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하진 Mar 22. 2023

누군가의 꿈이 되는 순간 : 예상치 못한 순간의 반짝임

  하루종일 병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항상 비슷한 사람들을 보고 비슷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다른 듯 반복되는 일상에 나도 모르게 기계적으로 변해가게 되는데, 그 매너리즘에 취하지 않으려 항상 주의하지만 나도 모르게 무감각해지는 날들이 생기곤 한다.


차라리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바쁜 날에는 내가 매너리즘에 빠지고 있나,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오늘처럼 평소보다 한가한 날엔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가 뭘 하고 있나, 일상이 답답하게 느껴지는데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중학생 1학년인 남자아이가 엄마와 함께 치과치료를 받으러 왔다. 얼마나 긴장되고 무서울까, 나도 어릴 적 부모님 손에 이끌려 치과를 갈 때는 전날 밤부터 너무 가기 싫어서 잠을 뒤척였는데 이 친구도 그런 마음으로 왔겠지- 혼자 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들어갈 때만 해도 잔뜩 긴장해서 움츠려 들어있던 친구는 예상외로 치료를 잘 받고 나왔고 대기실 저기 한쪽에서 엄마와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눴다.


수납을 해드리려고 보호자분을 호명했더니 보호자분이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이야기하신다.

"우리 아이가 초등학생 때는 대통령이 꿈이었는데, 오늘 진료받고 나서는 치과의사가 꿈이라고 그러네요!"

아! 얼마나 뿌듯하고 순간 두근거리던지, 나에게 하는 소리가 아니라 우리 원장님께 하는 이야기이지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누군가의 꿈이 된다는 것. 얼마나 감동스러운 이야기인가. 오늘 빨리 진료를 마무리하고 이 이야기를 원장님께 전해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요동을 쳤다. 원장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으실까! 지루한 루틴이 되어 버린 하루가 갑자기 에너지가 넘치는 것을 느꼈다.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뿌듯한 미소. 뿌듯함.


나이가 들면서 누군가에게 단순한 칭찬을 받는 것도 힘들어지는데 꿈이라니. 엄청난 찬사이다.

나의 들뜬 마음과 다르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원장님의 반응은 생각보다 시큰둥했다. 그렇지만 속으로는 뿌듯해하셨으리라 장담하고 있다. 이렇게 루틴처럼 흘러가는 일상도 누군가에겐 꿈이 될 수 있을 만큼 일상 중 중요한 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며, 매너리즘에 빠져가는 마음을 다 잡아 본다. 예상치 못한 순간의 반짝임이 내 마음에 봄을 다시 불러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실장님은 무슨 일을 해요? : 맨날 놀고 있는 것 같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