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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에는 오페라가 있었다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관람 후기

by 들꽃연인

I. 왜 세비야인가?

2018년 6월, 스페인 세비야의 명소인 스페인 광장에 폭우가 내렸습니다. 아름다운 건물들에 둘러싸이고 가운데는 화려한 호수와 분수가 있는 스페인 광장에는 비로 인해 극소수의 관광객만 있었습니다. 비에 먼지가 씻기고 바닥이 물기를 머금자 마치 세수를 한 보석처럼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게르만의 대이동 시기에 스페인에는 서고트족이 자리를 잡았으나 그들은 오래지 않아 내분에 빠집니다. 열세이던 측은 북아프리카의 아랍인들에게 구원을 요청했으나, 우습게도 아랍인들은 그 기회를 이용해 이베리아반도 전체를 차지하고 말죠.
그 이후 아랍인들은 천년의 시간 동안 이곳을 다스렸고 유럽인들은 꾸준한 국토수복운동, 이른바 레콩키스타 운동을 펼칩니다.

조금씩 국토를 수복하던 유럽인들은 아랍인들을 반도의 남서쪽, 안달루시아로 몰았습니다. 결국 아랍인들은 내분으로 이곳에서마저 쫓겨나 북아프리카로 밀려나게 됩니다.
이 안달루시아의 대표적인 도시가 세비아와 그라나다이며, 이곳에는 지금도 아랍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세비야의 이발사> 오페라의 원작인 희곡은 프랑스의 작가 보마르셰가 1775년에 펴냈는데, 이 시기는 1789년에 일어날 프랑스혁명을 앞두고 귀족에 대한 서민들의 반발이 끓어오르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사회 지도층인 귀족, 의사들을 비난하는 내용은 검열 때문에 빛을 보기가 어려웠죠. 그러나 무대를 안달루시아의 세비야로 한다면 이국적인 느낌 때문에 검열을 통과하기 쉬웠고 관객들도 이국적인 느낌을 좋아했을 겁니다. 이로 인해 세비야의 이발사, 피가로의 결혼, 카르멘, 돈조반니 등 많은 오페라의 무대가 세비야로 설정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II. 공연에 대한 단상


● 2025년 6월 21일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노블아트 오페라단이 공연한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를 봤습니다.

● 전체적인 느낌은 즐겁고 유쾌했습니다. 출연자들이 오페라 부파(희극 오페라)의 느낌을 잘 살렸고, 연출도 이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쓴 듯합니다. 이태리어 노래 중간에 우리말로 ‘대박’ 등의 추임새를 넣는 것은 희극 오페라에서 해볼 수 있는 재치와 재미있는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횟수가 좀 많았고 ‘왜 안 가고 지랄이야’ 등의 대사는 과하기도 해서 아슬아슬했습니다.

● 가수들의 성악 중심으로 펼쳐지는 오페라에서 오케스트라는 아무래도 큰 주목을 받기가 힘듭니다.

그런 면에서 서곡은 오케스트라가 온전히 집중을 받는 시간이지요. 권민석 지휘의 코리아쿱 오케스트라는 이 서곡을 잘 소화했고, 진행시간 내내 오케스트라로 인해 흐름 끊길 일 없이 좋은 연주를 했습니다.

사족이지만, 퀸의 보헤미안랩소디에서 갈릴레오~~ 하는 부분은 세비야의 이발사 서곡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 로지나역의 여주인공 김신혜 소프라노는 발군이었습니다. 보통 오페라가 더블 캐스팅으로 3일 공연을 할 때는 첫날과 마지막 날이 메인 캐스팅인 경우가 많지요. 이번에도 메인 캐스팅은 제가 좋아하는 김순영 소프라노였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둘째 날 공연을 본 것이었습니다.

김신혜 소프라노는 제가 잘 모르던 분이었는데, 정말 대박~이었습니다.
엄청난 가창력에 연기력을 겸비했고, 원래 밝은 성격인 듯 자연스럽게 웃는 표정, 그런 가운데 나타나는 카리스마로 전체 극을 끌고 나갔습니다.

● 남성 캐스팅에는 전반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좀 있습니다. (개인 성함은 적지 않겠습니다)

피가로 역의 바리톤은 카리스마가 약해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피가로의 분량이 많진 않지만 극을 끌고 가는 핵심인데, 극 속에 묻힌 느낌입니다.
피가로가 극 앞부분에서 부르는 <나는야, 이 거리의 해결사>는 이 오페라 전체의 대표곡이자 가장 유명한 곡인데, 감동이 없어 매우 아쉬웠습니다.

알마비바 백작 역의 테너는 음성 자체에 윤기가 없고 건조한 편이었습니다. 첫 부분 창문 아래에서 부르는 아리아는 매우 좋았으나, 계속 듣다 보니 피곤한 음성이더군요. 희극 연기는 매우 좋았으나 딱 거기 까지여서 아쉬웠습니다.

바르톨로 역의 바리톤과 바질리오 역의 베이스는 성량의 풍성함이 미진한 느낌이었습니다.

● 뜻밖에도 가장 많은, 또 뜨거운 박수를 받은 분은 하녀 베르타 역의 안주랜(성함이 좀 독특) 메조였습니다.
딱 하나 부르는 아리아인데, 별 기대 없이 보게 되는 하녀의 아리아지만, 너무 훌륭한 가창에 저도 깜짝 놀랐고, 관중들이 뜨겁게 반응을 했지요. 앙코르도 많이 나왔지만, 주연들의 앙코르가 없는데, 조연이 앙코르를 하기는 어려웠겠지요.

III. 에필로그 - 오페라의 매력

오페라와 뮤지컬의 차이는 무엇일까?
음악의 기반이 클래식 vs 대중음악 등 다양한 음악, 언어가 이탈리아어 등 유럽어 중심 vs 영어 중심, 마이크 사용 여부 등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대중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려는 의도는 같겠지요.

최근 제가 본 오페라는 마지막에 여주인공이 죽는 비극 오페라가 많았습니다. 관객에게 찡한 감동을 주고 뇌리에 오래 남게 하려면 비극이 유리해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 세비야의 이발사나 피가로의 결혼 등 희극 오페라, 즉 오페라 부파가 주는 감동과 재미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오페라는 수백 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관객들에게 검증된 작품들이란 측면에서 그 매력이 보장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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