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진단받은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 중 하나는 항암치료일 것이다. 어떤 부작용이 따를지, 부작용에 따른 고통이 어떠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고 항암치료를 시작하면 치료 전과 완전히 같은 일상생활은 당분간 누릴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첫 번째 글에서도 언급했듯, 티비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치료 기간 내내 매일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하거나 매일 고통이 지속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항암제가 암세포뿐만 아니라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극심한 고통은 피해 갈 수 없다.
항암치료의 부작용과 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생사를 오가는 수준의 고통을 겪지만 또 다른 사람은 힘들긴 하지만 그럭저럭 이겨낼 만한 수준의 고통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고통의 강도가 어찌 되었든 누구에게나 치료가 힘든 것은 마찬가지이다. 또한 어떤 노력을 해도 치료의 부작용을 피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몇 가지 준비물을 구비하여 부작용에 대비하거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이에, 유방암 항암치료를 앞둔 분들을 위해 몇 가지 준비물을 안내해드리고자 한다. 각각의 준비물은 사람과 상황에 따라 필수적인 준비물이 될 수도, 없어도 괜찮은 것일 수도 있다. 나의 주관과 경험을 반영하여 5점 만점을 기준으로 추천도를 기재하였으니 추천도와 본문의 내용, 본인이 처한 상황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무엇을 어디까지 준비할지 결정하면 된다.
이 글이 항암치료를 앞둔 모든 분들에게 작게나마 위안과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1. 눈썹문신
- 추천도: 4점
- 어떤 이들은 선택사항이라 여기겠지만 나는 눈썹문신은 필수사항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 머리카락 없는 것도 서러운데 눈썹마저 없으면 정말 아파 보인다. 문신으로 눈썹이라도 지켜야 한다 ‘는 항암 선배들의 조언을 듣고 눈썹문신을 했다.
- 많은 유방암 환자들이 가장 염려하는 항암치료 부작용은 탈모이다. 대부분의 유방암 항암치료 약은 탈모를 동반하기에 유방암 환자들에게 탈모는 피해 갈 수 없는 숙명이다. ‘탈모’라고 하면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만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데, 항암치료를 하면 머리카락뿐만 아니라 눈썹을 포함하여 몸의 모든 털들과 작별을 해야 한다.
- 나의 경우에는 눈썹이 치료 후반부에 가서야 빠지기 시작했지만 치료 초반부에서부터 눈썹이 빠지는 분들도 많다. 항암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몸의 모든 회복 과정이 느리기 때문에 눈썹문신을 할 수 없다. 눈썹문신을 하기 원한다면 적어도 치료 시작 3주 전에는 시술을 해야 리터치까지 받고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항암치료를 갑자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에 리터치 일정까지 고려해 시술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나도 항암치료 일정이 급하게 잡혀 리터치까지는 하지 못하고 1회 시술만 했는데 그래도 아예 시술을 하지 않는 것보단 괜찮았다.
2. 삭발
- 추천도: 3점
- 머리카락은 눈썹과 다르다. 눈썹은 빠지기도 하고 빠지지 않기도 하고, 치료 초반에 빠지기도 하고 후반에 빠지기도 하는 등 사람마다 차이가 크지만 머리카락은 그렇지 않다. 1차 항암날로부터 2주가 지나면 머리카락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하고, 3차 항암을 끝내고 나면 대부분 민머리가 된다. 매일 미친 듯이 우수수 쏟아져내리는 머리카락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또는 머리카락이 빠짐과 동시에 시작되는 두피 통증 때문에 많은 환우분들이 1차 항암 후에 삭발을 한다. 머리카락이 길면 길수록 머리카락이 무거워 두피가 더 아프다고들 한다. 반면, 삭발을 하지 않고 머리가 빠지는 대로 그냥 두거나 삭발을 하더라도 가발 착용 시 자연스러움을 위해 뒷머리나 옆머리는 남겨 두는 분들도 많다. 본인의 취향(!)과 상황에 맞춰 삭발 여부 및 범위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
3. 가발
- 추천도: 3점
- 원래 머리가 숏커트 스타일이었던 나는 가발을 쓰는 것보다는 차라리 대머리가 어울릴 것 같아서(!) 가발을 사지 않으려다 혹시나 하여 딱 한 개만 구매했다. 결국 가발을 단 한 번도 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발이 있다는 사실은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다른 환우분들은 한 개나 두 개 정도, 스타일이 조금씩 다른 가발을 구매하여 사용하였다.
- 가발 가격은 최소 5만 원부터 최대 100만 원 이상까지 다양하며 본인의 평소 헤어 스타일, 항암치료 기간 중 외부활동 여부, 외부활동의 종류, 항암 치료 후 계획 등에 따라 개인마다 선택지가 다르다. 저가 또는 중저가의 가발은 아무래도 진짜 머리카락에 비해 어색하고 가발 티가 난다. 하지만 치료 중 외부활동이 많지 않아서 가발을 자주 쓰지 않을 사람에게는 괜찮은 선택지이다. 고가 가발은 인모를 쓰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가발 제작업체에서 커트 및 샴푸 등 관리도 맡길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가격이 부담스럽다. 주로 항암 중에도 회사를 다니거나 외부 활동이 많은 분들이 고가 가발을 선택한다.
4. 항암비니
- 추천도: 5점
- 머리카락이 걷잡을 수 없이 빠지기 시작하면 바닥과 옷, 침구, 베개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머리카락이 붙어 있다. 심지어 읽고 있는 책에도 머리카락이 붙어 있고 가끔은 손톱 사이에도 끼어있다. 바야흐로 머리카락, 아니 ‘샤프심’과의 전쟁이다 (삭발 후 아주 짧은 머리카락들이 빠진 모습은 마치 샤프심이 흩뿌려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빠진 머리카락을 ‘샤프심’이라고 부른다).
- 온 집안에 나뒹구는 샤프심과 싸우는 횟수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다면 항암비니를 쓰고 지내는 것이 좋다. 평소에는 비니가 선택사항이지만 수면 시에는 필수사항이다. 비니를 쓰지 않고 잠자리에 들어갔다가는 다음날 아침 샤프심으로 얼룩진 처참한 형상의 베개와 마주하게 된다. 눈을 뜨자마자 베개에서 샤프심을 제거하는 작업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비니를 쓰고 자면 아침에 기상 후 비니를 벗어 세면대에 몇 번 털어내면 끝이다.
- 혹시나 겨울에 항암을 한다면 보온 때문에라도 비니를 꼭 쓰는 것이 좋다. 나는 10월부터 2월까지 항암을 했기에 비니가 보온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머리가 따뜻하면 온몸이 따뜻해지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 낮아진 체온을 올리는데 효과적이다.
5. 손발톱 보호제
- 추천도: 5점
- 항암을 시작하면 손발톱도 약해진다. 항암 차수가 쌓여갈수록 손발톱에 세로 또는 가로로 무늬가 생기고 마치 멍이 든 것처럼 색깔이 새까맣게 변하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손발톱이 깨지거나 심지어 빠지기도 한다. 평소에는 손발톱의 소중함을 잘 모르고 살지만 항암을 시작하면 손발톱이 얼마나 튼튼한 존재였는지, 얼마나 내게 많은 도움을 줬는지, 이 거친 세상에서 얼마나 나를 잘 지켜줬는지 깨닫게 된다.
- 약해지는 손발톱을 지키기 위해 손발톱 보호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나는 항암 기간 내내, 그리고 항암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매일 밤 자기 전 항상 손발톱 보호제를 바르고 잤다. 그 덕분인지 총 6회의 항암 중 5회까지는 손톱이 크게 손상되거나 약해지지는 않았다. 마지막 차수인 6차 때는 몸에 약이 쌓일 만큼 쌓여서 그런지 이전보다는 손발톱이 조금 약해지긴 했으나 그래도 크게 고생하진 않았다. 보호제를 바르다고 해서 손상을 백 프로 막을 수는 없고, 또 보호제를 발라도 효과가 없었다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효과가 어떻든 조금이라도 고통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시도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6. 부드러운 칫솔과 순한 치약
- 추천도: 5점
-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항암제는 암세포를 죽이면서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세포들도 손상시킨다. 그중 하나가 점막인데, 위장 내 점막뿐만 아니라 구강 내 점막도 이에 속한다. 소중한 구강 점막과 잇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쓰는 칫솔보다는 조금 더 부드러운 칫솔이 필요하다. 또한 점막이 약해지면서 매운맛도 이전보다 더 잘 느껴지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화하고 매운’ 치약보다는 순하고 부드러운 치약이 필요하다. 보통은 프로폴리스 치약을 많이 쓰는데, 이는 항암 중 구내염 방지를 위함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