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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um Aug 10. 2023

A-8. 상품은 아이와 같다

출시는 시작점에 불과하다

 

 상품을 한 가지 만들기 위해 상당히 많은 노력과 시간과 자원이 소요된다. 기획을 하는 과정에서 시장 상황과 경쟁 상품들을 분석하여야 하고, 상품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숱한 고민을 한다. 솔직히 100% 확신을 가지고 출시를 했던 기억이 있던가? 없다. 직관과 경험이 쌓인 후에는 최소 70% 이상의 확신을 갖고 출시할 수는 있었다. 물론 나의 예상과 달리 흘러가는 경우가 참 많았다. (망했다는 뜻이다) 그 이유를 돌이켜 보면, 가 개발한 상품과 늘 사랑에 빠졌던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의심, 불안의 감정을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를 설득하려는 확신 편향의 본성을 갖고 있다. 그러다 보면 내 상품을 바라볼 때, 부족한 지점을 발견하더라도 외면하고 싶고, 마치 내 아이처럼 그저 사랑스럽게만 바라보게 된다. 고로 가장 경계할 부분이다. 


 그런데 사실 다른 의미로, 상품은 아이와 같이 다루어야 하는 게 맞다. 사랑에 푹 빠지라는 것이 아니라 상품은 사람 하나를 키워내는 것처럼 시간과 정성을 들여 키워야 하는 소중한 아이와 같다. 상품의 출시는 그저 시작점에 불과하다. 철저히 고객 관점에서 상품의 탄생은 출시 시점이고, 고객의 평가를 받는 그 순간부터 상품의 라이프 사이클이 시작된다. 그때부터는 우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심정으로, 고객이 어떤 것을 불만족했는지, 어떤 것을 만족스러워했는지 꼼꼼하게 모니터링하고 주기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


 내가 출시한 상품 가운데 지금까지도 고객에게 사랑받는 한 제품은 벌써 출시한 지 5년이 넘었지만 건재한 매출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에는 그러한 류의 상품이 생소했는데, 이후 유사 제품들이 우후죽순 출시되면서 이제는 대중적인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그 상품의 전신은 사실 아예 다른 형태였다. 맛부터 시작해서 패키지 형태, 콘셉트까지 모두 지금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구글링을 하니 이미지가 있긴 하다) 첫 출시 때는 고객의 반응도 시원찮았다. 그래서 재빠르게 무엇이 문제인지 분석하여 원재료부터 패키지 형태까지 모두 지금의 모습으로 바꿨다. 그러자 점차 매출과 판매수량이 증가했고 재구매율이 높아졌다. 그 후에도 디자인이 바뀌고, 패키지에 지퍼백도 생기고, 상품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과자인 후렌치파이도 그 본질적인 맛과 형태는 유지하되, 고객에게 불편함을 주던 요소들을 개선하므로 이 과자를 더 사랑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초창기 후렌치파이는 2개의 파이가 한 봉지에 들어 있었고, 분리하려면 꼭 한쪽이 부서지는 현상이 있었다. 그것을 이젠 한 봉지에 한 개의 파이를 넣는 형태로 변경했다. 더불어, 잼의 물성이 봉지 윗부분에 달라붙어 떼기가 힘든 문제, 페스츄리 끝부분이 쉽게 부스러지는 문제들이 거의 개선됐다. 설비 기반의 대규모 양산 과자가 그렇게 개선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지 눈에 선하다.

 부정적인 경우도 있다. 나는 최근 들어 특정 브랜드의 짜장라면을 구매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좋아했던 그 소스의 맛이 아니기 때문이다. 맛이 닝닝해졌다 했더니 알고 보니 나트륨 때문에 배합비를 조정했다나. (옛날 맛을 돌려내라)


 이처럼 정말 신기하게도 고객은 미세한 차이까지 다 알아본다. 두렵고 무서운 일이지만, 바꾸어 말하면 기회를 다시 얻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고로 초반에 나의 확신 편향으로 출시한 상품이 시장에서 부정당했다 하더라도 너무 위축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아이를 잘 돌보는 심정으로 상품을 다듬어 나가는 기회로 삼으면 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제대로 키워 보기도 전에 너무 빠르게 망했다고 결론 내고 세상에서 사라진 상품들이 있다. 내가 더 정성을 들였다면 달랐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존재하는 상품 하나 하나에는 제각기 다른 성장 스토리와 비하인드가 있다.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돌봄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상품은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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