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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Oct 26. 2023

그림을 그리는 밤


그런 때가 있다. 갑자기 청소를 꼭 해야만 하는 때. 오래된 물건들을 집에서 싹 비워내야만 하는 때. 쿠션 커버를 빨고, 방석을 빨고, 담요를 끄집어내 빨아 널어야만 하는 때. 그럴 땐 스스로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속셈이 무엇인가. 평소에는 안 하던 행동을 갑자기 의욕적으로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잘 생각해 보면 오래전에도 나는 책상을 청소하고, 서랍 속을 싹 다 정리하고, 옷장 속 구겨진 옷들을 꺼내 새로 개어서 다시 옷장에 넣는 일을 때마다 반복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시험기간마다, 마감일이 다가올 때마다.


머릿속에는 또 다른 내가 있는 게 분명하다. 솔직히 말해서 그 ‘나’는 썩 마음에 드는 나는 아니다. 왜냐면 그건 잔소리꾼의 면모를 가진 나이기 때문이다. 이 머릿속의 잔소리꾼은 해야 할 일을 끊임없이 알려주고, 내 행동이나 내가 한 일의 결과에 대해 쉼 없이 제 의견을 피력하는데, 그게 바로 문제의 근원이다. 왜냐면 그건 절대로 내가 부탁한 조언이나 의견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였을 때 나는 빨리 자라고만 싶었다. 자라고 나면 아무도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다 자란 나에게 누가 이 닦아라, 숙제해라, 그런 행동은 하면 못 쓴다, 이건 이렇게 해야지, 같은 말을 하겠는가. 그렇게 굳게 믿었기 때문에 꼭 그래야 할 터였는데, 그렇지 않았다. 더 이상 이 닦으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여전히 세상은 나에게 공부해라, 자격증 따라,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해라,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잔소리에 시달린 나의 일부는 나로부터 떨어져 나가 머릿속에 들어가 자리 잡았다. 거기에 커다란 책상을 놓고, 커다란 의자에 앉아서 짐짓 중요한 사람인 체 하면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지금은 그거 할 때가 아니다, 똑같은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이다.


왜 ‘잔소리꾼 나’는 스스로가 잔소리에 시달려 보았음에도, 그래서 그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알면서도 여전히 나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일까. 그건 어쩌면 시달린 인간이 보이는 독특한 행동 패턴일지도 모른다. 마치 군대에서 시달린 사람이 직장에서도 여전히 군대식 문화를 고집하는 경우처럼, 시집살이에 시달린 사람이 며느리를 시달리게 하는 시어머니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그런 걸 보면 시달리는 동안 우리 내부에서는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는 걸지도 모른다.


잔소리에 시달리는 사람의 세상에는 잔소리가 가득하다. 아마도 느끼기에 공기 반, 잔소리 반쯤 될 테다. 잔소리 없는 세상에서 살아본 적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잔소리 하는 사람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이제 그는 자유를 만끽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은 예상과 다른 경우가 많다. 왜냐면 잔소리에 시달리는 동안 그의 세상은 완전히 잔소리의 세상으로 변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잔소리가 너무 익숙하다 못해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린 꼴이다. 그래서 어느 날 잔소리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왔을 때 머릿속 잔소리꾼은 안절부절못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뭔가 중요한 게 빠진 것 같은데……, 뭐였지……, 아, 잔소리!’


지난 며칠 동안 그림을 그렸다. 글을 쓰려고 여기저기 메모를 해두었지만 그뿐, 한 글자도 쓰지 않고 그림만 열심히 그렸다. 잔소리꾼 나는 자꾸만 끼어들어서 그림 그리는 걸 방해했다. ‘지금이 그거 할 때냐, 할 일이 산더미인데 언제까지 그릴 거냐, 글은 얼마나 오랫동안 안 쓰려고 그러느냐, 아예 안 쓸 생각이냐…….’ 언젠가 들어본 말들을 주워 담아 모아뒀다가 이렇게 때가 오면 그대로 써먹는다. 진부한 수법이다. 쓰고 싶은 마음이 들면 쓸 거라고 변명하려다가, 그냥 두었다. 말을 하면 꼬리만 잡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잔소리꾼이란 어쩔 수 없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모양이다. 그런 적이 있었다. 시험이 다가오는데 해야 할 시험공부는 하기가 싫다. 사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하지만 시험이 코앞이다.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그러다가 책상 서랍을 다 끄집어내 청소를 하지 않았었나. 지금이 꼭 그 모양이다. 머릿속 잔소리꾼이 정해주는 해야 할 일은 하기 싫다. 그 말을 따르느니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글도 쓰기 싫고 청소도 하기 싫다. 그래서 괜히 다 끄집어내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어제는 잘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그림을 그리다가 결국 새벽 별을 보고 말았다. 다 늦어 자려니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아 오래 뒤척였다. 긴 밤의 조용한 틈을 놓치지 않고 잔소리꾼이 말을 건넨다. ‘어차피 안 잘 거면 일어나서 글이라도 쓰지 그래?’ 권하는 투지만 엮여 들면 곤란하다. 해야 할 일과 하기 싫은 마음 사이에서 고통받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은 일이다. 그렇다면 확실한 방법이 있다. 잔소리꾼 나를 조용하게 만드는 수밖에.


‘이 시간에 쓴 글을 아침에 다시 읽어보면 곤란할 거야.’


반박할 말이 없었는지 잔소리꾼이 자는 것 같다. 내일은 아주 조용히 움직여서 잔소리꾼이 깨지 않도록 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다 새벽이 밝을 즈음 잠에 들었다.



어렸을 땐 복습 하라는 잔소리를 그렇게 들었어도 해 본 적이 없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배운 걸 스스로 복습하고 있다니. 원래 사람이란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제가 하고 싶으면 한다.


배운 걸 응용해서 고양이를 그려보았다.


배운 걸 응용해 무용수의 옷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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