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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남 Apr 18. 2023

3. 승승장구하세요!

삼십 년 만에 다시 음악을

어느 날 밤 8시경, 마포역 부근에서 직장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 한쌍이 택시에 탔다.

남자는 '기사님  안녕하세요. 한 사람은 성수대교 사거리 근처에 내리고요, 다음 사람은 대치동까지 가겠습니다.'라고 공손히 말했다.

나는 '네, 그러면 강변북로 타고 성수대교 넘으면 될까요?' 하고 묻자, '네, 맞습니다.'라고 하였다.

가는 동안 대화가 전혀 없던 두 사람은 차가 성수대교를 오르 그제서 여자가 입을 열었다.

'새로 옮긴 회사는 일해보니 어떠세요?'라고  묻자, 남자는 '전 번 회사보다 연봉은 약하지만 팀장님이 겸손하시고, 맡은 업무가 내 성격에 잘 맞아요.' 하였다.

남자가 나에게 '기사님, 사거리에서 직진하셔서 50미터 정도 후에 세워주시면 됩니다.' 하였다.

차가 멈추자 그는 '기사님 제가 대치동까지 요금을 먼저 계산해 드릴게요. 아마 이 정도면 충분할 거예요.' 하며 현금을 이만 원 주었다.

그리고 차문을 열고 밖에 나가더니 조수석옆에 와서 '기사님 안전 운행하세요.' 하며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나는 요즘 보기 드문 예의 바른 청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 다시 출발해 신호에  멈추자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실례지만, 조금 전 두 분이 대화하시는 것을 듣다 보니 남자 친구분이 최근 직장을 옮기셨나 봐요, 혹시 약혼자 이신가요?' 하였다.

그러자 손님은 '약혼자는 아니고요  달 전에 친구의 소개로 사귄 사람인데요, 대기업에 다녔거든요. 제 마음속으로 사람도 예의 바르고 직장도 좋아서 결혼을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몇 번 만났을 때 그가 고민을 털어놓았어요. 직장의 팀장에게 불만이 있었나 봐요. 툭하면 저녁에 회식한다고 불러서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고, 추진하던 일에 문제가 생기면 부하직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비열한 인간형이라며 이직을 해야겠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만큼 연봉을 많이 주는 회사는 없을 것 이라며 조금 더 참아보라고 했지요. 그리고 헤어진 뒤로 한동안 연락이 없었어요.

저는 한 달 가까이 연락을 기다리다가 자존심을 버리고 오늘 제가 전화를 했어요. 만나보니 이미 중소기업으로 이직했더군요. 저는 실망스러워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중이에요.' 하였다.

나는 '지난주 늦은 밤에 여의도에서 두 명의 남자들이 타서 목동에 가자고 했는데 상사로 보이는 남자는 술에 망가져 코를 골며 자더군요. 목동에 도착해서 원하는 대로 아파트 단지 안까지 깊숙이 들어갔어요. 그리고 젊은 분이 '기사님, 팀장님을 집까지 바래다 드리고 저는 천호동으로 가야 하거든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하는 것이었어요.

잠시 후 그가 돌아와 천호동으로 출발했는데 손님의 전화벨이 울리더군요. 그는 '여보! 미안해요. 오늘 회식이 있었는데 팀장님이 술이 너무 많이 취해서 집까지 바래다 드리고 가는 길이에요.  아마 20분 후면 집에 도착할 거예요.' 하더군요. 아마도 아내의  전화였던 것 같아요.

그러더니 그가 나에게 '기사님, 기사님에게 하소연 좀 하면 안 될까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네, 말씀하세요.' 하자 그는 '저는 고교 때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대학 입학하고,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입사하여 부모님과 주위사람들이 모두 성공했다고 칭찬하는데, 실상 제 마음은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사주의 친척이라는 건방진 팀장의 비위를 맞추어야 하고 회식을 하면 주정을 하다가 인사불성이 되어 집까지 모셔 주어야 하는 현실입니다. 당장 그만두고 싶은데 신혼인  아내가 걱정할까 봐 말도 못 꺼내고 있어요.'라고 하더군요. 저는 조금 전 내리신 손님의 남자 친구분의 행동을 보고 이런 예감이 들더군요. 무시해도 될 택시기사에게 공손히 허리 굽혀 인사하는 것을 보아,  강자한테는 강하고 약자한테는 너그러운 정의로운 남자로 생각됩니다. 그까짓 돈 몇 푼 더 주는 대기업 다니는 게 성공한 것입니까? 저렇게 용기 있는 분은 경험을 많이 하신 후 사업을 하셔도 승승장구하며 대성할 분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만일 손님이 그분을 결혼 상대자가 아니라고 포기한다면 일생일대 크나큰 실수를 하는 겁니다.' 그러자 백밀러에 보이는 손님이 얼굴이 활짝 피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웃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손님은 '기사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하고는 내렸다.

 '

어느 날 밤, 청담사거리에서 수원의 경희대학교에 가자는 젊은 손님이 있었다.

그는 앞의 조수석에 탔는데 약간 술에 취했고, 아무 말 없이 전화기만 보고 있었다.

고속도로에 진입한 후 무료한 나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손님이 앞자리에 오르시길래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시려나 하고 기대했어요.'라고 하자, 그는 '아! 기사님이 거리를 가시니까 심심하시군요?' 하였다.

나는 '손님이 앞 좌석에 타시고 대화가 없으면 상당히 어색해요. 그런데 손님은 경희대학교 학생이신가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기사님 제 나이가 서른 살이에요.' 하며  얼굴을 드는 것이었다.

'아하! 그러면 회사원 이시겠군요?' 하고 묻자,

그는 '2년 전에는 회사원이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하였다.

그러더니 '기왕 얘기 나온 거 기사님 심심하다니 모두 얘기해 드릴게요.' 하였다.


'저는 대구에서 태어났어요. 제 위로 나이 차이가 많은 누님이 두 분 있고요. 저는 예상치 않게 늦둥이로 태어나 귀염둥이였어요.

저는 초등학교 6학년때까지도 부모님 품에서 같이 잤어요.

아버지는 잠드시기 전에 꼭 내 고추를 한번 만지시고는 손가락을 코에 대고 '후우 매워!' 하셨어요.

고교 때는 음악에 빠져 피아노를 배웠고, 음대에  지망하려 했지만, 아버지는 예술하면 배 고프다며 극구 반대 하셨지요. 결국 는 공대에 입학했고 졸업 후 수원에 위치한 대기업에 취업했어요.

아버지는 너무 기뻐하시며 평생 다닐 직장인데 아들을 객지에 홀로 있게 할 수 없다고 했어요. 나이 차이가 많은 누나들은 이미 결혼했고요, 아버지는 오랫동안 다니신 직장을 사직했어요. 그리고 아예 세 식구가 수원으로 이사를 했어요. 하지만 저는 직장생활에 매력을 못 느끼고  집에 오면  음악 감상과 연주에 심취했어요.

어느 날 유명한 기획사의 홈페이지에서 큰 상금이 걸린 신인 자작곡 공모를 보고 도전해 보기로 했어요.

나이 어린 걸 그룹이 부르는 것을 상상하며 초등학생도 따라 부를 수 있는 쉽고 경쾌한 곡을 만들어 기획사에 보냈어요.

한 달 후 발표가 났는데 내곡이 우수작으로 뽑혀 적은 금액이지만 상금도 받았어요.

그리고 제작부장이라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그는 나의 곡을 새로 조직된 청소년 걸그룹의 앨범에 사용할  예정이고, 작품료를 줄 테니 몇 곡 더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원한다면 언제든지 회사의 음악작업실을 사용해도 된다고 했어요.

나는 너무 기뻤어요.

나는 음악으로 성공해 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회사에 사표를 냈어요.

물론 부모님에게는 비밀로 했지요.

그리고 출근한다고 집을 나와서는 서울의 유명작곡가에게 사사를 받으러 다녔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내가 서울행 버스를 타는 것을 아버님이 우연히 보셨나 봐요.

이미 육십이 넘으신 아버님은 24시간 근무하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업하셨는데 아침 퇴근길에 우연히 저를 발견하셨나 봐요.

그날 저녁 '왜 서울행 버스를 탔냐?'라고 추궁하시는 아버님을 더 이상 속일 수 없어서 모든 걸 털어놨어요.

아들이 대기업에 다니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시던 부모님은 너무나 놀라고 실망하셨나 봐요.

아버님은 끊었던 술과 담배를 다시 하시고, 어머니는 누나들에게 눈물로 하소연했어요.

나는 너무나 안타까웠지만 나의 결단을 바꿀 수는 없었어요.

그러다가 신인 걸그룹이 부른 나의 곡이 방송을 타기 시작하더니 가요 차트 상위권에 올랐어요.

저작권료가  통장에 입금되기 시작했고, 기획사에서는 다른 그룹의  앨범 전곡을 아 달라며 거액의 작품료를 선불로 주셨어요.

그동안 음악으로 인해 발생한 모든 수입을 월평균으로 계산해 보니 과거 직장의 월급보다 많았어요.

나는 최근 술 담배를 많이 하시던 아버지의 치아가 두 개 빠진 것을 보고, 치과에 아버지를 모시고 가서 최고급 임플런트를 해 드렸어요.'


나는 뒤늦은 나의 음악도전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벌써 목적지가 가까워져서 입을 꾹 다물었다.

손님의 목적지에 도착하고 계산을 마치자 나는 이렇게 말했다.

'모두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음악에 도전하신 손님의 용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언제인가 손님의 곡이 빌보드차트에도 오르는 날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승승장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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