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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린 May 21. 2023

Part2. 프랑스 빈티지 마켓

방브마켓 (Vanves Market), 몽빠르나스 묘지


1월의 파리.

새벽에 간간히 눈을 뜨고 자고를 반복하다 보니 여덟 시가 되어서야 몸을 일으켰다.

밖은 아직도 어둑했다. 두툼한 옷과 보온물통 파쉬가 없었다면 파리의 밤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어제는 우중충하던 날씨가 오늘은 화창하고 맑았다. 정말 듣던 대로 변덕스럽기 그지없는 날씨구나!


코린이 내려주는 다정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햇살 가득한 집을 둘러보았다. 코린의 손길이 닿지 않은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컵과 그릇 대부분은 그녀가 만들었고 손녀를 위한 초콜릿과 팽이가 비치된 티테이블과 그녀가 모으는 틴케이스 책상을 구경하느라 행복해졌다. 소파가 있는 응접실엔 통창유리로 바깥 정원이 내다보였는데 동화 속 정원 같은 그곳에서 사계절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몇 시간이고 집구경을 할 수 있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오늘의 행선지를 떠올렸다.  

‘움직여야 해.’


집을 나서려던 찰나 또 다른 게스트를 만났다. 이탈리아에서 온 목수 부부였다.

아이들을 두고 2박 3일의 짧은 파리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날이라고 했다. 그들은 이탈리아에서 꽤나 큰 목공소를 운영하며 오두막을 짓거나 내부 인테리어를 시공하는 부부였는데, 눈을 번득이며 신기해하는 나에게 이것저것 사진을 보여주었다.

‘언젠가 이탈리아에 오면 우리 집에 놀러 와!’ 아이들과 영상통화까지 마치고 우리는 서로의 행선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방브(Vanve)로 가는 내내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여행지에 오면 대담해지는 나는 길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길을 묻는다.

‘방브마켓이 어디죠?’ ‘ATM은 어디에 있죠?’ ‘화장실은 어디에 있나요?‘


작은 공원에 방브마켓의 초입이 보였다.

아름다운 단추, 컵, 나이프와 포크, 액세서리, 그림과 액자, 가구 등등….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아름다운 물건들 사이에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침출발이 늦어져 도착했을 즈음엔 이미 마켓이 문을 닫기 시작하고 있었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며 ‘사지 않으면 정말 후회할 것 같은 물건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보물 같은 물건들 앞에서 한참을 구경하다 주인 할머니에게 컵 하나를 구입했다.

“신문지에 잘 싸주세요. 깨지지 않아야 해요.”

“오, 그렇지. 깨지지 않게 가져가는 팁 하나 알려줄까? 양말에 넣어 돌돌 싸는 거야!”

정리를 돕던 할아버지가 키득거렸다.


나는 특이한 단추들과 장식물, 은 식기류, 컵에 돈을 탕진했다.

오기 전 방브마켓 물가가 많이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현지 시세에 약한 나는 약간의 협상을 거치며 물건들을 손에 넣었다.

이틀 만에 지갑이 텅텅 비었는데도 행복했다.



12시 즈음 마켓이 차차 문을 닫기 시작했다.

근처 구글맵 맛집에서 웨이터가 추천해 주는 메뉴를 점심으로 먹었다.

‘파리 사람들 불친절하다던데 전혀 그렇지 않은걸?’

파리는 멋지고 맛있고 친절하구나!



다음 행선지는 몽빠르나스 묘지.

파리의 3대 묘지중 하나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보들레르, 모파상 등 유명 철학자와 인사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묘지사이를 거닐며 대화를 나누는 연인들의 장면을 영화에서나 봤는데 어떤 곳일까,

파리행 비행기에서 책을 읽으며 생각했었다.


묘지까지 이곳저곳 구경하며 발길 닿는 대로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까지 작지만 빼곡한 정원들이 곳곳에 있어 걷다 쉬기를 반복했다.


작은 빌라들 사이에 커뮤니티 가든이 보였다.

그곳에 앉아있는 할아버지에게 잠시 안을 둘러봐도 되는지 여쭤봤다.

“물론!”

정원을 가꾸는 회원들이 모여 모임을 갖는 날이라고 했다.

“몽빠르나스 묘지에 가는 길이라고? 내 할아버지도 거기에 있어. 몽빠르나스 묘지는 아주 멋진 곳이지.”

할아버지와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가는 내내 멋스런 공방들을 지나친다.

아름다운 곳이 나올 때마다 유리창에 코를 박고 구경하느라

묘지까지 가는 길이 한참이나 걸렸지만 파리를 즐기는 이 시간이 소중했다.



몽빠르나스 묘지에 들어서서 우선 묘지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걷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묘지에 거대한 묘비들이 웅장했다.

묘지라기보다 정원 같은 느낌의 공간이었는데, 그 사이를 걷는 느낌이 묘했다.

연인과 가족과 산책하듯이 묘지 사이를 거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묘지엔 세계 곳곳에서 그들을 찾은 팬들의 키스마크와 메세지로 뒤덮여 있었다.

그들의 삶과 철학이 나와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보들레르의 묘지와 가묘를 찾아보았다.

몇 달 전 민경언니에게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을 선물 받고 아껴읽던 참이었다.

마음속으로 인사를 건네고 발걸음을 옮긴다.

묘비 사이사이를 걷는 느낌은 또 다른 압도감을 주었다.  

오후 5시. 해가 질 무렵의 묘지는 나를 더 엄숙하게 했다.



걷고 걷고 걷는 파리.

겨울의 파리엔 금세 어둠이 드리웠다.

움츠러든 몸을 녹이기 위해 뜨끈한 국물이 있는 쌀국수집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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