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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루티스트 정혜연 Mar 28. 2023

파리지엔느와 히키코모리 그 사이 어딘가 Ep.13

13. 쁘띠 바캉스


 프랑스의 학기는 1년 제로, 우리나라나 옆나라 독일처럼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으로 1,2학기가 구분 지어지지 않는다. 크게 두 학기로 나뉘는 것은 비슷하다. 첫 번째 session은 9월부터 12월, 두 번째 session은 1월부터 7월까지다. 그러나 방학의 개념은 다르다.


 프랑스는 7-8주간 수업을 하고 2주간 쁘띠 바캉스를 가진다. 이 사이클로 학기가 돌아가며, 이후 7월부터 진짜 여름 방학에 들어간다.


 나는 이 시스템이 학생들과 교직원 모두에게 굉장히 좋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란 교육을 받는 장소인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아무래도 우리의 몸과 뇌는 지치기 마련이다. 또한 반복되어 이어지는 수업에 적응이 되어 그 집중도 역시,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프랑스에선 내 집중력이 간당간당한 시점에 2주간의 바캉스를 가진다. 그렇다고 이 방학이 무조건 쉬는 시간인가, 절대 아니다.

 대부분의 대학에선 이 시간에 엄청난 양의 과제가 쏟아진다. 학교는 나가지 않지만, 2주 뒤 다시 수업을 이어나가기 위해선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휴식은 휴식이다. 우리는 이 시기에 조금 더 여유가 있다. 많은 학생들이 외곽으로 잠깐의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내 몸의 밸런스를 찾는 시간을 가지며, 또는 자기 계발을 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나도 이 시간에는 근교로 여행을 떠난 적도, 늦잠을 자기도 했으며, 오히려 연습에 더 집중하는 시간을 갖으며 바캉스 이후에 실력이 확 늘어있기도 하고, 이 기간에 음악 캠프를 가기도 한다. 타 대학 전공자들은 이 기간에 인턴 생활도 하기도 한다.


 이렇듯 많은 장점들이 있지만, 그중 단연 돋보이는 이 쁘띠 바캉스의 매력은 바로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삶을 Profiter,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방학은 대게 짝수 달에 돌아온다. 10월에는 가을을, 12월에는 노엘(크리스마스)을, 2월에는 겨울을, 4월에는 봄을 느낀다. 그리고 더운 여름에는? 쉬는 거지!


 게다가 프랑스의 공휴일과도 맞물린다. 가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시간에 아이들과의 시간을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으리라. 프랑스의 바캉스는 초중고 대학 모두 동일한 시스템이다. 이렇게 자주 쉬면 부모들의 한숨이 깊어질 것만 같다. 맞벌이 부부들은 아이들 케어가 걱정일 테니. 그러나 이곳은 프랑스. 방학을 이렇게 가져갈 수 있는 데에는 그만한 보육 시스템까지 갖췄기에 가능한 것이다. 아이들은 방학기간에 캠프를 가거나, 보육 센터에 간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마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스템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육아휴직이나 출산 휴가가 있어도 아직 제 역할을 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아직도 아빠가 휴가를 낼 것인지, 엄마가 낼 것인지부터 시작해, 복직 이후의 삶에 두려움들이 가득한 우리이지 않나.

 나에게 합당히 주어진 연차도 눈치를 보고 써야 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갑자기 방학이 길어지거나 쉬는 날이 생긴다면 당장 이 아이들을 어찌해야 하나 말 그대로 멘붕이 올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나의 쁘띠 바캉스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근교 여행으로 머리 환기하기 또는 모든 관계를 끊고 집에만 있기. 뭐가 됐든 현실도피라는 같은 선상에 놓인 모습이다.


 나는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 아니다. 꽁꽁 싸매 가지고 있다가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또는 공부와 연습에 한방에 쏟아버리고는 불을 끄고 커튼을 친 후 침대 속에 들어가 다시 충전을 한다.

 학교 생활 역시 그리 사교적이진 못했다. 물론 내가 나를 억압한 것이 더 컸지만, 대게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에게 인사만 하고 집으로 와서 혼자 밥을 먹었다. 누군가와 식사 약속을 잡는다면 그날은 그 약속 외에 아무 일정이 없어야 한다.


 맞다, 나는 전형적인 집순이다. 한국에서든 파리에서든 한정적인 에너지로 사는 집순이에게 쁘띠 바캉스란, 행복 그 자체다.



4월 바캉스에 떠난 Giverny 지베르니.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정원이 있는 곳이다.



 유학 초반 살집이 있던 시절.

 유학을 마칠 땐 무려 7킬로가 빠져있었다.



 아름다운 봄의 지베르니.

 찬란한 빛과 자연의 색을 보고 있자니 그의 작품들이 떠오른다.



 그의 집. 그는 인생의 마지막을 이곳에서 보냈다.



 오랑주리에 있는 그의 작품 les Nymphéas



 빛에 따라 변화하는 그의 색.

 시력을 잃으면서도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삶에 영감을 받는다.




 이렇게 삶의 Pause, 잠깐의 쉼은 다시 새로운 것들을 채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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