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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루티스트 정혜연 Mar 23. 2023

파리지엔느와 히키코모리 그 사이 어딘가 Ep.07

07. 외로움 (1)


나는 내가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인 줄 알았다.

유학을 간다고 했을 때, 친구들은 외로워서 혼자 어떻게 지내겠냐고 걱정을 했다.

나는 계절도 많이 타고 눈물도 많았다.

그런데 왜인지 프랑스에선 전혀 외롭지 않았다.

작은 방에 나 홀로 있어도 그럭저럭 살만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서 마트를 들려 장을 봐온다.

저녁을 해 먹고 영화도 한편 본다.

쉬는 날엔 빨래를 돌리고 집안 청소를 한다. 또 나를 위한 한 끼를 해 먹고, 연습을 한다.


언어와 학교 생활을 따라가느냐 힘들어서 그랬던 건지, 그냥 알고 보니 혼자인 게 적성에 맞는 체질이었는지 전혀 외롭지 않았다.


엄마는 늘 말했다.

“외로움은 누군가를 좋아할 때 느끼는 거야.”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사랑을 하면 외로워진다.

관계를 맺으며 기대를 하고 실망을 하고 속이 상한다.

혼자일 때는 별로 그럴 일이 없는 것이다.


다른 언어를 쓰는 것이, 연습을 하는 것이, 또는 행정적인 문제들 등 힘들고 고된 하루는 매일 지속됐지만 외로움을 느낄 틈은 없었다.




어느 정도 파리 생활이 적응이 됐을 때쯤 성당을 갔다.

나는 가톨릭신자다.

한국에 있을 때 그렇게 열심히 다니는 신자는 아니었지만, 모태신앙이라 그런지 성당은 편안한 공간이다.


그곳에서 처음 친구들을 사귀었다.

나는 한국 성당에서도 청년들과 어울리거나 다른 활동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엄마, 아빠와 미사만 보고 돌아올 뿐이다.


그러나 어찌하다 보니 한인 성당의 청년회에 들어가게 됐다. 대부분 유학생들이 많았다.

처음엔 굉장히 어색했지만 또래들과 어울리니 생각보다 즐거웠다.

매주 일요일, 미사가 끝나고 다 같이 점심을 먹고 뤽상부르 공원에 가서 와인 한잔도 하며 광합성을 즐겼다.


4월의 파리. 뤽상부르 공원에서


매일 혼자 방에만 처박혀있다가 이렇게 사람들과 교류하고 야외 생활을 하니 좋았다.

혼자였으면 몰랐을 프랑스 생활도 알게 되고 정보도 오가며 마음을 나누다 보니, 금세 모두와 친해졌다.


그중에도 나와 더 마음이 맞는 사람은 있는 법.

한 친구와 아주 빠르게 친해졌다.

우리는 금세 서로의 삶을 나눴다.

나보다 오랜 시간 유학을 한 그 친구는 상처도 많았다. 이제 막 유학생활을 시작한 나는 그 친구의 지난 아픔들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 왜인지 내가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 그것이 오만이었던 걸까.


좋은 관계를 잘 유지해 가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평소와 같이 그 친구에게 연락을 했는데 답이 없었다. 그리고 성당에 왔더니 앉아있는 그녀 곁에 핸드폰이 있었다.

그녀의 옆에 앉으며 “내가 전화했는데 몰랐어?”라고 물었다. 그녀는 “아, 응..”이라며 대답을 얼버무린 채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등을 돌렸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어색한 시간을 마주했다.


이 친구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딱히 잘 못한 게 있지는 않았다. 나중에 물어보려고 했는데, 그 친구 외의 모든 친구들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성당에 가기 시작한 지 그래봤자 2-3개월 남짓, 그 친구는 내 기억에 6-7년 정도 된 사람이었다.


그날 하루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렇게 내 유학생활 처음으로 외로운 시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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