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주리,퐁피두 센터, 에펠탑
“혹시 M1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하죠?”
지도를 봐도 헷갈릴 때는 주저 없이 사람들을 붙잡고 길을 묻는다.
여행이 익숙해지면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을 한눈에 알아보기 마련이다.
출근길에 마주한 두 남자는 말했다.
“우리 가는 길이니까 따라와요.”
“라데팡스에는 어쩐 일로? 여행 중인가요? 여긴 마치 맨하탄의 빌딩숲 같죠? 하하. “
“참 파리에선 citymapper어플을 쓰도록 해요. 전철 정보가 가장 정확해요.”
짧은 대화를 나누고 무사히 전철에 올랐다.
오늘의 첫 행선지, 오랑주리 Musée de l'Orangerie
오디오를 켜고 수련 연작 첫 번째 방에 들어섰다.
수많은 사진을 보며 상상했던 공간이었지만 실제로 발 디딜 적엔 좀 떨렸다.
낮은 천장과 둥근 벽 사방에 걸린 모네의 수련 연작.
하늘과 물속의 경계가 없는 그림들 속에서 모네처럼 걸어보았다.
버드나무가 있는 곳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앉아서, 서서, 눈을 감고 보았다.
모네의 힘이 느껴지는 질감들을 찾아보며
작가의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이 일었다.
오랑주리에서 의외의 흥미를 끈 그림은 세잔의 것이었다.
한참을 바라보다 키득거리고 그 그림을 가슴에 담았다.
비슷한 속도로 관람한 사람들과 헤어지고, 다시 거리를 걸었다.
루브르를 지나 센강을 따라 걷다 우연히 들른 빈티지숍에서 마음을 빼앗겼다.
13유로에 행복을!
두 번째 목적지는 마리아쥬 프레르 Mariage Freres다.
파리 애호가 민경언니로부터 적극 추천받았던 프랑스의 대표 홍차브랜드이다.
고민 끝에 The de fetes(축제의 차) 200g, Rougemetis(후즈메티스) 300g 두 종류를 구입했다.
진열장에 가득한 찻잎을 꺼내 소분해서 담아주시는 모습 보는 게 좋았다.
한가득 짐을 지고 걷고 걷는다.
코트를 잔뜩 여미고 변덕스런 날씨를 헤쳐 걷다 보면 체력이 금방 바닥난다.
퐁피두 센터로 향하는 길에 잠시 쉬어갈 카페를 찾았다.
카페 크렘에 초코 듬뿍 얹혀진 에끌레르를 곁들여 노상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다양한 사람과 냄새가 스쳐간다.
각종 향수, 담배, 커피, 비의 냄새가 엉켜있는 이 도시가 아직도 근사해 보였다. 그 속의 나.
해가 질 무렵, 퐁피두센터 Centre Pompidou에 도착했다.
단 며칠 만에 수많은 명작을 영접하여서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오래 사랑했던 마티스의 그림 앞에서 몇 번을 서성였고,
피카소, 샤갈, 모딜리아니, 알렉산더 칼더, 이브클랑, 자코메티 등등
다시 못 볼 작품들을 눈에 담았다. 다리가 끊어질 것만 같았다.
여행의 초입에 벌써 몸살이 날 것만 같았다.
근처 비스트로에서 양고기 쿠스쿠스에 레드와인 한 잔을 곁들였다.
몸을 녹이고 따끈하게 배를 채웠다.
바로 눈앞에 재즈 연주가 흘러나오고 백발의 노부부가 여유롭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웨이터가 언제든지 손님들의 부족한 것을 채워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충만한 식사. 단 하루가 아니라 매일을 이런 풍요로움 속에 당연하게 스며들 수 있다면.
여유와 낭만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고민 끝에 밤의 에펠을 보러 향했다.
저녁이 깊었지만 짧은 파리 일정에 오늘이 아니면 못 볼 것 같았다.
눈앞의 에펠은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그 밑에서 놀라고 설레다 문득 외로워져 급히 숙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