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우물을 판다는 건...

한 우물도 생존이 보장된 사람만 팔 수 있는 것이었다.

by CHADA

나는 기억에 없지만 내가 태어날 때쯤 아버지 사업이 신문에 나올 만큼 크게 망했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고, 3년은 버티셨던 것 같다.

내가 4살 때 아버지가 상황이 제일 심각했었다고 했다.

나는 어릴 때 첫 전화 교육이... "아버지 집에 계시니?"

"아니요. 아버지 안 계시는데요".라는 거짓말부터 배웠다.

이런 걸 알고 빚쟁이들은 "괜찮아 아빠 친구야, 아빠 계시니?라고 물었다.

나는 그 말을 믿고 , 내 아빠 계시는데요. 하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바꿔드리면

아버지가 전화 끊고, 아빠가 "아빠 없다고 하라고 했지?"라고 혼났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난 집에서 전화 오는 게 싫었다. 무서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 누굴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몰랐어서..


그렇게 집안의 부동산을 다 팔면서 빚을 갚고... 그때 반포 삼호가든도 팔았다.

꾸역꾸역 우리 남매를 할머니. 어머니가 장사하시면서 키워냈다.


내가 중1 때쯤 아버지가 다시 재기하셔서,

우린 그 지역에서 최단기간 재기한 집안이 되었고,

내가 다니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우리 학교에서 제일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학생이었다.

무튼. 그런 유년시절을 보내야 했기에,

부모님이 시키지도 않았지만 , 친구 따라 자전거 타고 과일배달도 했고, 초3 때는 태권도장 전단지도 돌렸다.

용돈을 모아, 어느 날 신문광고를 보고 송아지를 사면 키워서 그 차익을 준다는 것을 보고

송아지를 사서 소 판 돈을 벌기도 했다.

그때 주식의 ㅈ 도 모르는 초등학교 5학년이 대우증권에 가, 매일 주식판을 쳐다보았다.

그땐 산 skt주식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 애기 푼돈인데 얼마 되지도 않는다)


그 덕에 불행하게도, 어린 나이에 돈을 좀 벌 줄 알았다.

중국에서 면티를 수입하던 분을 만나, 동대문에 뿌리기도 했고

올림픽공원, 석촌호수에서 야광 프로펠러 장난감을 팔기도 했다.

2008년 엔화를 샀다가, 크게 이익을 본 적도 있다.

그때 내 또래, 연극인 중에서는 부자였다;.

돈 버는 게 만만했고. 결국 그 돈은 당연히 모을 새도 없이 펑펑 써댔다.

돈을 벌어보기도 탕진해보기도 하면서

거지가 되었다가 외제차를 탔다가.

다시 상그지가 되고 다시 여유가 생기고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내 주변은 하류인생부터 재벌 3세까지 넓어져갔다

그러면서 사람 보는 눈이 반무당이 되었다

이렇듯 15년 동안, 일기장을 보니, 내가 시도하려 했던 사업 아이템 32개.

그중에서 성공한 것이 4개.

5년 이상 유지한 것이 2개.

내가 직접 투자한 것이 9개.

10년 이상 한 것이 2개..


나는 이것저것을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지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

" 한 우물만 파라"라는 말이 가장 아팠다...

사실 그 말이 제일 서글펐다. 나는 항상 그 말에 울분을 삼켰다.

" 팔자 좋은 소리 하네" 라며 뒤돌아 담배만 물었다..

한 우물도 생존이 보장받은 사람만이 팔 수 있다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