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 소녀 사샤(시그리드 욘손)가 이발기로 머리카락을 민다. 민감한 청소년기의 나이에 삭발을 하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지만, 영화 속에서의 사샤는 대머리가 되는 것보다 고장 난 이발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혼나는 것을 더 신경 쓴다.
영화 <코미디 퀸>은 어머니를 잃은 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소녀 사샤의 모습을 담았다. 사샤는 우울증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처럼 되지 않기 위해 리스트를 작성한다. 머리를 미는 것은 그 리스트 중 하나이고, 사샤의 최종적 목표는 코미디언이 되어 웃음을 잃은 아버지를 웃게 하는 것이다.
눈물이 나면 맨바닥에 누워 눈알을 굴리며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는 사샤는 슬픔을 외면하는 방식으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 한다. 어머니의 흔적을 지우고, 살아있는 생물에 관심을 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을 가두며 ‘삶’을 외면할수록 일상에서의 문제는 커진다. 소중했던 친구에게 험한 말을 하고, 학급친구를 때리기도 한다. 살기 위해 작성했던 버킷리스트가 사샤를 외롭게 만들기 시작한다.
마침내 영화의 후반부에서 사샤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며 아버지를 웃긴다’라는 목적에 달성하지만, 그 순간에 사샤는 자신의 근본적인 슬픔이 해결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처럼 되지 않기 위한 모든 버킷리스트를 완성하였는데도 말이다. 사샤는 그제야 자신의 슬픔과 마주하게 되고, 아버지에게 안긴 사샤의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영화 <코미디 퀸>에서는 어머니가 떠난 후 남은 딸에게 생긴 죽음의 트라우마가 어떻게 일상에 스며들었는지를 조명한다. 우리 사회는 ‘자살’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의 삶이 얼마나 불행했는지, 왜 그들이 자살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궁금해한다. 그러나, 이슈화되었다가 사라지는 외부인들의 일시적인 궁금증 뒤로, 자살유족들의 삶은 계속된다.
그렇기에 <코미디 퀸>에서는 슬픔을 단순히 극복해야 할 것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사샤와 아버지가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며 어머니가 좋아했던 노래를 들을 때에도 여전히 아른거리는 어머니의 모습. 그것은 트라우마의 모습일 수도 있지만, 영화 속에서의 연출은 다정하고 따뜻하다.영화는 상실의 슬픔이 가족들에게 잔존하고 있지만 동시에 떠난 사람의 사랑에 대한 기억도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준다.
삶은 트라우마와 추억을 넘나드는 과정이다. 때때로 우리는 어떤 슬픔에서 빠져나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 슬픔이 나를, 그리고 우리 주변의 누군가를 잠식시켜 버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마 빠져나올 수 없는 슬픔도 있다. 마음 한편에 어떤 이를 위한 공간을 놔두고, 온전히 그곳에 들어가야만 하는 슬픔도 있다. 그것은 누군가에겐 떠난 이를 추억하는 필연적 방식이기 때문이다.
과거는 언제나 서글픈 것이기에, 단순히 그 감정을 외면하는 것으로는 상실의 상처를 완전히 메울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슬픔이란 바다에 빠지기보다 그곳에서 헤엄치는 법을 깨우쳐야 한다. <코미디 퀸>의 사샤가 그러하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