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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 관능과 정열 사이

오페라 카르멘 관람 후기

by 들꽃연인


지난 6월7일,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진 글로리아 오페라단의 카르멘을 보고왔습니다

후기 적어봅니다



프랑스 혁명은 1789년 한번의 혁명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구체제 수호자들의 반동, 나폴레옹의 황제 등극, 왕정 복귀 등과 얽혀 수많은 우여곡절과 반복된 항거 끝에 새 체제가 조금씩 정착되어 간 것이었지요


과거로부터의 탈피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지요. 전 카르멘에서도 익숙하고 편한 과거와, 불편하고 새로운 자유 사이에서의 갈등을 느꼈습니다


과거, 익숙함, 선함 등을 대표하는 약혼녀 미카엘라, 새로움, 낯섬, 악함을 상징하는 카르멘,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하사관 돈 호세는 나아감과 되돌림을 반복하며 파멸해가지만, 완전한 붕괴 속에서 새로운 탄생도 있을 것입니다


전체 느낌은 이 정도로 하고, 몇가지 단상입니다


● 카르멘역의 최승현 메조 소프라노는 배역을 잘 수행했습니다. 풍부한 음색으로 화려한 아리아를 불렀으나 연기에는 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특히 1막과 2막에서 돈 호세를 유혹하는 장면은 돈 호세의 익숙하고 단정한 과거가 무너지는 결정적인 장면인데, 팜므파탈치고는 밋밋했습니다. 좀더 뇌쇄적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복장도 해외 오페라단에 비해 치렁치렁 감춘 것이었는데, 제가 속물이라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과감한 19금 노출도 때에 따라서는 필요할듯 합니다


● 돈 호세역의 이형석 테너와 정꽃님 소프라노는 아쉬울것 없는 가창력과 호소력있는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스타 테너인 김재형님과 더블캐스팅된 이형석 테너는 전혀 처지지 않는 실력을 보여주었고, 정꽃님 소프라노는 배역 시간이 짧은게 아쉬울 정도로 멋진 아리아를 불렀습니다


● 송파소년소녀합창단 어린이들의 해맑고 귀여운 연기는 최고의 청량제였습니다


여기서 질문 : 어린이들은 왜 그렇게 귀여울까요?

정답 : 그러게 말입니다


● 집시는 유럽인들에게 비하되던 소수 유랑민족인데, 집시 여인은 유럽인들에게 묘한 관능적 상상을 주었던 듯싶습니다. 동양 여성들, 특히 일본 여성에 대해서도 그러했음이 19세기 미술작품이나 오페라 나비부인 등에서 나타납니다. 또 스페인의 세비야는 극적 상상력을 주는 곳인 듯합니다.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 카르멘의 무대도 세비야이니 말입니다. 과거엔 다 세르비야라고 했지요. 생상스를 생상, 슈베르트의 송어를 숭어라고 했던 것처럼.


● 무대에 대해 불만이 하나 있습니다. 자막을 무대 맨 위에 달아놨는데, 목이 아파 부러지는지 알았습니다. 비싼 돈 주고 앞자리 앉았는데, 이렇게 불편하게 하는건 아니지 싶습니다. 예술의전당이 세종문화회관보다 대부분의 시설과 음향이 좋은데, 이건 아닌듯합니다. 세종문화회관은 앞좌석 의자 뒤에 소형 화면을 붙여놓아 이걸로 안내와 자막을 소화하는데, 벤치마킹하면 좋겠습니다


● 피아니스트이자 클래식 커뮤니케이터인 김정원님은 오페라 입문 작품으로 카르멘을 추천한 바 있습니다. 유명하고 귀에 익은 아리아와 서곡, 간주곡이 있고 스토리 자체가 극적 막장 드라마라 재미있습니다.


무희들의 복장도 화려하고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무대를 채우지요.


오페라의 또하나의 매력은 합창입니다. 공연장에서 많은 출연진이 합창을 하면 오디오 기기로 느낄 수 없는 울림이 온몸에 전해집니다. 카르멘은 그 느낌이 최고인 오페라입니다.


여운 깊은 오페라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우산없이 비를 맞았습다. 공연의 열기를 식혀줄 비였을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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