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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Jun 28. 2023

그날의 기억_PART 2


진단 확정, 그리고 그 후 (1)

2021년 9월 13일, 월요일. 그날 오전은 평소의 월요일과 같았다.


왜 주말이 벌써 끝나버렸나 하는 아쉬움, 출근을 미루고 싶은 마음과 함께 눈을 떴고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준비를 했다. 출근해서는 동료들과 인사하고 모닝커피를 마시며 이게 인생의 즐거움 아니겠냐며 한바탕 웃고 며칠사이에 쌓인 메일을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는 당시 담당했던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외국인 연구자들의 연구실에 방문해 안부를 묻고 그 주의 일정을 전달했다. 단 한 가지 다른 것은 내 마음 상태였다.


나는 두려웠다. 조직검사 결과 전화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전화가 오지 않기를 바랐다. 입으로는 ‘아무것도 아닐거야’라고 끊임없이 되뇌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러나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시간을 보냈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절대 남에게 티 내지 않는 것은 그 누구보다 잘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것을 지나치게 너무나 잘했고 그것이 병의 원인이 되었던 것 같다.


점심시간, 뭘 먹을지 한참을 고민하고 있던 와중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올게 왔다 ‘는 생각과 함께 전화를 받자마자 내 운명을 뒤바꿔버린, 듣고 싶지 않았던, 내가 살면서 절대로 들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말이 흘러나왔다.


“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큰 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조직검사 결과지랑 자료를 들고 가셔야 하니 시간 되실 때 내원해 주세요.”


이상하게 슬프지는 않았다. 마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내게 닥친 상황이 남의 일인 것만 같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그날 오후는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다른 점이라곤 병원에 잠시 들러 자료를 받고 원장님께 추천을 받아 지방의 상급 병원에 진료를 예약했다는 것뿐이었다. 급히 오후 반차를 내고 일들을 처리하고, 자주 가던 마트에 가서 오렌지와 야채와 먹을거리를 샀다. 그리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친구들과 잠시 시간을 보냈다. 그날 밤, 하루를 정리하고 오롯이 혼자가 되자 하루종일 참았던 감정과 눈물이 터져 나왔다. 슬프다기보다는 억울했다. ‘나는 지금까지 착하게 살았는데, 그리고 아프지 않기 위해 건강관리를 잘했는데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며칠 뒤, 진료를 예약했던 상급 병원에 방문했다. 상황을 얘기하고 진료 접수를 하고 자료를 제출했다. 접수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가 산정특례라는 것을 신청해야 한다며 내게 종이를 건네주었다. 그 순간, 싹둑- 하고 희망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전까지만 해도 ‘혹시나 오진이 아닐까’하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있었으나 그 희망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산정특례를 등록하는 순간 나는 진짜 ‘암 환자’가 된 것이다. ‘이제 날이 시원해지니 슬슬 밖에서 다시 자전거를 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전거 샵에 들러 나의 보물 1호 오레오를 정비했던 것이 불과 며칠 전이었다.


그 이후, 살면서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던 다양한 검사를 했다. 전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CT와 MRI를 촬영했고, 피검사를 비롯해 그 밖의 세세한 검사가 이뤄졌다. 검사 결과, 전이는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암 진단을 받고 슬퍼했는데 전이가 없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행복하다니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담당의 선생님께서는 내 암타입의 특성(삼중양성)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며, 항암치료는 꼭 해야 한다고 하셨다. 항암치료를 하게 되면 머리가 빠질 뿐만 아니라 체력이 많이 저하되어 힘들기 때문에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은 무리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 항암치료의 종류와 치료에 소요되는 시간, 그리고 수술 이후의 일정까지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선생님께서는 본인에게 치료를 받으면 좋지만 그래도 나이가 젊으니 서울의 큰 병원에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고 하셨다. 며칠간 고민한 후 아산병원에 가고 싶다고 말씀을 전하자 예약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아산병원은 예약하기 어렵기로 악명이 높지만 담당의 선생님께서 손을 써놓으신 덕분인지 바로 일주일 뒤에, 그것도 내가 진료받기 원했던 선생님께 진료 예약을 할 수 있었다. 감사한 일이었다.


그 이후 이뤄진 치료와 수술의 과정 및 결과는 모두 감사와 감사의 연속이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갔다. 진단 전과 다름없는, 아니 이전보다 행복한 현재의 일상을 영유하다가도 가끔 별것도 아닌 것에 짜증이 나고 내 삶이, 또는 내 자신이 불만족스럽다 느껴질 때면 언제나 2021년 가을을 떠올린다. 그때 내가 얼마나 절박했었는지, 얼마나 두려웠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었는지. 그러고 나면 두려움도 절박함도 없고 좋은 사람들이 내 주위에 가득함을 깨닫고 살아가는 현재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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