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스타그램은 도움이 되었을까?
고등학교, 대학교를 모두 문과로 졸업하고 나서 PEET를 준비했을 때의 장점이자 단점은 주변에 아무도 이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시험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직접 말한 사람은 손에 꼽는 정도였는데, 그래서 이 시험이 어떤 시험인지 모두 몰랐다. 그래서 PEET를 준비한다 하면 으레 나오는 반응은
“그럼 그거 합격하면 바로 약사 되는 거야?”
“아, 학교를 더 다녀야 하는구나. 그러면 대학원을 가는 거야?”
“그래도 수능 때보다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 훨씬 적으니까 금방 합격하지 않을까?”
선에서 정리되었다. 처음엔 공부를 할 때 잘할 수 있었는데, 막상 나 혼자 공부를 하면서도 내가 잘하고 있는지, 비교를 할 대상이 없었다. 물론 학원에서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을 봐도 되지만, 생각보다 나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없어 보여서 자극제가 되지 못했다.
그때 마침 7급 공무원을 준비하던 친한 대학동기에게서 이런 제안을 받았다.
“공스타그램을 해보는 건 어때? “
공스타그램의 존재를 난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친구도 공스타그램을 하고 있었는데, 같은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팔로우하게 되면 결국 그들은 잠재적 경쟁자이기 때문에 더 자극이 되고, 정보교환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자기가 운영하는 공스타그램을 얼핏 보여주었는데, 공부를 올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반신반의하면서 계정을 만들었다.
‘계정이름도 만들어야 하는구나. 뭐로 하지?’
그때 내가 준비했던 시험은 17학번이 되기 위한 9회 피트였는데 그래서 17학번을 꿈꾼다는 의미에서 ‘드리밍’이라는 계정이름도 만들었다. 잘 알지도 모르는 해시태그를 달아가면서 팔로우를 늘려갔다. 생각보다 공스타그램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댓글도, 아무 말도 없었지만 그래도 팔로우가 늘어가고 나도 맞팔로우를 하면서 같이 공부하는 느낌이 들어 친구가 생긴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물론 공부를 하는 것을 인증하는 곳이니 나도 말을 걸진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는 벽에 대고 말하는 기분이라 내가 먼저 팔로우하는 사람들에게 오지랖성 댓글을 달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문과 초시가) 그래서 소통을 해갔다. 고독한 수험생이었는데 잠시나마 고독해지지 않아 위안이 되었다.
(이건 초시 때 플래너는 아닌 마지막 피트 때 썼던 플래너지만, 공스타그램에 올리긴 했었다. 초시 때 기록은 대부분 삭제된 것 같다)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무의미한 인증을 지속적으로 했는데 장점은 분명 존재했다. 일단, 내가 안 올리면 그만일지라도 안 올리면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기 때문에 보여주기식 공부일지언정 시간을 허투루 쓰면 안 되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래서 정말 꾸준히 공부를 매일 했던 것 같다. 또한, 취업준비생일 당시에는 그리 공부를 진득이 하진 못했기 때문에 내가 학원에서 하던 공부가 6시간, 7시간 정도 되면 와 나 정말 열심히 살았네! 했는데 막상 공스타그램을 보면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큰 자극제가 되어 주었다. ‘나보다 잘하는데 나보다 공부를 훨씬 많이 하다니!’ 그래서 나도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서 순공시간을 점차 늘려갔다. 그리고 SNS를 또 다른 SNS로 돌려 막는 느낌이지만, 내 인스타그램의 본 계정으로 자주 들어가지 않아서 그런지 상대적 박탈감을 많이 느끼진 않았다.
하지만 단점도 존재했는데 본 계정을 안 들어가는 만큼 공스타그램을 많이 했다는 것, 그리고 질보다 양에 집중하게 되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사람들보다 공부시간을 더 많이 해야 내가 제일 많이 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공부시간만 올릴 때 플래너인증을 해서 내가 하루에 무엇을 공부했는지 올렸다. 그래서 시간이 적더라도 공부한 것이 많으면 훨씬 뿌듯했다. 그 이후로 공부할 때 플래너 쓰는 습관이 생겼다. (입학하고 나선? 공부를 안 해서.. 플래너를 안 쓰지만 공부를 하게 된다면? 다시 쓸 것 같다.)
결론적으로 나는 공스타그램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은 케이스이다. 친구도 공스타그램을 통해 많이 늘릴 수 있었고, 공부습관도 잡을 수 있었다. 공부습관을 공스타그램을 통해 잡다 보니 의도치 않게 수험기간 내내 공스타그램을 운영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면 해시태그를 굳이 달지 않아도 팔로워가 늘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의 공부가 어떤지 보는지 신경이 쓰여 더 열심히 공부를 했던 것 같다. 오프라인으로 알게 된 친구가 나의 공스타그램을 얘기하길래 놀란 적도 있었는데 그만큼 더 큰 책임감을 느끼고 공부하고 인증했던 것 같다. 덕분에 수험생활동안 덜 외로웠다. (물론 항상 그런 건 아니었다. 이건 장수생이 되면서 더 심화되었다. 그 얘기는 추후 더 다뤄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