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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꿀 May 11. 2023

마드리드 #2 - 아란후에스(Aranjuez) 관광

스페인의 베르사유, 왕족의 봄여름 휴양지에 가다.


“안녕하세요, K라고 합니다.”


K님은 브라질에서 일하다 한 달 전에 스페인으로 발령 받았다 한다. 나이는 8살이 어렸는데 - 대박 - 적어도 겉보기에는 셋 중에 가장 차분하고 성숙해 보이는 아우라에 알수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사실 절친의 회사 동료에게 밉보여 좋을 것이 없다는 생각과 '너무나' 어린 친구라는 선입견에 약간의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인사 한 줄로 마음이 놓이는 걸 보면 첫인상에 목소리는 참 중요한 것 같다.


"반가워요. Y 대학 친구에요. 은꿀입니다."


화이트 초콜릿 모카: Moca de Chocolate Blanco


목도 축일겸 근처 스타벅스에 들렀다. 스페인어가 부족한 나는 영어를 사용 할 수 밖에 없었지만 K를 통해 내가 좋아하는 커피는 스페인어로 Moca de Chocolate Blanco라는 것을 배웠다. 흰색, 화이트는 스페인어로 블랑코다. 나는 이렇게 주워 배우는 것이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블랑코. 블랑코. 한 다섯 번을 반복해 본다.


아란후에스는 마드리드 주 남쪽에 위치한 지방도시로 왕실의 별궁이 있는 곳이다.



우리가 갈 아란후에스(Aranjuez)는 시내에서 차로 약 40-50분 걸리는 곳에 있는 지방도시다. 보통 근교 여행지로 톨레도나 세고비아를 많이 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스페인의 베르사유'라는 별명을 가진 왕실의 별궁(Palacio Real de Aranjuez)이 있고 수려한 문화경관으로 유네스코에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마드리드에 자주 방문하거나 여유로운 일정으로 관광을 하는 분들이 반나절 잡고 방문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라 생각한다.


"야! 너느은... 왜 갈수록 더 고집불통이야?"


운전도 안 하고 옆에서 편히 앉아 가는데 기름 값도 못 내게 하면 어쩌라는 건가. 앙칼지게 성내도 안 먹힌다. 늘 이런 식이라 놀랍지는 않다만 미국에 완벽히 자리 잡고 게스트룸이 있는 집을 사게 되면 Y를 초대해서 똑!같이 대해줘야지 하고 한 번 더 다짐해 본다. 전쟁이다. -_- 뒷 자석 K님은 우리의 대화에 연거푸 웃음이 터진다. 적절한 순간에 뿜어내는 그 웃음 한 줄기가 참 고맙다.



El Rana Verde:
C. de la Reina, 1, 28300 Aranjuez, Madrid, Spain
https://www.elranaverde.com/


별궁에 들어가기 전 El Rana Verde 레스토랑에 들렀다.


사실 뱃속에 따뜻한 된찌가 꺼지지 않는 기세로 든든하게 버티고 있기에 밥 생각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입장했다 이상한 타이밍에 다시 나와야 하는 것에 대한 선제적 방어로 뭐든 조금이라도 더 욱여넣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 판단이 들어 '콜!'을 외쳤다.


채식을 하는 K는 야채구이를, Y와 나는 2인분의 또레스노(torrezno)를 시켰다. 또레스노는 수육처럼 두텁고 긴 삼겹살을 바삭 튀겨낸 요리로 안주나 메인디쉬로 다양하게 먹을 수 있는데 청량감이 있는 드링크와 페어링 하면 더욱 맛있다.


1. 청개구리 메뉴(Viandas Para Compartir = Food to Share)     2. 야채구이     3. 토렌스노(Torrezno en 2 Cocciones)




"야... 어쩌냐?"


"앞 뒤 정원만 걸어도 좋을 것 같은디?"


원래는 9유로에 도자기 방, 왕자의 방, 거울의 방과 같은 별궁 내부의 화려한 방을 구경할 수 있는데 월요일은 휴관이란다. 하지만 마드리드의 햇살을 받으며 직립보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거 아닌가. 로컬인 친구와 K님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방인인 나는 실망감을 꾸며낼 의지 조차 없는 무아지경의 상태였다.


별궁 주변에는 타호강(Tajo)을 따라 미로 같은 정원이 있었다. 3월 말이라지만 아직도 재킷이 필요한 날씨라 꽃들은 아직 숨어있고 담쟁이덩굴로 장식되어 있는 정원의 게이트도 비쩍 마른 가지들이 많이 보인다. 그럼에도 거짓말처럼 화려함이 느껴진다. 마른 가지에 화려함이라니 그게  웬 말인가 싶겠지만 드 넓은 공간에 정교하게 구불거리는 구조를 직접 보고 밟다보면 왕족들의 휴양 생활이 자연스럽게 머릿 속에 그려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나라의 비전을 설정하고 이끌어 나가는 사람들이 이런 곳에서 생활한다는 것 자체는 참 아이러니다 싶다. 비닐하우스에서 핀 꽃들이 야생의 상황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무튼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인 것을 알기에 일단 사진은 많이 남겼다.


1. 궁전이 보일락 말락     2. 더 붐비기 전에 밥을 먼저 먹어야겠다 해서 걸어가는 중     3. El Rana Verde (청개구리) 레스토랑

 


'하아.. 좋다... :-) '


엄청난 보행을 멈추고 착석할 때의 그 느낌은 뭐랄까.. 한 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몸을 따뜻한 욕조에 담그는 그 순간의 느낌과 비슷하다. 바람을 막아주는 차 안에서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아란후에스 거리를 영화처럼 바라보니 문득 내가 이렇게 행복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묘한 생각이 올라왔다. 행복해도 문제 불행해도 문제 사람 뇌는 참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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