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wledge is Power
"아는 것이 힘이다 (Knowledge is Power)"
누구나 아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명언이다. 가끔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더 나을 때가, 모르는 것이 약일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는 것은 힘이다. 이는 항암 치료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나는 좋아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것에는 지독하게 무심하지만 그 반대로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것에는 열정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대상이 생기면 그것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진단 이후 내 최고의 관심사는 단연 유방암과 항암치료 딱 두 가지였다. 그 둘을 파헤쳐야만 했다.
유방암 관련 카페에 가입하고 환우들의 블로그를 찾아보니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공부해야 할 것이 산더미였다. 내 암 타입이 어떤 타입인지, 암 타입에 따른 치료 방향은 어떠한지, 항암치료에 쓰는 약은 어떤 것인지, 약에 따른 부작용은 무엇인지,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먹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언제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어떤 경우에 항암치료가 밀리는지, 치료가 밀리지 않게 뭘 해야 하는지 등등. 마치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처럼 알아야 할 것들을 카테고리별로 분류하고 밤낮없이 정보를 찾았다. 심지어 같은 항암치료 약을 쓰더라도 사람들마다 반응과 부작용이 다르다기에 많은 사례를 찾아보고 사례별로 정리를 하는 작업도 필요했다.
정보를 찾던 도중 유방암 카페를 통해 20-30대 유방암 환우들만 가입할 수 있는 카카오톡 채팅방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나는 단체 채팅방은 좋아하지 않지만 필요한 정보를 위해 채팅방에 들어갔다.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던 그 채팅방은 내 항암 생활에 있어 가장 큰 위로와 도움이 되어 주었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맺게 해주었다. 지금은 더 이상 그곳에 속해있지 않지만 그 곳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존재 중 하나로 남았다.
그렇게 만사를 제쳐두고 유방암과 항암치료 관련 공부를 하고 병원 진료를 보며 9월 말과 10월을 보내고 나니 눈 깜짝하는 사이에 첫 항암 날짜가 잡혔다. 10월 21일. 진단을 받은지 딱 한 달 하고도 일주일 되는 날이었다.
결전의 그날을 통보받고 본격적인 항암 준비를 시작했다. 그 전까지의 준비가 이론 공부였다면 이때부터의 준비는 실전이었다. 항암자로서의 필수 코스라는 눈썹 문신을 하고 잘 쓰진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가발도 하나 구매했다. 항암 중에는 손톱과 발톱이 약해지기 때문에 손톱영양제가 필요하다고 해서 손톱에 바르는 영양제를 사고, 입 점막이 약해진다고 해서 부드러운 칫솔과 순한 치약도 샀다 (그 외에도 많은 것을 준비했는데 자세한 준비물들은 다음 글에서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한동안 괜찮았던 내 마음은 항암 날짜가 잡히고 본격적으로 항암 준비를 시작하면서 다시 씁쓸해졌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계절에 내가 좋아하는 은목서와 금목서 향기를 맡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슬펐다. 여행도, 자전거 라이딩도, 단풍 구경도 하지 못하고 밥 먹듯이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마음 아팠다. 건강이라면 자신 있던 내가 ’환자‘로 불리며 ’투병생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머리도 빠진다니!!!). 그 무엇보다 나는 두려웠다. 치료가 잘 될까 하는 의문, 치료를 하면서 얼마나 아프고 힘들까 하는 걱정이 매일 나를 사로잡았다. 그래서 한동안은 항암 시작일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시작일을 미룰 수 있다면 어떻게든 미루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에게는 슬퍼하고 무서워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할 일이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시작해서 내 몸에 자리 잡은 암과 영원한 작별을 하고 다시 평범한 삶을 되찾아야 했다. 마음을 다잡는데는 채팅방이 큰 역할을 했다. 이미 항암 치료를 끝냈거나 항암 치료 중인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항암이 죽을 만큼 힘들지는 않다고, 정말 힘든 일주일 정도만 지나고 나면 여행을 다니고 먹고 싶은 것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심지어 치료 중에 회사에 다니는 분들도 있었다. 그분들을 보니 힘이 났다. 나도 저렇게 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두려움은 조금씩 눈 녹듯이 사라져 갔다.
그리고 10월 21일, 나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