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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n mu Apr 10. 2023

영원한 주댕이

- 나의 첫 라이벌. 15살의 우리 주댕이






그녀와의 인연은 15살. 1998년.

1998년이란 숫자가 까마득하다.

새 학년 새 학기,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을 올리겠단 마음으로 시작한 나의 중2.

이런 나에게 라이벌이란 게 생겼다.

옆자리 짝꿍. 주댕이.

작년에 전학을 왔댔고 당시 일산에서 왔다고 하니 지금도 일산은 작은 도시가 아닌 데다가 그때 일산이라면 막 신도시화 되어서 시골인 우리 지역에선 '우와~ 왜 거기서 여길 왔을까?' 했다.

굳이 이 시골에 왜?

이유야 있었겠지만 도시에 살고 싶었던 나는 그랬다.

이 친구는 참 신기했다. 도시에서 산다고 다 빠릿빠릿한 건 아니지만 참 늘어지는 행동에 맨 앞자리에 앉았음에도 엎어져 있는 수업 태도에 마치 나무늘보 같았다.

진짜 신기한 건 이 친구가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다.

나도 공부 좀 하겠다고 새 다짐을 하고 2학년에 올라왔는데 같은 학생인 내가 봐도 수업 태도가 영 꽝인 이 친구가 나보다 더 성적이 좋았다. 짝꿍이라 친하게 지내게 되었는데 첫 성적을 보고 든 건 괜한 배신감.

너 안 하는 척하면서 집에서 밤새서 공부하는구나?

둥글둥글한 듯 센 캐릭터인 주댕이를 이겨보겠다고 도서관에서 나란히 앉아서 밥 먹고 공부하고 떠들면서도 나의 라이벌이었다. 라이벌이지만 싫은 친구는 아니었으니.

기말고사까지 주댕이에게 패 하고 여름 방학 기간 안 풀던 빨간펜 학습지까지 달달달 풀어가며 나름 노력했던 것 같다. 그렇게 2학기 첫 중간고사.

드디어 승!

막상 약간의 차이로 이기고 나니 나는 주댕이를 이겼다는 것보다 내가 전교생 중에 이 정도야 하는 자신감이 더 컸던 것 같다.

앞뒤번호라 서로의 등수를 모를 순 없던지라 알고 있었지만 주댕이에게는 모르는 척 조용히 지나갔고 이 지독한 녀석은 결국 기말고사에서 나를 엎어버렸다


나의 첫 라이벌.

밉지 않은 라이벌. 덕분에 좋은 경험도 해보지 않았나 싶다.

남의 교실에서 머리 잡고 싸우기 직전까지도 가봤으니까. (생각해 보니 진상이다. 내 교실도 아니고 남의 교실이었다.) 친구들 아니었으면 이미 잡혔을 우리들의 머리카락.


약간 오해로 몇 년간 연락도 없이 지내다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를 보고 통화 버튼을 누르니 누구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 법한 아이가 오랜만이라며 인사한다.

세상에.. 정말 반가운 순간이고 아직도 기억이 난다.

우리의 오해는 오해였고 역시나 뒤끝 없는 주댕이와 난 지난 일을 절대 꺼내지 않는다.

오해였으니까, 우린 쿨하고 한 성격도 하니까-


이 친구가 나보다 먼저 아이를 낳고 딱 2년 뒤 같은 날 내 아이가 태어났다.

내 아이 생일에 난 친구의 아이에게, 친구도 자신의 아이 생일에 내 아이의 생일을 축하하고 우리가 서로 고생했을 그날을 기억해 준다.


늘 밝고 쾌활하고 할 말 다 하고 사는 우리 주댕이가 아팠음을 고백하던 그때.

몰라줘서 미안함.

그 밝은 네가 얼마나 이겨내느라 힘들었을까 하는 짠함으로 많이 울었다.

내가 걱정할까 봐 많이 나아졌을 때 알려주기까지 얼마나 외로웠을까...


"나 어른되서 선생님 되면은 교정할 거야" 하던 주댕이.

선생님은 아니지만 큰 병원 연구실에서 더 멋지게 당당하게 능력 있게 살아가는 내 친구다.

아직까지 교정은 안 하고 있다만 난 네 그대로가 좋다. 그게 네 매력이다.


오랜만에 우리 주댕이를 위해 기프콘 쏴야겠다.

넌 정말 아프지 마. 내 마음이 너무 아팠어.... 아프지 말라고 쏜다. 아프면 머리카락 잡을 테야 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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