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가는 버스를 타기 전까지 나는 작전처럼 움직였다. 유럽에서 일을 할 수는 없어,라고 다짐하며 나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미래의 일들을 처리했다. 버스를 타기 두 시간 전엔 차사고를 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핸들을 잡은 지 겨우 1주일 째였다. 제멋대로 굴러간 포르테가 도미노처럼 오토바이를 쓰러뜨리고 티볼리 옆구리를 찌그러뜨렸다. 내 심장도 찌그러지는 것 같았다.
‘무사히 비행기 탈 수 있겠지?’
사고를 수습하고 절반정도 채운 24인치 캐리어와 배낭을 챙겨 허둥지둥 인천공항행 버스를 탔다. 비 내리는 금요일, 예상 시간보다 2시간이 추가로 소요됐다.
‘비행기를 놓치진 않겠지..’
공항에서 들러야 할 곳을 순서대로 정해놓고 도착하자마자 캐리어를 들고뛰었다. 긴 코트자락이 펄럭거렸고 후드와 목티셔츠를 끼어 입은 덕에 땀이 났다.
무사히 수속을 마쳤다. 한 달 전 갱신한 파란 여권이 빛이 났다. 나는 드디어 숨을 고르며 핀에어 이코노미석에 몸을 맡겼다. 가운데에 끼어 헬싱키까지 14시간을 버텨야 했지만 나는 이제 막 프랑스 파리로 향하는 중이었다. 아무렴 상관없었다. 기내식과 함께 레드와인 한 잔을 마시고 이북리더기를 켰다. 이재형 작가의 ‘나는 왜 파리를 사랑하는가’를 읽기 시작했다. 파리에 닿지도 않았는데 사랑에 빠진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