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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Apr 03. 2023

어느 30대의 암 극복기: Intro_PART 1

어느 날, 나에게 암이 찾아왔다.


인생은 예측도 통제도 불가능하다. 이 간단하고도 명료한 사실을 알고는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예측과 통제가 가능한 삶을 갈구했다. 인생의 모든 것을 계획하는 것은 나의 장기이자 취미였다. 나는 계획을 통해 내 인생을 통제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어느 날, 내 삶은 통제와 계획이 불가능한, 내가 한번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상황에 봉착했고 그 이후로 많은 것이 변했다.


2021년 9월 13일 점심시간. 핸드폰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 한마디로 인해 내 인생의 계획은 대학생 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유명한 소설의 제목처럼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큰 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뜨거운 한낮의 더위는 사그라져 가고, 아침과 저녁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서 내가 좋아하는 자전거를 가장 재미있게 탈 수 있는 그 시간. 저녁에 편의점 앞이나 공원에서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시간. 여름이라 명명하기엔 시원하고 가을이라 명명하기엔 너무나 뜨거운, 달콤한 은목서의 향기가 퍼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 계절에 나는 그렇게 한순간에 유방암 환자가 되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검사 결과가 잘못 나왔을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자타공인 건강한 삶을 살아왔다. 10년 가까이 규칙적으로 운동했고 매일 만보 이상 걷는 것은 기본일만큼 활동적이었다. 몸무게는 단 한 번도 표준체중을 넘어간 적이 없었고 오히려 대부분의 인생을 표준체중 미만으로 살아왔다. 술을 좋아하고 술자리를 즐기긴 했지만 그 수준은 남들과 비슷하거나 낮은 수준이었다. 식습관 또한 건강했다. 인스턴트 음식이나 몸에 안 좋다는 음식은 주 1회 이상 먹는 경우가 드물었고 평소에는 양질의 단백질, 과일과 야채를 즐겨 먹었다. 가끔 좋아하는 안주에 술을 마실 때를 제외하고는 소식했다. 암 가족력도 없었다. 사람들이 흔히들 알고 있는 소위 ‘암 위험군’에는 전혀 속하지 않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암 진단 이후, 나의 삶을 진지하게 되돌아보니 나는 내가 표면적으로만 건강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진단 전의 내 몸은, 아니 마음은 엉망진창이었다. 몸과 마음이 제발 좀 건강하게 살라고 몇 년에 걸쳐 다양한 신호를 줬는데도 나는 그 신호들을 감지하지 못했고, 가끔 이상한 신호를 감지해도 무시하며 살았다. 내겐 언제나 ‘나 자신’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었기에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것은 언제나 2순위, 아니 마지막 순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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