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엘 May 10. 2023

그날의 기억_PART 1


 발견

완연한 여름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던 2021년 7월. 평소와 전혀 다를 것 없이 지극히도 평범했던 어느 날, 오른쪽 가슴에서 혹이 만져졌다. 몸에서 뭔가 만져지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조금 당황했지만 당연히 별거 아닐거라 생각했다. 그냥 놔둔 채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없어지겠거니 했다. 그런데 며칠이, 몇 주가 지나도 그 별것 아닌 것 같았던 것이 계속 내 몸에 자리 잡은 채 없어지질 않았다.


얼마 뒤, 8월 즈음부터 그 만져지던 것에서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간헐적으로 콕콕 찌르는듯한, 살면서 처음으로 겪어보는 종류의 통증. 아프다는 느낌보다는 기분 나쁘다는 느낌, 불쾌하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가슴에 멍울이 만져지는 이유는 다양하며 젊은 사람에게 만져지는 대부분의 멍울은 양성종양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악성종양, 즉 암일 경우에는 멍울에서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젊은 나이, 통증이 느껴지는 멍울. 내가 찾아본 악성종양의 조건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크게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걱정하지도 않았다. 나는 더할 나위 없이 건강했고 혹시나 해서 찾아본 ‘유방암 위험군’에 열거된 대부분의 조건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만 기분 나쁜 통증의 원인을 알아내고 통증을 없애기 위해서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매일 생각했다. 정말 ‘생각만’ 했다. 당시의 나는 이제 막 시작했던 업무로 인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업무에 적응하기도 바쁜데 병원에 가기 위해 시간을 낼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에게 최우선은 내 몸이 아니라 일이었다.


병원 내원 및 조직검사

바쁜 업무 스케줄에 치여 병원 예약은 계속해서 후순위로 밀렸다. 그나마 급한 업무들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잠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던 9월 중순 즈음이 되어서야 겨우 반차를 내고 병원에 갈 수 있었다.


병원에 도착해 진료를 보기 전, 초음파 촬영 중에 혹시 의심되는 정황이 발견되면 추가 검사를 할 수 있다는 점과 추가 검사 비용을 안내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날 내가 웃으며 집에 갈 줄 알았다. 검사 비용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비용을 지불할 일이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초음파 촬영 전에는 원장님과 간단한 면담을 했다. 원장님은 내 나이가 젊고 가족력도 없기에 양성종양일 확률이 높다고 하셨다. 다만 멍울의 크기가 만져질 정도이면 멍울이 2센치 이상일 것이며 2센치 이상의 멍울은 제거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원장님도 나도 단 한 치의 의심도 걱정도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초음파 촬영이 시작되고 얼마 뒤, 상황은 역전되었다. 원장님의 얼굴은 점점 굳어 갔으며, 굳어 가는 원장님의 얼굴과 함께 나의 감정도 변화했다. 등골이 오싹해지며 난생처음으로 겪어보는 어마무시한 공포감이 엄습했다.


화면을 보니 굉장히 기분 나쁘게 생긴 무언가가 보였다. 둥근 모양이긴 하지만 경계가 흐릿하고 끝이 뾰족한 덩어리.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오른쪽 검사가 끝난 후 왼쪽을 검사했다. 왼쪽에도 뭔가 작은 것들이 보이긴 했지만 분명 오른쪽에 있는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선명하게 둥근 모양에 경계가 깨끗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왼쪽에 보이는 덩어리는 내가 가지고 살아도 되는 덩어리이지만 오른쪽의 덩어리는 악성종양이 의심되니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조직검사라니? 그날 내 계획에 조직검사는 없었다. 그날 내 계획은 초음파 검사가 끝난 후 아무것도 아니라는, 걱정할 것 전혀 없다는 의견을 듣고 후련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 금요일을 기념해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맥주를 마시는 것이었다.


조직검사는 공포스럽고 괴로웠다. 별거 아닐거라 생각하고 혼자서 병원에 간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원장님을 보조해 검사를 진행하던 병원 직원분이 겁에 질린 내 얼굴을 보고 안심하라는 듯 내 손을 잡아준 순간, 참아왔던 눈물이 흘렀다. 몸도 아팠지만 몸에서 느껴졌던 고통은 마음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검사가 끝난 후 원장님은 암이 아닐 확률도 암일 확률도 각각 절반이며, 전자의 경우에는 맘모톰 시술로 제거하면 되고 후자일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하셨다. 검사 결과가 나오는 즉시 최대한 빨리 연락을 주시겠다는 말을 듣고 병원을 나섰다. 평소의 나였다면 ‘에이, 암은 무슨 암이야. 별거 아닐거야’라는 생각을 먼저 했을텐데 어쩐지 그날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주말 내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나를 따라다녔다. 맛있는 낙지볶음을 먹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해변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월요일 오후, 운명의 시간이 찾아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30대의 암 극복기: Intro_PART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