시 올라가야 할 길은 여전히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길어 보였을 테니까. 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팔팔소한도 정도로 바꾸어 뭐라도 그려야 하나 생각하던 날, 종이를 꺼내는 대신 옷감을 펼쳤다. 재활용 면으로 만들었다는 따뜻한 빛이 나는 흰 옷감은 수행복을 만들기에 알맞아 보였다. 봄이 오면 입을 옷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패턴을 따라 옷감을 하나하나 잘랐다. 그러는 동안 흰 매화 한 송이가 붉게 물들었다.


열네 송이의 매화가 붉게 꽃을 피운 날 옷을 완성했다. 수행복을 만들겠다고 완성한 옷이 수의로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옷 만드는 걸 배운 데에는 언젠가 수의를 직접 만들겠다는 속셈이 있었는데 마음에 드는 수의가 이렇게 금방 완성될 줄이야. 전통적인 삼베는 아니지만 재활용 천으로 만든 수의라면 나의 죽음과 꽤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만일 죽음이 수행의 다음 단계라면 살아서 가장 자주 입던 수행복이 곧 가장 적절한 수의가 아닌가. 겨울에 입긴 좀 추운 소재였지만 안에 따뜻한 털옷을 받쳐 입고 밖으로 나갔다. 세상은 생명이 시작되기 이전의 시간을 나고 있었다. 겨울이었다. 그리고 그건 죽음의 시간과 같은 말이기도 하다. 모든 죽어있는 것들을 위해 기도했다. 모든 죽어있는 것들은 살아있는 나를 위해 기도했으리라. 살아있는 나는 죽어가는 나와 같으므로. 죽어있는 것들은 다시 생명으로 태어날 것이고, 살아있는 나는 언젠가 죽음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살아있는 것들과 죽어있는 것들은 공존한다.


인류가 혹독한 겨울을 나는 동안 봄을 기다려온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이다. 그렇기 때문에 봄을 기다리는 방법이라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구구소한도는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봄을 기다리는 행위다. 어둠과 추위와 두려움에 현혹되지 않고, 눈앞에 있는 것들  가장 아름다운 것을 바라보고, 꿈꾸고, 가꾸는 것에 집중하는 . 그건 다른 말로 가장 아름다운 형태의 삶이라고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특별한 매화도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매화도가 아닐까. 매화 송이 하나하나마다 지나온  겨울이 오롯이 담겨 있다. 흐드러지는 여든한 송이의 붉은 꽃들은 당신의 겨울이 매섭기만 했던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다. 겨울을 지나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든, 어떤 감정을 느꼈든,  시간을 지나온 당신은 여든한 송이의 붉은 꽃을 피운 매화나무처럼 아름답다. 지나온 겨울이 당신을 그렇게 아름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겨울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던 비에 질척이던 땅엔 이제 조용히 해가 내려 닿는다. 내가 옷을 만드는 동안, 누군가가 구구소한도를 그리는 동안, 또 누군가가 이 세상에 새로 태어나는 동안, 그리고 누군가가 죽음으로 돌아가는 동안 밤은 짧아졌고 햇살이 조금 더 오래 품을 내어준다. 겨울 동안 완성한 매화나무가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해도 괜찮다. 누군가의 죽음이, 나의 삶이 전혀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해도 괜찮다. 왜냐면 봄은 올 것이고, 따뜻한 햇살은 곁에 더 오래 머물 테니까. 마음에 소복이 쌓인 눈은 녹아내릴 것이고, 서리를 맞고 죽은 잎사귀 아래에서 새 순이 뾰족하게 솟아날 것이다. 아무리 꼭꼭 잠가둔 마음도 봄이 오는 길목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녹은 눈은 흘러내리며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어 내고, 초록 잎으로 가득한 나무들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빛을 뿌리며 춤을 출 것이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건네는 손을 잡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위해 노래하고 춤추고 기도하는 일뿐이다. 말하자면 생의 춤. 어쩌면 그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중요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느 날 당신에게 손을 내미는 존재가 있다면, 부끄럽다고, 기분이 아니라고, 나답지 않다고 거절하기 전에 일단 그 손을 잡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생의 춤을 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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