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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ANGZHONGLIE Jun 13. 2023

마지막 고독

—-간병 실기(1)


1

                    

   금요일 오후 네시가 거의 되는데 간호사실에서 수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501 호 간병사님, 신환이 들어온대요, 1호 침대 환자를 505호로 빼고 신환을 받을 준비 하세요.》

   신환이란 새로 들어오는 환자라는 말이다.

   나로서는 별로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환자를 다른 방으로 옮기고 또 다른 환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엄청 짜증 나는 일이다. 나가는 환자의 물건을 모두 정리하고 다시 새로 들어오는 환자의 물건을 새로 정리하는 일은 무척 번거로운 일이다. 그러나 내가 싫어한다고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그냥 복종할 수밖에 없는 신세였다. 간병인은 병원에서 제일 계급이 낮은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간호사실에는 수간호사가 있고 그 아래에 간호사가 있고 다음 또 조무간호사가 있다. 그들은 누구나 간병인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청소공 아줌마도 간병인에게 이러면 안 되니 이러쿵저러쿵 할 때도 있다. 간병인은 이 모든 것을 참아야 한다. 참지 않으면 시비가 일어나고 시비로 다투다 보면 제일 힘이 없는 것이 간병인이다. 간병인은 수시로 잘려서 짐을 가지고 쫏겨 날 수 있는 처지의 직업이다.

몇 년 전에 용인의 한 요양병원에서 수간호사의 나무람 소리에 한마디 대꾸하였다가 금방 잘리고 말았다.

  《이 방추망은 왜 열어났어요?》

아침에 수간호사가 간호사들과 조무간호사들을 데리고 병실을 돌면서 창문에 방충망이 열려 있는 것을 가리키며 질책하는 어조로 말했다.

  《방금 기저귀를 바꿨어요.》

  기저귀를 바꾸면 냄새가 나니 창문을 열어 놓았는데 미처 닫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 기저귀를 바꾼 다음 인차 닫아야지요.》

  나는 더 대꾸하지 않고 자기 일을 하였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도 방충망은 열지 말아야지요?》

  수간호사는 계속 이말 저말 이어가면서 나를 질책하였다.

  끝내 나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 대꾸했다.

  《별일도 아닌데 한번 말하면 알아 들었어요.》

  자기에게 좋지 않은 기색으로 대꾸하였다고 수간호사는 그 자리에서 누구한테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병실을 나오면서 들려오는 말을 들었는데 우리가 소속해 있는 간병인 협회에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한마디 말에 그 병원에서 잘리고 말았다. 그다음 찾은 곳이 바로 지금 일하는 병원이다. 그래도 이 병원에 와서는 간호사실과 사이가 그리 나쁘지는 않은지 그럭저럭 거의 팔 년이란 시간을 보내왔다.

  1호 침대 환자를 옮기고 나니 새 환자가 들어왔다. 휠체어에 앉아 왔는데 첫눈에 환자의 체구가 엄청 크고 뚱뚱하였다. 다행히도 환자는 자기 절로 움직일 수 있어서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침대에 올라갔다.

  뒤이어 주치의사가 수간호사의 배동하에 들어왔다.

  먼저 병에 대해 기본상태를 확인한 다음 인적 상황에 대해 물었다.

  《명함은 김태성 맞지요? 학력은 어떻게 되지요?》

  《대학원이요?》

  《원래 무슨 일을 하였어요?》

  《사업을 하였습니다.》

  《보호자는요?》

  《없다고 할까요? 부인과는 이혼했고, 딸이 있기는 한데 몇 년 전에 나와 관계를 끊는다 하였고 나와 다시  만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무척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까?》

   이번에는 수간호사가 물었다.

  《몇 년 전에 전화번호가 있기는 한데…》

  《전화번호를 주세요, 우리가 필요할 때 연락해 볼게요.》

   주치의사와 수간호사가 나간 다음 나는 상식적으로 환자의 몸을 살펴보았다. 기저귀도 쓰지 않고 소변팩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몸집이 너무 웅장하여 자기 절로 움직이지 않으면 나로서는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종아리가 나의 허벅지만큼 두꺼운 것 같았다. 그리고 원래 몸체가 커서 그런지 배가 막달되는 임산부와 같았다. 인지는 정상적인 것 같았다. 몇 마디 문안을 하면서 대화를 해보니 결국 나보다 몇 살 아래였다.

   얼마 지나니 저녁때가 되어 밥상이 들어왔는데 이 환자의 식사 그릇은 전부 소독용 그릇으로 나왔다. 직감적으로 아마 B형 간염 환자라고 예측되었다. 저녁 후에 한 간호사가 나에게 귀띔해 주었다.

 《꼭 장갑을 끼고 일하고 조심하세요. B형 간염이고 간암 환자입니다.》

 B형 간염은 혈액으로 전염할 수 있고 일반적으로는 전염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간병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찜찜한 기분인 것이다. 그리고 일할 때 그냥 조심하느라 신경을 써야 하니 그것도 여간한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그것도 나의 병실에만 이런 환자가 두 명이나 되었다. 바로 이 환자의 마주편 4호 침대에 성씨가 조 씨인 얼마 전에 다른 요양병원에서 같은 병으로 온 환자가 있었다.

  나의 병실에는 여섯 개의 환자 침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간혹 침대 한 개가 빌 때도 있지만 기본상 여섯 명의 환자가 꽉 차는 때가 많았다. 새로 들어온 환자 김태성이가 1호 침대고 2호 침대에는 내가 이병원에 올 때부터 있었던 환자이다. 그러니 적어도 이 병원에 있은지 칠팔 년도 넘었을 것이다. 결혼도 하지 않은 나이 칠십이 넘은 노총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보호자도 없는 수급자였다. 3호 침대에는 95세 되는 할아버지 5호 침대에는 몇 년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환자 6호 침대에는 나이가 오십도 되지 않는 젊은 환자인데 병이 오기 전에는 이 병원 근처에서 사업을 하면서 엄청 활기를 펴고 다녔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병이 나니 지금 침대에서 겨우 두 다리만 조금 움직일 수 있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듣는 말에는 가족에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에서도 돈은 많이 쌓였지만 이상하게도 결국에는 모두 같은 병으로 앓다가 세상을 마쳤다고 하였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인생은 정말 자기가 노력해서만 될 일이 아닌 것 같다.

                                     2

 새로 들어온 환자 김태성이는 식사를 거의 못하였다.

《아저씨, 나가면 아이스크림 좀 사다 주면 안 되겠어요? 갈증이 계속 나는데 시원한 것밖에 생각 없어요.》

 《저녁 후에 내가 밖에 나가서 바람 씌우고 돌아올 때 사다 드릴게요.》

  매일 아침 전에 코줄로 식사를 하는 환자들에게 식사를 마치고 나면 여섯 시가 된다. 우리 식사는 일곱 시 십오 분에 들어오니 한 시간 정도밖에 나가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있고 저녁 식후에도 약 한 시간 정도는 밖에 나가서 바람을 씌울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하여 나는 매일 이 두 시간은 기본상 예외 없이 밖에 나가 돌고 들어오군 한다.

  온종일 병실에 있다가 저녁 후에 밖에 나가면 그야말로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감각이 들 정도로 밖에 세상은 황홀하였다.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는 이 한 가지만으로도 병실에 있은 것과 비하면 얼마나 좋은 시간인지 심심이 느껴진다. 온종일 병원 각종 약 냄새와 환자들의 똥오줌 냄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어지러워난다. 한평생 편안히 사무실에서 일을 보다가 늘그막에 하는 수없이 이런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엄청 자괴감이 들었다. 원래는 이 일을 몇 년만 하고 퇴직하면 받을 수 있는 퇴직비로 그리 충족하지는 않지만 적으면 적은 대로 쓰면서 집으로 돌아가 편안히 자기 멋대도 살려고 하였는데 몇 년 전에 정작 퇴직하고 퇴직비도 나오지만 이 하기 싫은 일을 그만두고 아무 일도 안 하고 놀려고 하니 그것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하여 일 년 또 일 년 더하고 보자고 생각하면서 하는 일이 어느새 간병 한지가 십 년이 다되어 갔다. 퇴직하고 퇴직금이 나온 지도 5년이 지났다. 그럼 언제까지 할 것인가? 기실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매일 밖에 나가 걸어 다니지만 가는 곳은 그냥 그렇게 한두 곳이었다. 이마트 아니면 다이소 아니면 그냥 거리를 걷는 것뿐이었다.

  병실에 돌아와 얼음과자를 김태성에게 주니 그는 밥은 안 먹어도 얼음과자는 먹는 것이었다. 그런데 별로 내키지 않는 얼굴색이었다.

 《아저씨가 좋아하는 종류가 아닌가요?》

 《아니요, 괜찮아요. 저는 수박맛 얼음과자가 있는데 그냥 그것을 사 먹었어요.》

 《그래요? 그럼 말씀하시지...》

 《그럼 내일 나갈 때 그걸로 사다 주세요.》그는 좀 미안해하는 기색을 나타 내면서 말했다.

  이때 그의 전화가 울렸다. 아마 외국에서 오는 전화인지 그는 한국말을 하지 않고 서투른 영어로 대화하였다. 영어로 병원이란 말을 하는 것은 알아들었는데 아마 자기가 입원해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 같았다. 한참 대화중이던 그가 홀연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중국말을 할 수 있지요?》그가 나에게 물었다.

 《물론이죠, 저는 중국사람이니깐?》

 《그럼 실례지만 좀 전화를 받아 주시겠어요?》그는 말을 하면서 나에게 전화를 넘겨주는 것이었다.

  전화는 타이완에서 온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전화를 바꿨습니다. 저는 이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입니다.》내가 먼저 전화를 건네받은 후 중국어로 자기를 소개하여 말했다.

 《아, 그래요? 중국 사람이 애요? 여기는 타이완입니다.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요? 그리고 한국말도 할 수 있는가 보네요?》

  전화 저쪽에서 한 남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예, 괜찮은데요, 중국 사람이지만 한국사람과 같은 민족입니다. 원래 같은 언어고요, 말씀하세요.》

  나도 대만 사람이라니 좀 말씨가 내가 하는 중국 동북 말씨와 많이 틀리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도 보통 중국어로 말하는지 알아듣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환자는 저와 가까운 친구인데 지금 병 상태가 어떤지 알아보려고요.》

 《예, 오늘 저녁 전에 금방 내방으로 들어왔는데 고려대 병원에서 왔다고 하더군요. 지금 상세히는 모르겠지만 보기에는 상태가 괜찮은 같은데요. 자기 절로 움직일 수 있고 인지도 정상인 것 같고요. 말씀하는 것도 별로 이상이 없이 하는데요?》

 《아, 그래요, 그러면 아주 좋네요.》

 《오늘 의사선생이 말씀을 엿들었는데 아마 간에 문제가 있다는 것 같던데요.》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그는 간암과 담낭암 두 가지 암환자입니다. 말기예요.》

  생각밖에 상대방은 이미 환자의 상태를 나보다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 오래 남지 않았을 겁니다. 고생이 많겠지만 좀 잘 보살펴 주세요.》

 《그건 마땅하지요. 그 사람들의 돈을 받으면서 일하는 나로서는 특별하게 잘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 후에 또 연락할게요.》

  이렇게 우리는 대화를 마치고 말았다.

  전화를 마치고 김태성이와 말을 나누면서 나는 이 환자가 원래는 중국과 홍콩 그리고 대만에서 건물외부 장식 같은 사업을 했었다는 것을 대략 알게 되었다. 그러나 환자가 자기 경력에 대해 말하지 않는 이상 물어볼 수는 없었다. 바로 이 환자와 마주편 침대에 있는 성씨가 조 씨인 환자도 중국에 가서 무슨 사업을 하였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음날 저녁 후에 내가 밖에 나가려고 준비하니 이 환자가 다시 카드를 주면서 수박맛 얼음과자를 사다 달라고 하고 마주편 조 씨 환자도 큰 종이봉투에서 돈을 꺼내 주면서 땅콩과 아몬드를 사다 달라고 하였다. 이방에 육 명의 환자 중 말을 할 수 있는 환자는 이 두 사람뿐이었다. 6호 침대에 젊은 환자는 인지는 있지만 말을 하지 못하였다. 그 나머지 환자 셋은 거의 인지가 없거나 반응이 없는 환자들이었다. 3호 침대에 95세 되는 환자는 한 달 전에도 물리치료 실에서 워커를 잡고 걸어 다니면서《제가 95세인데 이렇게 걸어 다니는 것이 보기  싫을 거예요.》하고 농담하던 상태였는데 한 열흘 전에 내 방으로 옮겨 올 때는 누워서 일어날 수도 없고 인지도 거의 없는 상태였다.

  내가 두 환자의 부탁을 받고 나서려고 하는데 1호 침대 김태성이가 자기 마주편 침대 조 씨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무슨 병이세요?》

 《간암이요.》

 《얼마 되었습니까?》

 《오래되었습니다. 한 팔 년이 되었는가...》

 《그래요? 》김태성이가 놀라는 기색으로 말했다.

 《허참, 나는 이제 진단받은 지 15일이요.》

  그들이 이렇게 대화를 시작할 때 나는 밖으로 나왔다.

  겨울이라 내가 밖에 나갈 때는 어둠이 내려앉은 지 한참 되었다. 병원 문을 나서면 마주편에는 김안과 병원 후문이다. 약 몇십보 걸어 골목을 나서면 영신로 청과시장 사거리이다. 나는 매일 청과시장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홈플러스 방향으로 걸어서 다시 홈플러스 사거리를 지나 문래공원 옆 길로 다음 사거리까지 간 다음 다시 왼쪽으로 굽어 들어 약 백 미터가량 걸으면 경인로에 들어선다. 거기에서 계속 영등포역 방향으로 직진하여 영등포역 앞에서 지하상가에 내려간다. 다음 지하상가에서 신세계로 들어가서 이마트 매대를 둘러보면서 살 것이 있으면 사고 아니면 그냥 한 바퀴 돌아본다.

  오늘은 환자의 부탁을 받았으니 이마트에서 아이스크림 매대를 한참이나 찾았다. 그러나 한참이나 찾았지만 보이지 않아 끝내 직원에게 물어보아서야 찾았는데 환자가 부탁한 수박맛 아이스크림은 없었다. 하여 4호 침대 조 씨 환자가 부탁한 아몬드와 땅콩은 쉽게 찾을 수 있어 그것만 사고 밖으로 나왔다.

  이마트에서 나와 충무병원 앞길을 지나는데 마침 충무병원 마주편에 세븐일레븐 슈퍼가 눈에 띄었다. 1호 침대 김태성이가 부탁한 수박맛 아이스크림이 혹시나 있을 수 있지 않겠나 하고 생각하면서 슈퍼에 들어갔다.

 《수박맛 아이스크림이 있나요?》 내가 물었다.

 《있을 거요. 저기 냉장고에 보세요.》 슈퍼 직원이 한쪽 모퉁이에 설치되어 있는 냉장고를 가르치면서 대답하였다.

  냉장고 앞에 가서 들여다보니 마침 첫눈에 아이스크림 봉투에 수박이 그려진 것이 보였다.

  수박맛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니 기분은 맑아 보였지만 얼마 먹지는 못했다. 겨우 하루를 지났는데 올 때보다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별로 크지도 않은 아이스크림을 하나도 채 먹지 못하였다.

 《어째 맛이 별로예요? 많이 못 드시네요.》

 《글세요, 생각보다 다르네요. 내일은 나가실 때 국수를 사다 주세요. 둥지 냉면이라고 있어요. 그것은 별로 먹을걸 같은데… …》

  김태성도 좀 미안해하는 기색을 보였다.

  나는 좀 짜증이 나는 것을 그냥 참았다. 일반 환자라면 좀 싫은 소리라도 할 수 있겠지만 암 말기 환자라는 사정에 어쩐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기실 자기 절로도 자기가 참을성이 없어 간병일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하기에 간병일을 한 십 년간 하면서 처음에 일반 환자실을 하고 그 후에는 기본상 중환자실에서 일을 하였다. 일반 환자실은 환자들이 모두가 인지가 정상이고 교류를 자주 하여야 하니 나의 성격에 별로 알맞지 않았다. 특히 가벼운 일을 골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워낙 빈번한 교류를 하기 싫어하는 편이라 일반실에서 간병하면 온종일 환자와 교류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식사 때는 사람마다 이 반찬 저 반찬 가져다주고 식사가 끝나면 다시 냉장고에 분류하여 보관해야 한다. 그보다도 식사 중간에는 이 사람이 과일을 달라 저 사람이 빵을 달라 이 심부름 저 심부름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다. 하여 나는 수년간 계속 중환자실 간병을 하였었다. 중환자실은 기본상 인지가 없고 대부분 코줄로 식사를 주입하기에 간단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맡은 일을 하면 다른 심부름 같은 일들이 없어 심리적으로 매우 안정된다. 그러나 그만큼 일이 힘들고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마다 스스로 자기에게 알맞은 일을 하기 마련인만큼 나는 힘이 들고 피곤해도 오히려 중환자실에서 간병하는 것이 편하게 생각된다. 그러나 중환자실에서 몇 년을 해보니 때로는 임종 환자가 많을 때에는 그것이 또 마음에 꺼렸다. 한 사람이 마지막 숨을 거두는 장면까지 옆에서 보는 것이 마음에 부담이 되었다. 하여 몇 년 전에 자리를 다시 바꾼 것이 바로 지금까지 육칠 년을 해온 중증환자실이다. 중증환자실에서 환자가 상태가 좋지 않아 임종할 것 같으면 자연히 중환자실로 옮기게 된다. 하기에 어쩌다가 돌발상황이 아니면 임종환자를 상대할 때가 매우 드물다. 그리고 중증환자실 환자들도 기본상 인지가 정상이 아니고 교류가 되지 않기에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알아서 하면 일반실처럼 자질구레한 일들이 별로 없기에 일하기에 마음상에서는 편하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어제 받아들인 1호 침대 환자 김태성도 얼마 지나지 않아 상태가 나빠지면 중환자실로 옮길 것은 뻔한 일이다.

  이튿날 저녁에 다시 여러 슈퍼와 마트를 돌아서 겨우 둥지 냉면을 사게 되었다. 먼저 진공상태에 포장된 냉면을 뜨거운 물에 넣어서 전자렌즈에 몇 분 간 돌려 냉면이 딱딱하지 않게 끓여 낸드음 찬물에 몇 번 헹구어 차갑게 만들고 다음 둥지냉면과 함께 따라온 육수물에 넣으면 간편한 냉면이 만들어진다. 환자의 상태가 이틀간에도 선명하게 나빠지는 것 같았다. 하여 원래 얼마 안 되는 냉면을 절반 갈라서해 주었는데 그것도 몇 젓가락 먹고는 안 먹는 것이었다. 이틀간에 물만 자주 마시는 외에 식사는 별로 들어간 것이 없다. 그리고 물은 자주 마시는데 소변은 아주 적게 배출하였다. 체구가 워낙 엄청 웅장하여서 복부가 불어 올라왔는지도 별로 알리지도 않았다.

                                         3

  김태성의 상태는 하루하루 나빠졌다. 같은 간암환자인데 마주편 4호 침대 조 씨 환자는 별일 없는 듯이 하루하루를 지냈다. 어느 날 저녁, 내가 예전과 마찬가지로 저녁 후 밖에 나가 바람 씌우고 돌아오니 4호 침대에 젊은 청년이 와 있었다. 보기에도 아마 아들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환자는 별로 좋지 않은 기색으로 말도 없었다. 한참 후에 보호자가 돌아 간다음 물어보니 아들이 맞다고 시인하고는 다른 말은 일절 없는 것이었다. 내가 밖에 나갔을 때 아들이 와서 무슨 애기가 오갔는지 알 수 없으나 하여간 별로 좋지 않은 기색이라 나는 다른 말을 더 꺼내지 않았다.

  후에 간호사에게서 대략 들은 소문은 4호 침대 환자도 꽤 오랫동안 중국에 가서 사업하면서 집 식구들과 그냥 갈라져 있고 아마 마누라와 이혼한 상황이라고 하였다.

  이상한 것은 내가 이 병실에서 간병하면서 김태성과 4호 침대 조 씨 환자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할까 아니면 거의 같은 처지의 남자 환자들을 수두룩해 보았다는 사실이다. 간병한 지 십여 년간 생각해 보면 이런 처지의 남자들이 몇십 명은 될 것 같다. 이런 환자들은 기본상 입원해 있는 동안 보호자도 없고 병문안 오는 사람도 없었다. 반면으로 여자환자들은 기본상 이런 현상들이 없었다. 그 어떤 현상이 한 두 사람에게서 발생한다면 개별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개별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차이가 많은 것 같다.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면 간병인의 처지도 점점 힘들게 된다. 김태성의 상황이 점점 나빠지면서 잔소리도 점점 많아졌다. 그래도 나는 될수록 참을 수밖에 없었다. 간호사들도 나를 보면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보냈다.

  《좀 참아 주세요, 얼마 오래가지는 못할 겁니다. 그저 좋은 일을 하니 복을 받는 거라고 생각해 주세요.》 수간호사도 환자가 너무 심부름이 많고 잔소리가 많으니 나를 달래 주는 것이었다.

  한 열흘 지나니 환자는 점점 배가 불어 오르고 소변도 점점 적게 나왔다. 식사는 거의 못하고 사이다와 콜라만 들이마셨다. 며칠 더 지나 내 방에 들어온 지 두 주일만에 중환자실로 옮겨가고 말았다.

  나의 병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와 간호사실 앞 계단을 지나면 중환자실이다. 오 층에는 내가 일보는 남자 중증환자실과 내 옆방 나의 마누라가 보는 여자 중증환자실 그리고 간호사실 옆에 일인실이 있고 간호사실을 지나면 505호와 506호 중환자실이 있다. 두 중환자실은 문도 없이 개방된 상태이고 우리도 환자의 기저귀를 정리하여 버릴 때는 중환자실을 지나서 밖에 놓여있는 기저귀 배출 지점으로 가야 한다. 몇 년 전에 나와 마누라가 금방 이병원에 왔을 때 바로 505호 중환자실에서 삼 년간 간병을 하여 왔었다. 505호와 506호는 사람키보다 얼마 높지 않은 간이 벽을 사이 두고 있다. 환자는 506호로 옮겨졌다. 5층에 간병인은 모두 일곱 명인데 두 중환자실은 모두 부부간이고 중증환자 두 병실을 나와 마누라가 간병을 맡아하니 결국에 오 층에는 세 부부가 간병을 하는 셈이다.

간호사실옆에 있는 일인실은 한국 여사님이 간병을 하고 있는데 어쩐지 우리와 별로 교류가 되지 않고 늘 병실 문을 닫고 지냈다. 환자는 어느 회사에서 회장으로 있었던 남자 환자인데 칠십 중반이 되어 보이고 목에 구멍을 뚫어 언어 교류가 되지 않는 환자였다. 그러나 인지는 매우 정상인지라 때로는 징그러울 때도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에 간병하는 한국여사님이 몸이 안 좋아서 그만두려고 다른 사람이 간병을 하게 되었는데 원래 중국 사람이지만 지금은 귀한하여 한국국적을 가진 한 여사님이 왔었는데 얼굴이 좀 이쁘게 생겼다. 그 여사님은 지금은 한국 국적이지만 워낙 우리와 같은 중국 사람인지라 우리와 교류가 잘되였다. 그 여사님의 말에 의하면 환자가 때론 손으로 여사님의 몸을 건드릴 때가 있다면서 그러지 말라고 화를 내면 목에 구멍을 뚫어 입으로 소리는 나오지 않지만 입 모양을 보면 여사님이 이뻐서 그랬다고 말한다고 하였다. 물론 여사님의 말이 꼭 진실이라고 확신은 할 수 없지만 내가 거의 일 년간 일인간병을 할 때 일을 생각하면 그 여사님의 말이 기본상 진실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처음 간병하던 병원에서 한 번은 다른 병원에서 한 남자 환자가 들어왔는데 역시 일인 간병인지라 처음에는 병원에서 여사님을 배치하였는데 밤이 되니 환자가 자꾸 여사님을 자기 침대에 올라와 같이 자자고 하여 결국은 여자 간병인은 하루 만에 못하겠다고 그만두고 마침 그때 내가 금방 수간호사와 다투고 잘려서 일이 없을 때인지라 내가 그 환자를 맡아 간병을 하게 되었다. 후에 그 환자와 거의 일 년을 함께 지내면서 간병을 하였는데 팔십도 넘은 노인의 입에서는 하냥 여자와 성에 대한 말이 떠나지 않았다.

《깜쟁이 여자하고 자 보았어요?》

 어느 날 환자가 난데없이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아니, 깜쟁이 여자를 보기도 힘든데 자 보다니? 말도 안 되지요.》

 내가 놀라며 다시 물었다.

《그럼 아저씨는 깜쟁이 여자와 자 보았어요?》

《기분이 아주 찜찜하고 이상하더라고요.》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한편 팔십도 넘는 노인이 여자에 대해 지금도 집착한다는 일이 매우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얼마 안 지나 또 다른 한 경력이 나의 인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얼마 후에 다른 한 90세 되는 노인을 간병하게 되었는데 그 환자도 비슷하였다. 나하고 그 노인 간에 한 번은 매우 이례적인 대화가 있었는데 그때 너무 기가 차서 하마터면 정신이 아찔 할 뻔하였다. 대화가 여자에 대한 이야기고 여기에서 문자로 서술하기에는 너무 야하여 생략하는데 하여간 한국에 와서 연세가 많아서 여자에 대해 관심이 없는가 생각하면 절대 틀린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태성이가 중환자실로 옮겨 갔지만 5층 전부 환자가 그리 많지 않고 대부분 환자들은 처음에 먼저 나와 마누라가 보는 중증환자실을 거쳐 병세가 악화되면 중환자실로 옮겨가는 상황이라 중환자실의 환자들에 대하여 기본상 모두 익숙하였다. 그리고 우리 간병인들 사이에도 매일 만나면서 어느 환자가 병세가 어떻고 하는 것을 서로 말을 건네게 된다.

   506호 여자 간병사가 다음날 우리가 잠시 모여서 점심 식사차를 기다릴 때 나 보고 말하는 것이었다.

  《환자가 글세 나보고 <누나, 나는 어쩌면 좋아요, 죽기 싫어요>하면서 눈물 흘리네요.》

  《의사도 어쩔 수 없는 일을 간병사가 어쩌겠어요?》

  나도 중환자를 간병할 때 근사한 상황을 많이 겪어 보았었다. 그럴 때마다 간병하는 사람의 심정도 스트레스가 말이 아니다. 직업의 특정으로 하여 눈앞에서 한 생명이 몸부림치면서 천천히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 그야말로 처참한다고 해야 할 지경이다. 이젠 임종 환자의 숨 고르는 상태를 보면 저도 모르게 한 생명이 몇 시간 지나면 이 세상에서 사라 진다는 것까지 짐작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인간에게서 삶과 죽음은 시작이고 종결이다.  삶과 죽음을 어떻게 상대하는가 하는 문제가 바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철학이기도 하고 인간의 모든 활동의 귀속 정점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거의 매일 아침저녁 바람 씌우려 거리에 나가 걸을 때 때론 홈플러스 옆길에서 작은 골목을 지나 홈플러스 방향으로 나가는데 그 작은 골목길 딱 중간에 아마 적어도 백 년은 넘게 자랐을 거라고 생각되는 한그루의 나무가 있는데 골목길을 재건할 때도 이 나무를 없애 치우지 않기 위하여 그냥 남겨 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 그 나무 몸퉁이에 글씨가 인쇄된 커다란 천이 붙어 있었는데 내용은 식물 유관 부분에서 검사한 결과 이 나무의 뿌리 위 나무 몸통은 속이 이미 거의 썩어 있어서 수시로 바람에 넘어질 수 있으니 안전을 위하여 없애 버리기로 하였다는 공지였다. 생각해 보면 이 나무는 적어도 백여 년 이 자리에서 서 있었을 것이니 일본 놈들이 와서 행패부리던 모습, 그리고 6.25 전쟁도 모두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사라 질 때가 된 것이다. 나무도 생명인 것이니 생명의 마지막을 맞아오게 된 것이다.

  나는 그 늙은 나무를 보면서도 어쩐지 내가 지켜본 이미 저 세상에 간 사람들과 곧 가게 될 사람들이 생각나면서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4

  김태성이가 506호에 옮겨간 다음 사오일 지나니 환자는 점점 명확하게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간호사실에서는 환자가 남겨 준 전화번호대로 환자의 딸과 연락하였다고 하였다.

  《내일에 환자의 딸과 이혼한 전처가 환자 보러 온대요.》 또 홀에서 점심 식사차를 기다릴 때 506 간병 여사님이 나에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래요, 그래도 그만하면 잘됐네요. 환자가 자기 말로는 마누라는 언녕 이혼하고 딸도 아버지와 관계를 끓는다고 하였다고 들었는데...》

  내가 들은 사실을 말하면서 오래전에 이미 이혼한 전처, 그리고 아버지와 부녀 관계까지 끓는다고 하였다는 딸,  그래도 전 남편이고 혈육상에서 끓어 버릴 수도 없는 아버지가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 모든 지난날 인연을 제치고 와 본다는 사실에 나는 마음속으로 심심한 진동을 느꼈다.

  점심 먹고 나는 506으로 건너가서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서 몸부림 칠 환자를 보았다. 그 순간에는 고요히 잠에 들어 있었다. 그러나 십여 년간 간병을 하면서 임종환자들을 수없이 상대하여 환자의 상태를 보면 남은 시간을 가늠할 수 있는데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호흡도 고르고 상태가 생명의 마지막 고개에서 허덕인다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평시대로 별일 없이 일어나서 내방 환자들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중환자실을 지나 기저귀 쓰레기를 배출하고 돌아서 내 방으로 가는데 마침 506호 여자간병사와 마주치게 되었다.

  《갔어요!》간병사 여사님이 나를 보고 낮은 소리로 말을 건네주는 것이었다.

  《예!》나는 놀랐다.

  《어제도 괜찮아 보이던데.》내가 뜻 밖이라는 기색으로 말했다.

  여사님은 옆에 눈치를 살펴보고는 손으로 산소줄을 당겨 치우는 시늉을 하는 것이었다. 간병인으로서 우리는 환자의 병상태와 관련되는 일에 대해서는 일절 자기 견해를 나타내지 않는다는 원칙을 꼭 지키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칫하면 병원에 불리한 말이 보호자의 귀에 들어가면 보호자와 병원 간에 시비가 생길 때 간병인이 오히려 난처한 처지에 처하게 되는 때가 많다. 나는 506호 간병사 여사님의 눈치를 알아차리고 그만 더 물어보지 않았다.

  후에 알게 되었는데 그날 저녁때에 수간호사는 환자에게 이혼한 전 처와 딸에게 환자가 이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과 병세에 대해 설명드리고 다음날 오전에 병원에 문안을 오겠다는 약속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러나 환자는 좋다 나쁘다 아무 말도 없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평시에는 말없이 잠은 잘 자는 편이던 환자가 밤 12까지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었다.

  중환자실은 두 간병인이 간병을 하고 있기에 밤 12시 전에는 남자 간병인이 담당을 서고 12시부터는 여자 간병인이 교대를 하게 되어 있다. 여자 간병인이 교대를 받고 11명의 환자의 상태를 돌아볼 때도 환자는 눈을 뜨고 있었다고 한다.

  《왜 아직도 안 주무세요? 내일 따님이 문안을 온다고 하던데요. 주무셔야 정신이 좋게 따님을 만나지요?》

  여자 간병사의 말에도 환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이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다음 간병사가 환자들에게 체위 변경을 끝내고  화장실에 다녀오고 다시 돌아오니 환자는 산소줄이 코에서 빠져나오고 호흡은 멎어 있었다. 간병사가 인차 산소줄을 다시 끼워주고 간호사실에 알려서 한참 구급하였지만 결국 상황은 돌아오지 않았다.

  《환자가 분명 자기 절로 산소줄을 뺐어요. 손을 자기 절로 쓸 수도 있고 말도 할 수 있는데 코줄이 빠진다는 것은 아마 오늘 문안 온다는 원래 마누라와 딸을 만나기 싫은 거겠지요.》

  506호 여자 간병사가 나에게 가만히 말해 주는 것이었다. 하면서 산소줄이 빠져나와 있었다는 사실은 간호사실에도 말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이미 죽은 사람에게 시비나 의문을 남겨주어 좋을 일은 하나도 없잖아요.》

  여자 간병사가 덧 붙여 말했다.

  하여 환자의 사체는 인차 예식장으로 옮겨지고 오전에 병문안을 오기로 한 환자의 전 마누라와 딸은 며칠 후에 장례가 끝난 다음에 환자의 유물을 가지러 병원에 잠시 왔다 갔다고 한다.

  중환자실 간병을 할 때 삼 년간 나는 수많은 환자가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을 지켜보았었다. 거의 매주마다 어떤 때는 매주에 몇 사람 심지어 하루에 두 사람이 죽어 나가는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환자가 죽어 나가는 장면을 상대하기가 좀 마음속에 많은 불안한 정서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상황을 부득불 자주 상대하게 되니 결국에는 적응되지 않을 수 없었다. 환자가 금방 숨을 거두고 사체가 아직 이동되지 않았을 때도 식사가 들어오면 옆에서라도 밥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연세도 많지 않고 김태성처럼 생각밖에 빨리 돌아가는 환자를 볼 때는 비록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마음속에는 피할 수 없는 그 어떤 불안이 며칠간 감돌게 된다. 죽음, 사람마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 사람마다 어떻게 상대하여야 하는가?

                                    5

  십 년 전 내가 간병일을 금방 시작하여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처음으로 한 환자의 죽음을 상대하게 되었다. 한 칠십 대 되어 보이는 뇌졸중 환자인데 보호자인 할머니가 매일 출근하다시피 병실에 와서 하루를 지냈다. 간병인들은 환자의 보호자가 매일 병실에 와서 있는 것을 엄청 싫어한다. 더욱 히 보호자가 이래라저래라 잔소리까지 하면 짜증이 나고 일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그러나 이 환자의 보호자는 그래도 잔소리는 없고 그냥 자기 손으로 환자를 먹여주고 하니 나로서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그러데 바로 그날 여느 때보다 좀 일찍 히 점심 식사 전에 파죽을 도시락에 담아 와서는 자기가 대접하겠다고 하였다. 하여 나는 점심식사 시간도 되지 않았지만 환자를 침대에서 일으켜 앉혀 놓고 밥상을 준비해 주니 할머니가 팥죽을 대접하기 시작하였다. 마침 그때 다른 한 환자의 물리치료가 끝날 시간이 되어 나는 환자를 데려 오려고 휠체어를 밀고 물리 치료실로 갔었다. 약 십 분 정도 기다려서 환자를 휠체어에 앉혀서 밀고 내가 간병하는 병실이 있는 복도에 들어서는데 병실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무슨 영문인가 하고 빠른 걸음으로 병실에 들어서니 바로 그 환자의 침대에 여러 간호사들이 둘러서서 한참 무슨 일인지 북적거리고 있었다.

  후에 알게 되었는데 사실은 보호자인 할머니가 환자에게 팥죽을 대접하다가 환자의 기도가 막혀서 질식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결국에 환자는 생명을 잃고 말았다. 그때 병실에 다른 한 환자가 있었는데 그때 아마 팔십 대 초반으로 기억되는데 6.25 때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필업생이라고 하였다. 내가 처음 생각지 않은 환자의 죽음을 상대하고 당황하여 어쩔 바를 몰라하니 그 환자는 나를 보고 하는 말이《간병사님, 그래도 운수가 좋았다고 생각하세요. 만약 평시처럼 간병사님이 환자에게 밥을 먹이다가 일이 생겼더라면 얼마나 시끄러웠을지 생각하기 초차 어려울 겁니다. 마침 보호자가 밥을 먹이다가 일이 생겼으니 간병사님은 천만다행이지요.》

  이런 말을 들으며 금방 지나간 일을 생각만 하여도 간담이 서늘하였다.

  간병인과 환자 간에 그리고 환자의 보호자 간에는 가끔 시비가 발생할 때가 수두룩하다. 사실은 한국에서 간병인이란 이 직업군의 현실을 보면 열 명의 간병사 중 아홉 명은 중국사람인 교포들이다. 간병이란 이 직업이 워낙 직업 환경이 열악하고 수입도 제일 낮은 수준이라 한국 사람들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간병이란 직업의 특수성으로 하여 일반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특히 하루 24시간을 환자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환자와 함께 생활하여야 하니 가족이 있고 가족을 돌봐야 하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직업이 아닐 수 없다. 로임도 한국에서 제일 낮은 계급이라고 할 수 있다. 하루 24시간 환자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집에도 갈 수 없고 마음대로 밖에도 나갈 수 없지만 하루 로임이 겨우 7만 원 8만 원 정도이다. 그리고 모든 것 중에 가장 접수하기 어려운 것이 환자들로부터 보호자로부터 심지어 일하는 병원에서까지 제일 힘없는 존재로 취급받는 것이다.

  얼마 전에 마누라의 동창생이 이 병원 삼층에서 간병을 하였는데 실수로 보호자가 환자에게 대접하라고 음식을 가져온 것을 한번 대접한 다음 잊어버리고 다음 때에 대접하지 않아서 음식이 상하게 되었는데 보호자가 노발대발하면서 간병사를 해고하라고 강요하여 병원에서는 보호자의 말을 들어 간병인은 결국은 쫓겨나고 말았다.

  또 다른 한 사례는 내가 직접 겪은 일인데 중환자실에서 간병할 때였다. 한 간암 환자가 있었는데 마지막까지 정신은 맑아서 자기가 조만간에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였다. 때론 절망 어린 목소리로《무엇 때문에 내가 죽어야 하나? 저 자식은 멀쩡한데 왜서 나만 죽어야 하나?!》하고 나를 가리키며 울부짖었다. 이런 장면을 상대할 때는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다. 계속 돈을 벌기 위하여 이 직업을 버리지 않으려면 이 모든 것을 참아야 한다.

  보호자나 환자가 때론 이성을 잃어 이럴 때도 있으니 꾹 참아야 한다면 병원에서까지 간병인을 대하는 태도는 한심하다. 코로나 방역이 심각 해질 때마다 제일 먼저 따귀를 맞는 것이 간병인이다. 코로나가 시작되어서부터 심각할 때나 느슨할 때나 병원의 직원들 의료인들 그 누구나 시종 출퇴근 하였다. 공공교통을 이용하고 집에 돌아가서는 사회 각계층에 다니는 집 식구들과 접촉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일 것이다. 간병인들은 거의 외계와 접촉이 금지되는 상태로 겨우 병원 문밖에 나가서 담배나 피우는 정도였다. 그러나 매번 코로나 방역이 심각해질 때면 병원에서 취하는 유일한 방역 조치는 간병인들을 문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참아야 한다.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되어도 참아야 한다.

                                       6

  

  생로병사, 이것은 인간의 자연법칙이다. 고귀한 사람 비천한 사람, 돈 많은 사람 가난한 사람, 그 누구나 이 자연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류 사회에서 이것이 그래도 공평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옛날의 황제도 지금 억만 장자도 초대형 회사의 회장님이나 길거리에서 폐지 줍는 노숙자나 그 누구도 생로병사 이 법칙만은 지키지 않을 수 없다.

  나 자신도 지금은 다른 사람을 간병해 주지만 얼마 후에는 내가 간병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현실이다.

  김태성이가 돌아간 지 아마 몇 달 지났다. 4호 침대의 간암 환자도 하루하루 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았다. 인지도 점점 못해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기실 내가 보는 병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 간다는 것은 인생의 마지막길에 오르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수년간의 간병을 하면서 중환자실로 옮겨지면 다시 중환자실에서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느 날 나는 모르는 국제전화를 받게 되었다. 전화에는 타이완에서 온 전화라고 알려졌다. 바로 예전에 통화한 적이 있는 돌아간 김태성의 친구였다.

  《안녕하세요? 다완입니다. 김태성의 친구, 몇 달 전에 통화한 적이 있는데 기억하시지요?》

  《예, 알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고생이 많으시겠는데 지금 김태성의 병세가 어떤지? 전화가 정지되어 있던데요?》

  《 네, 사실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몇 달 되는데요.》

  《그래요, 그리 일찍 돌아가셨어요? 그때 상태가 좋으니 한 일 년이나 적어도 반년은 버틸 거라고 생각하였는데, 생각밖이네요.》

  《글쎄 말입니다. 우리도 생각밖으로 빨리 돌아가셨어요. 듣는 말에는 젊은 사람들이 암세포가 확산하는 속도가 빠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알겠습니다. 돌아가신 날이 어느 날인지 알 수 있을까요?》

  《미안하지만 그건 모르겠는데요, 그러나 간호사실에서 기록을 찾아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좀 번거로우시겠지만 알아봐 줄 수 있겠어요?》

  《그럴게요, 그럼 며칠 후에 연락 오세요. 아니면 제가 문자를 보내 드릴게요.》

  이튿날 간호실에서 기록을 찾아보니 새해 사일 전인 12월 27일에 돌아간 사실을 확인하였다.

  한편 타이완 사람에게 알려 줄 때 김태성이의 생전 일에 대해 좀 알고 싶은 생각이 생겼다. 무엇 때문에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 자기 절로 생명을 결속 지을지언정 전 마누라와 친딸을 만나려고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타이완에서 무슨 일에 종사하고 사정이 어떤지 알고 싶었다.

  하여 나는 몇 번 쓰고 수정하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김태성  환자가 돌아가신 날자는 작년 12월 27일로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한편 한 가지 알고 싶은 일이 있는데 괜찮으시면 알려주시고 아니면 알려 주지 않아도 됩니다.》

  몇 분 후에 나는 회답 메시지를 받았다.

 《말씀하세요. 내가 아는 일이면 말씀드릴게요.》

  《김태성 환자가 원래 무슨 일을 하였고 마누라와 이혼한 상태라는 것은 아는데 관계가 좀 이상한 것 같아서요. 죽으면서도 만나는 것을 싫어하는 같아서요. 고독하게 돌아갔어요, 옆에 누구도 없이 말이에요.》

 《예, 그렇게 감촉될 겁니다. 가족일에 대해서 나도 예측으로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 사람이 원래는 좀 큰 사업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후에 사업에서 실패하고 나중에는 빌딩에서 문지기 같은 일을 하게 되니 그로서는 자존심이 몹시 상하겠지요. 그러니 전 마누라와 딸을 보기 싫겠지요.》

  나의 심정은 심란하였다. 김태성의 타이완 친구의 말대로 나의 예측으로 김태성의 마지막 순간의 심리를 예측한다는 것은 도의가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생명의 마지막에 가장 필요한 가족을 외면한다는 것은 과연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편 전 마누라와의 관계보다 자기의 친 딸이 아버지와 관계까지 끓는다고 하였다는 사실에서 김태성의 생전에 그 어떤 인성이 예측되는 것 같았다.

  여기서 나는 저도 모르게 내 병실에 있었던 다른 두 환자의 모습이 떠 올랐다. 한 사람은 원래 무슨 회사의 사장님이었다고 하는 환자인데 입원할 때 한 여자가 함께 내가 맡은 병실에까지 와서 입원수속을 하였다, 그때 나는 그 여자가 환자의 마누라인가 생각하 있는데 인차 주치의사와 수간호사 간의 대화에서 알게 되었는데 환자의 마누라가 아니고 동창생이라고 하였으며 환자는 이미 오래전에 사업이 잘 나갈 때 마누라와 이혼하였다고 하였다. 그 환자는 입원한 다음 내가 맡은 병실에서 약 한주일가량 있었는데 문안 오는 사람도 없고 심지어 전화 한 통도 없었다. 입원할 때 함께 왔던 여자 동창도 더 이상 소식도 없었다. 매일 손에 전화를 쥐고 이리 뒤척 저리 뒤 척하였다. 한마디로 고독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후에 내가 맡은 병실에 다른 환자가 들어오면서 그는 아래층으로 가게 되었는데 가끔 복도에서 만나기도 하였었다.

  다른 한 환자는 입원할 때 자기 절로 걸어서 병실에 들어왔는데 직업은 작가 시인이라고 하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문학에 열정이 있었던지라 자연히 작가 시인이 나의 병실에 들어오니 매우 흥취가 생겨서 환자의 이름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한 이십여 년 전에 어느 한 세미나에서 쓴 시가 당시 유명한 시인의 칭찬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에는 별로 다른 작품이 세상에 알려진 것이 없는지 그 이상의 내용이 없었다. 이 환자는 폐암 환자였다. 그래도 손에는 한 몇십 폐지가 되는 시집 복사본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출판하기 전 교정하는 것 같았다. 이 환자도 역시 오래전에 이혼한 상태라고 하였다. 그래도 보호자는 아니지만 여러 곳에서 전화가 왔는데 그중 한 여자에게서 오는 전화는 얼마간 두 사람 사이의 별다른 관계를 나타냈다. 전화에서 상대방은 환자를 보고 집이고 재산이고 모두 팔아서 병을 치료하라고 열정에 넘치게 설복하였다. 다른 한 전화는 아마 환자를 선생으로 생각하는 문학팬인 듯싶었는데 환자는 자기의 시집이 조만간에 출판될 거라는 소식을 알려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가족은 없는지 병문안 오는 사람도 없고 가족 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전화도 없었다. 환자의 물품을 정리하면서 보니 짐 속에는 많은 영양제 부류의 식약품이 수두룩 하였다. 나의 예측으로는 아마 폐암 진단을 받는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환자는 그래도 계속 창작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지 원고지에 《말기 폐암 환자의 수기》라고 제목만 쓰여 있고 아래는 그냥 공백이었다.

  아마 내가 맡은 병실에서 약 일주일 정도 있다가 병세가 불시에 악화되어서 중환자실로 옮겨 간다음 불과 며칠도 못 지나고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역시 마지막까지 옆에 보호자도 없이 고독하게 돌아갔다. 후에 나와한 조무간호사간에 이 시인에 대해 이런 대화가 있었다.

  《환자가 시인이래요, 나도 어렸을 때는 문학을 즐겨서 시인이라고 하니 마음속으로 아주 우러러보게 되었는데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아마 이십 년 전에 어느 한 세미나에서 한 편의 시가 발표되고 후에는 별로 없는 같던데요.》

  성씨가 소 씨인 조무간호사는 원래 수다가 많고 우리와도 스스럼없이 말을 나누는 사이인지라 내가 마음속 생각 그대로 말했다.

  《아니, 시인이면 뭘 해요? 시만 써서 밥벌이하고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어요? 이름도 없는 시인이던데, 자기 절로 자기의 처지를 알아야지요. 아마 시를 쓴다고 일도 하지 않고 돈도 못 벌었겠지요, 그러니 마누라도 살 수 없으니 도망갔겠지.》

  나는 소 씨 조무간호사의 환자에 대한 단도직입적인 예측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시인이라는 환자의 구체 상황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소 씨 조무간호사의 말에 저도 모르게 동감되는 듯 느껴졌다.

  

                                   7

   얼마 후에 중환자실로 옮겨간 조 씨 환자도 끝내 서서히 생명을 마치고 말았다. 환자가 임종에 가까울 때 간호사실에서는 꼭 가족에 환자의 상태에 대하여 설명을 하면서 가족에서 병원에 와서 환자의 최후를 함께 있어줄 것을 권고한다. 바로 조 씨가 생명의 마지막 고비에서 허덕일 때 간호사실에서는 환자의 아들에게 몇 번 전화로 알려 주면서 병원에 와서 아버지의 최후 모습을 지켜볼 것을 요구하였지만 아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환자는 고독하게 생명을 마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골목길 중간에 서 있는 나무는 거의 매일 저녁이나 아침에 내가 나가 걸을 때마다 일부러 제거되었는가고 찾아가 보았는데 그 공지를 부착한 지 반달이 지난 다음에도 그냥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원래 제거한다는 공지도 없어지고 보이지 안 있다. 나는 아마 식물유관부문에서 다시 이 나무에 대해 그냥 남겨 두기로 하였는가 하고 마음속으로 무척 기뻐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생각하지도 않고 다시 그 골목 거리를 지날 때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 백여 년도 넘게 서 있었을 나무는 뿌리를 땅속에 남겨둔 채 사라져 버린 것이다. 원래 커다란 면적의 그늘은 없어졌다. 나는 저도 모르게 서운한 마음이 생겼다. 마치도 나의 한 친구를 잊어버린 감촉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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