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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n mu Mar 17. 2023

나의 고모할머니

- 오후 6시 차, 맨 앞자리를 기억하세요?





나는 작은 시골 동네에서 자랐다.

우리 아빠도 이 동네에서 자랐다.

이 동네엔 아빠의 가족들이 많이 살았다.

아빠의 고모인 나의 고모할머니, 아빠의 이모인 나의 이모할머니, 아빠의 작은 어머니인 나의 작은 할머니.

우리 엄마는 시가 식구들이 둘러 자리 잡은 동네에 며느리로 30년을 살았다.

한 번은 엄마에게 말한 적이 있다.

"엄마 대단하다. 여기서 30년을 버티다니...."


그래도 나에겐 어릴 적부터 만났던 어른들이라 일찍 돌아가신 내 할머니와 같은 느낌이었다.

호칭만 고모할머니, 이모할머니, 작은 할머니일 뿐 내 할머니들....


특히나 나의 고모할머니는 3남 1녀 중 셋째다.

아들들 사이에서 자라시며 귀하게 크셨다고 한다.

그런데 나도 나이를 먹어 할머니를 보니 고모할머니처럼 딱한 분이 어딨 나 싶다.

큰오빠, 작은 오빠 모두 아파 일찍 돌아가시고 하나뿐인 남동생도 갑작스러운 사고로 보내놓으신 데다 할머니의 장남도 일찍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으니 말이다.

하나뿐인 남동생-나의 작은할아버지-이 돌아가셨을 때 목놓아 울던 할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나마 하나 남았던 똑똑하고 든든했던 형제를 인사 한마디 할 수 없이 보내게 되다니....


이런 고모할머니는 나에게 또 다른 추억이 있는 분이다.

시골에 살기에 버스 배차 시간이 많지도 않았고 특히나 5일 장이 서는 날 오후 6시 버스는 어리고 키가 작았던 나에게 숨도 쉴 수 없는 그런 답답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앞 문이 열리는 바로 앞자리에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일찍이 터미널에 가서 타셔서 그곳에 자리 잡으시고 내가 타는 곳에서 얼른 기사님께 나의 요금이라며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나의 버스 요금 몇 백 원을 요금통에 넣으셨다.

내가 사람들에 끼어 불편하고 힘드니 나를 앞으로 당겨 본인 다리 사이에 앉혀 30분 거리의 동네까지 가는 것이다.

그땐 그저 이 복잡하고 답답한 버스 안에서 내 몸을 주체할 수가 없으니 이렇게 간다는 게 마냥 좋았다.

얼른 앞 문 열리는 순서만 기다렸다가 후루룩 할머니 앞으로 앉으면 되니까....


이 기억이 난 왜 이리 슬픈 걸까.

나이가 먹어갈수록 이 기억이 선명해지고 눈물이 난다.

내 본가 가까이 사시는 할머니라 명절이나 본가에 내려갔을 때 뵙고 오지만 이제 삼촌댁에 가서 명절을 지내고 오시기에 뵙기가 더 힘들어졌다.

나의 팔을 잡고 당기던 할머니가, 할머니 다리 사이에 앉을 정도로 컸던 할머니가 작아진다. 주름은 깊어졌다.


할머니와 앞으로 지낼 시간은 길지 않음을 안다.

다음엔 할머니 취향보다 내 취향으로 골랐던 빵이 아닌 할머니가 맛있다며 그게 뭐냐고 물었던 믹스커피를 두둑이 들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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