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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루티스트 정혜연 Mar 27. 2023

파리지엔느와 히키코모리 그 사이 어딘가 Ep.12

12. 삶


우리네 삶이란 무엇일까.

어떤 삶이 잘 사는 삶인지 모르겠다.

나는 늦은 나이에 음악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클래식 전공자들은 늦어도 초등학생 나이에 그 길에 들어선다.

그러나 나는 굉장히 늦은 나이인 중학교 3학년 때 전공길에 들어섰다. 우리 엄마라고 이 길에 대한 미래 비전에 대해 알아보지 않은 게 아니다. 피아노나 현악 같은 경우에는 너무 늦은 나이지만, 관악은 괜찮다는 이야기에 마음을 좀 더 여셨다. 그러나 다른 것보다, 내가 너무 원했기에 이 길을 허락하셨다. 사실 내가 중학교 때 플루트를 전공하겠다고 한 후, 집에서 반대가 있었다. 일단 악기를 늦게 시작했고, 음악은 돈이 많이 드는데 우리 집은 공무원 집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저는 플루트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에 엄마의 전폭적인 지지가 이루어졌고, 그렇게 나는 예고를, 예대를, 유학을 가게 되었다.

엄마는 그때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꿈이 있었고, 능력이 있었지만, 그 시대, 집안의 막내로 태어난 우리 엄마. 경제적인 이유로 꿈을 포기하고 사회에 뛰어든 엄마.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원하지 않는 일을 시작한 엄마. 그런 엄마는, 내 자식만은 본인이 원하는 것을 하고 살 수 있게 하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아빠의 반대에도, 엄마가 강행해서 나는 음악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물론 이로 인한 부작용들은 많았다.

엄마의 희생은 나에게 어쩔 때는 부담이 되었고, 내 숨통을 옥죄었다. 그러나 엄마 입장에선, 이 희생이 의미가 없다고 느꼈을 것이고, 이 뒷바라지의 끝이 밝지가 않아 수없이 무너졌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내가 음악을 하기 시작하며, 각자 인생의 가장 가까운 지지자이자, 제일 가까이서 서로를 괴롭게 하는 상대가 됐으리라.


음악 세계는 정말 한 챕터로 말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다. 그리고 내가 예상한 삶은 애초에 다른 이들의

삶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는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진 않는다. 우리에겐 그저 할 수 있다, 노력하면 된다,라는 꿈을 심어주는 이들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엇을?

이렇게 노력하면, 내가 밥 먹고 똥 싸고 자는 시간 외에 연습을 하면, 미래에 내가 원하는 음악을 하고, 연주활동을 하며, 교육활동을 하는 그들 같은 삶을 우리가 살 수 있는가? 노력으로 그것이 가능한가?


서울대를 5수를 한 사람이 있다. 한예종에 6수를 한 사람이 있다. 그 당시에는 그 긴 시간을 한 학교를 가기 위해 바치는 것이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삼십 대가 되고 보니 젊을 때의 5-6년은 아무것도 아니더라.


한 친구가 이야기했다. 우리는 현역으로 그 아래 학교를 가서 50년을 힘들게 살고, 5수 10수를 해서 서울대를 간 친구는 50년을 서울대 출신으로 산다고.


이것이 현실이다.

물론 나의 길은, 내가 만들어가기 나름이다. 어떤 위치에서든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은 언제나 많다. 하버드를 나왔던, 대학을 나오지 않았던, 삶의 만족도와 행복은 그것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내 스스로의 삶의 가치를 찾아가야 한다.


그러나 사회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예 엘리트 코스를 밟아서 그들만의 리그에서 활동을 하던가, 아니면 지방에서 대학을 나와서 그 지역 사회에서 연대를 하던가.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지방 출신의 서울권 대학, 유학까지 다녀온 그저 낙동강 오리알일 뿐이다.


이런 나는, 재수를 할까 고민하는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능력은 있지만 엘리트코스는 아니고 그렇다고 지방대에 가기에도 아까운 실력인 내 학생에게, 쉽사리 재수를 권하지 못했다.


나는 그 누구에게 말도 하지 못한다.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고, 내가 꾸려가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유학을 가기 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현재 한국 음악계를 이끌고 있는 각 분야의 선생님들과 시간을 가졌는데, 과연 어떤 이들이 우리나라 음악계의 미래가 되느냐는 담화가 펼쳐졌단다. 결론은, 그때까지 남아있는 자. 였다고 하셨다. 어떤 한 단체나 작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자들, 분명 그 위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누구일까, 결국 이 힘든 길을 버텨내고 존재하는 이들일 것이다. 그들이,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일지 시작은 늦었어도 끝까지 그 길을 가는 줏대 있는 사람들일지 몰라도, 결국 남는 자가 그곳에 존재하는 사람이란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저 버틴다. 모두가 꿈꾸는 대로 살지 못한다. 그러나 그 꿈을 버릴 수가 없다. 나는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한다. 현실과 사회 구조를 탓하기에는 하루가 너무 짧다. 그저 움직인다. 오늘의 나는,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그렇게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그렇게 내가 40, 50, 60살이 되다 보면, 내 길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일 수도 있겠지. 반대로 절망이면 어떠하랴, 그것 또한 내 인생인 것을.


나는 그저 내 삶을 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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