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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루티스트 정혜연 Apr 06. 2023

파리지엔느와 히키코모리 그 사이 어딘가 Ep.14

14. 집순이


 어느 날 부엌 천장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돌아서는데, 쾅! 하고 무언가 바닥에 떨어졌다. 떨어진 그 물체는 산산조각이 나며 내 다리를 덮쳤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피가 흥건하다. 그렇게 파리 시내 응급실로 향했다.

 유리조각은 아킬레스건을 치고 갔다. 다행히 꿰맬 정도의 상처는 아니었지만 꽤나 벌어진 상처를 3m 테이프로 열심히 당겨 붙인다.

 발을 절뚝이며 우버를 타고 집에 왔다.

 아킬레스건에 문제는 없어 보인다고 했고, 살이 찢어진 것뿐인데 대체 왜 발을 디딜 수 없는지 모르겠다. 의사는 어쨌든 무리가 있기에 되도록 걷지 말고 푹 쉬라고 했다.


 그렇게 일주일간 집에 갇혀있었다.

 아니, 사실 갇혀있기는 커녕, 그냥 산 것뿐이다.

 이렇게 된 김에 푹 쉬자,라는 마음으로 잘 먹고 잘자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다친 내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집에만 있는 나를 걱정했다. 그러나 나는 그저 오늘 하루를 ‘집’에서 최선을 다해 보냈을 뿐이다. 그렇게 일주일 뒤, 학교를 가기 위해 다시 절뚝이는 발로 집 밖을 나서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2주는 더 이렇게 살 수 있는데..’




 2020년 코로나가 발병했다. 일순간에 퍼진 이 병은 유럽에서 많은 사상자를 냈고, 프랑스도 확진자가 하루에 8만 명, 10만 명이 집계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매일 아침 코로나 확진자를 확인할 때마다 믿기지 못하는 숫자에 일, 십, 백, 천, 만, 십만을 세어보곤 했다.


 그렇게 프랑스의 첫 번째 봉쇄령이 3월 17일에 시작됐다. 무려 한 달 하고 25일의 봉쇄.

 처음 봉쇄령이 떨어졌을 때는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하루에 몇만 명씩 환자가 나오는 것도 믿기지 않았지만 봉쇄라니..

 학교는 당연히 가지 못하고, 생필품을 사러 가는 것 이외에는 외출이 금지됐다. 마트도 집안에 한 사람만 갈 수 있었으며, 병원 또한 비대면 진료로 바뀌었다. 우리는 혹시라도 외출을 하게 되면 증명서를 지참해야 했고, 집주소 반경 10km를 벗어나면 안됐다. 모든 근무는 재택으로 바뀌었고 그렇게 집이라는 감옥에 모두가 갇혔다.


 이 와중에 외출 증명서에 흥미로운 체크란이 있었다.

 ‘반려동물 산책’

 인간의 산책은 불가하지만, 반려동물 산책은 가능했다. 나를 개를  키우지만, 대소변 활동을 밖에서 하는 개들이 많다고 알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백화점  하나인 라파예트 백화점에서 개를   있다. 우리나라 롯데마트에서 안내견을 쫓아낸 사건을 보면 프랑스 개들은 거의 인간과 같은 수준의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거리에 개똥을 보면 이 나라 시민의식이 의심되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강아지라면 프랑스에서 살길 원할 것이다.


 프랑스는 반려동물 산책 아르바이트도 활발하다. 이렇다 보니 이 시기에 개가 없는 사람이 외출을 위해 강아지를 구하는 일도 빈번했다.




 프랑스 첫 봉쇄령이 떨어지기 전에 나는 한국에 다녀왔다. 몸이 안 좋아서 2월 바캉스를 맞아 2주 정도 한국을 방문했다. 내가 프랑스를 떠날 때만 하더라도 상황이 그리 나쁘진 않았다. 그런데 한국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프랑스 확진자가 급격히 늘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뉴스에 계속해서 프랑스 상황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프랑스 입국을 막는다는 썰이 돌기 시작하면서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갈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너무나 다행히도 입국 금지가 떨어지기 전에 파리로 돌아올  있었다. 그런데 파리에 도착해서 핸드폰을 켜는 순간, 학교로부터 메일이 도착했다. 오늘부터 해외 입국자는 자가격리를 시행하기로 정부 지침이 내려왔으니 바캉스 기간 동안 프랑스를 떠나 있던 사람은 2  학교를 나오라는 것이었다.


 어쩜 이런 일이. 결국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격리가 끝나갈 때쯤 나는  아쉬웠다.

 자가격리는 왜 2주인가.. 앞으로 한 달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당시 나의 sns의 글..


 그렇게 자가격리가 끝나고 이틀 뒤, 결국 프랑스 봉쇄령이 떨어졌다. 음.. 나는 정말 이 짓을 더 할 수 있을 것인가?


 살면서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삶.

 자발적 집순이가 강제적 집순이가 된 삶은 과연 어떠할까.





 일반인은 마스크도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



 봉쇄가 시작되기 전날 마트 상황.

 한발 늦었다..



  그래도 혼자 밥은 잘해먹고..



 격리 45일째..

 늘 바라보던 창문 밖 모습..

 발코니 있는 집이 어찌나 부럽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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