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생각하면 틀리고, 틀리다 생각하면 맞는 유기화학
PEET 초시 시절, 여름방학 특강으로 종합반을 들었을 때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과목은 유기화학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직선들에 숨어있는 탄소와 수소, 그리고 입체적 능력을 요구해 같은 구조처럼 생겼음에도 하나는 S형, 하나는 R형이라 서로 겹치지 않는다는 말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그냥 엎어버리면 똑같은 구조 아닌가?
그래서 사실 여름방학 특강을 듣고 내가 PEET를 포기하게 되면 그것은 다 유기화학 때문이라고 부모님께 통보를 했던 적이 있었다.
이때 친오빠가 했던 말은, 유기화학은 처음엔 그럴 수 있는데 나중에는 쉬울 수밖에 없는 과목이라며 일단 반년만 더 시도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여름방학 특강을 듣는 도중 다른 강의를 하나 더 수강해서 나 같은 완벽한 초심자를 위한 강의를 들었다. 그 강의는 총 8개밖에 되지 않는 매우 기초적인 강의였는데, 이걸 들은 이후로 전반적인 유기화학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고 그래서 9월부터는 종합반에서 나와 그 강사님의 단과강의를 풀 커리를 타기 시작했다. (이 강사님은 이때 당시엔 일타강사였지만, 추후 있을 오개념으로 인해 일타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사람 일이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나 보다.)
이 강사님의 수업진행 방식은 완벽한 판서였다. 유기화학에서 가장 기본이 된다고 할 수 있는 육각고리를 정말 말도 못 하게 완벽하게 그리신다. 어떻게 육각자를 대고 그린 것도 아닌데 그렇게 완벽한 정육각형이 나올까?
이 강사님 수업을 통해 유기화학에서 안정한 화합물일수록 에너지가 적게 나옴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 에너지가 많을수록 힘이 강하다는 의미니까 더 강력해서 안정한 물질인 줄 알았던 여름시절의 내가 우스워진 순간이었다. 이 강사님 수업을 들으며 필기노트를 단권화해서 만들어나갔고 그 내용을 3월 기출문제 커리큘럼 전까지 7번 반복했다.
이때는 이해가 안 되면 넘어가지 못하는 공부습관 때문에 이해가 될 때까지 그림을 그렸었고 진도도 안 밀려야 했기 때문에 잠을 정말 많이 줄였었다. 새벽 세시까지 공부하고 새벽여섯시에 일어나 하숙집 친구와 함께 한 시간 공부를 하고 아침밥을 먹었었다.
이론을 무려 7 회독을 하고 보게 된 첫 문풀 시험 결과는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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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문제 중에 2문제 맞았다.
내 공부와 유기화학에 대한 회의감이 든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