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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남 Apr 18. 2023

7. 사월의  마지막 밤에

삼십 년 만에 다시 음악을

2010년 4월 30일,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나는 여의도 63 빌딩 근처에서 오랫동안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매년 사월에 열리던 벚꽃축제도 올해는 취소되었고   유흥가는 모두 불이 꺼지고 택시도 불황이었다.

지난달 26일, 연평해전에도 참가한 역전의 초계함 천안함이 북한 잠수함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하였다.

북한의 불법 기습공격으로 46명의 젊은 용사들이 희생되었으며, 구조과정에서 한주호 준위가 순직하였다.

대한민국은 슬픔에 잠기고 국민 모두 분노했다.

라디오에서 진행자의 마지막 멘트가 끝나고 클래식음악 방송에서 예상치 않은 음악이 흘렀다.

듣다가 보니 귀에 익은 목소리로 SIMON & GARFUNKEL의 'APRIL COME SHE WILL'이었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노래였지만 사월의 마지막 밤의 선곡에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사월에 그녀는 올 거야.

봄비에 시냇물이 개울을 넘칠 때

오월에 그녀는 머무르겠지

다시 내 팔에 안겨 쉬면서

유월엔 마음이 변하여

쉬지도 않고 밤거리를 배회하겠지

칠월에 그녀는 떠나겠지

전혀 간다는 예고도 없이


음악이 페이드 아웃으로 끝이 나면서 자정을 알리는 시그널이 적막 속에 울렸다.

그때 근처의 빌딩문이 열리면서 바바리코트를 걸친 키가 큰 남자가 내 택시에 다가왔다.

그는 파주에 갈 수 있냐고 물었고 나는 쾌히 승낙했다.

술을 약간 마신 듯하며 피로해 보이는 그는 조수석에 올라 등받이를 45도 정도 뒤로 고정하고는 눈을 감았다.

마포대교를 건너 강변북로에 진입하자, 그가 눈을 감은채 입을 열었다.

'기사님은 혹시 과거에 남을 위해 헌신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흔하지 않은 특이한 질문에 대답을 못한 채 가만히 있었다.

'기사님, 제가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하더니 등받이를 바로 세우고 이야기를 했다.


'이달 초, 집에서 딸과 함께 티브이로 한주호 준위의 영결식을 보게 되었어요.

본인의 임무도 아닌데 자식 같은 부하들을 구하려고 노병이 자청해서 잠수를 하다가 순직하셨지요.

고등학생인 제 딸이 저에게 물었어요.

'아빠는 살아오시면서 혹시 남을 구하려고 헌신하신 적이 있나요?'

저 역시 당돌한 딸의 질문에 당황했는데, 오래 전의 어떤 일이 떠올라 딸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어떤 일이었는데요? 궁금하네요?' 하며 내가 물었다.

그는 자세를 다시 잡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막 끝난 여름, 한창 경기가 좋던 시기였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무역회사에 입사한 저는 영국왕실에도 납품한다는 

수입한 고급식기를 포항의 한 관광호텔에 납품을 하러 갔어요.

같이 온 회사의 차량은 일정이 바빠 물건을 하차한 뒤 곧바로 서울로 떠나고, 저는 납품을 완수한 뒤 다음날 아침 첫 고속버스를 탔지요.

기사님의 바로 뒷좌석에 앉은 나는 버스가 출발하자 곧바로 잠이 들었나 봐요.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떠 보니 버스는 고속도로 상에 정차해 있었고, 저 앞에 경산휴게소가 2 킬로미터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였어요.

그리고 우리 버스 기사님은 운전석에 없었어요.

우측 차선 앞으로 차들이 뒤엉켜 있는데, 아마도 저 앞에서 교통사고가 난 것 같았어요.

잠시 후 우리 버스의 기사님이 부상당한 사람들을 인도하며 버스로 걸어오는 것이었어요.

중년의 남자가 부상당한 아이를 안고 버스에 올랐어요.

열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의 이마에는 붉은 피가 묻은 수건이 덮여 있었어요. 버스는 만석이었고 나는 곧바로 일어나 내 자리에 앉으라고 했어요.

아이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이마가 함몰되어 보이고, 코에서는 핏방울이 푸르륵 맺혔다가 꺼지힘겹게 숨을 쉬었어요.

나는 뒤편을 향해 소리쳤어요.

'아이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의료 상식이 있으신 분 안 계십니까?' 하자, 맨 뒷좌석에서 머리가 짧은 해병대 사병이 뛰쳐나왔어요.'

그는 뛰어와 아이 상태를 보더니 '아이 몸이 굳어져 가고 있으니, 아저씨는 아이 팔을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며 팔 근육을 주물러 주세요.' 하였어요.

그리고 그는 아이의 다리를 주무르면서 굽혔다 폈다를 반복했지요.

그런데 잠시 후 아이의 코에 푸르륵하며 맺히던 핏방울이 멈추는 것이었어요.

나는 아이의 코에 귀를 가까이 대 보았지요.

'아이가 숨을 안 쉬는 것 같아!' 하며 군인에게 말했어요.

그러자 그가 닫힌 아이의 입을 손으로 열고 치아를 벌리고 안을 들여다보더니 '혀가 말렸네.' 하더니 손가락을 집어넣어 혀를 풀었어요.

아이가 갑자기 숨을 '푸후' 하며 쉬는데, 군인이 '으악!' 하며 '아저씨! 볼펜 같은 거 없어요? 아이가 입을 다물어 내 손가락을 물었어요.' 하였다.

나는 얼른 상의에 꼽혀있는 볼펜을 군인에게 주었지요.

군인은 아이의 치아 사이를 벌리고 손가락을 빼내었어요.

그때 기사님이 말했어요. '나는 우선 버스에 부상자를 싣고 가다 보면 연락을 받은 경찰이나 119 구조대가 따라와 인계될 줄 알았는데 영 무소식이네.' 하였어요.

그때 내 눈에 동대구 톨게이트가 2킬로미터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였지요.

나는 '기사님, 동대구로 나가세요. 가까운 곳에 대구 파티마 병원이 있어요.' 하고 외쳤어요.

서울로 향하던 버스는 갑자기 대구 시내로 들어가 병원 응급실이 보이는 대로변에 정차를 했고, 우리들은 환자들을 데리고 응급실로 뛰었지요.

응급처치가 시작되자 따라온 기사님은 '승객들이 기다리고 있어 우리는 이만 가야 합니다.'라고 하셨지요.

버스로 돌아가며 나는 군인에게 '귀신 잡는 해병이라더니 정말 훌륭하군. 자네가 아이를 살렸네.' 하며 칭찬했지요.


버스로 돌아오자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안내양이 얼굴빛이 괴로워 보였어요.

그 시절에는 고속버스에는 항공기처럼 여승무원이 있어서, 승객들에게 보리차도 주고 사탕도 주며 승객들을 보살펴 주었지요.

차에 오르자 기사님이 안내양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며 물었지요.

안내양은 '사고 지점에 다른 차도 많은데, 왜 하필  서울 가는 버스에 부상자를 태웠냐는 거였어요. 일정에 차질이 났다며 항의가 많았어요.' 하였다.

그러자 기사님은 일어나 뒤를 보며 큰소리로 당당하게 말했어요.

'손님들의 여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사고 지역에 차들이 많았지만 누구 하나 구조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어요. 고속버스는 고속도로상에서 사고를 발견 시 구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기 계신 신사분과 해병 사병은 손과 옷에 피를 묻혀 가며 아이를 살리려고 애쓰셨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며 나와 해병에게 고개를 숙이셨지요. 그러자 몇몇 승객이 박수를 치며 '고생하셨습니다!' 하며 위로를 보냈어요.

기사님은 휴게소의 휴식시간을 줄여 가며 서울에 버스를 도착시켰어요.


회사에 돌아온 나의 옷에 피가 묻은 것을 보고 사장님과 영국에서 온 거래처의 사장님이 놀라며 물으셨지요.

이야기를 들은 영국인은 '미스터 킴! 유아 히로!' 하며 엄지손가락을 나에게 추켜올렸어요.'

나의 이야기를 들은 딸은 '아빠! 정말 의인이시네요!' 하며 나를 존경하는 느낌이었어요.'


파주에 도착해 손님이 계산을 마치자 나는, '선생님과 해병도 훌륭하시고, 특히 사람을 살리려고 승객들의 비난을 예상하면서도 부상자를 버스에 태우신 고속버스 기사님의 결단, 정말 훌륭하십니다.' 하였어요.


나는 아침에 영업을 마치고 지난밤의 이야기에 감동이 멈추지 않아 공원에 갔지요.

그리고 한주호 준위가 사고 소식을 듣고 바다로 달려가는 마음을 가사로 써 보았어요.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떠 보니

꿈에서 보이던 동료들의

고통스럽고 애절한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가족의 만류도 뿌리치고

구조대원들과 달려간다

고통스럽고 애절한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들려온다.


조금만 힘을 내 기다려 준다면

나 지금 바다로 달려간다.

포기하지 말고 가족을 생각해

우리가 바다로 려간다.  

신이여 저들을 구해 주세요

사랑하는 나의 전우를


얼마 후 음악이 완성되었지만 가사가 너무나 처절해서인지 연주를 해보면 눈물이 앞을 가려 발표를 하지 않고 미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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