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도 추천받았겠다. 처음엔 노트북을 들고 집 앞 도서관에 가서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시작은 고시생 코스프레로 한다. 도서관에 가서 5급공채 미시경제학을 펴고 앉아있으면 이미 5급 공무원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심취했다. 도서관에서도 행시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티를 왜 그렇게 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강의만 열심히 듣는 나에게 심취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자부심도 잠깐 매일 똑같은 사람들의 루틴을 보고 있자니 자극도 안되고 동기부여도 없었다.
눈칫밥은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도서관에서 두 끼를 해결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저녁은 집에서 해결했다. 저녁까지 먹고 나면 피로가 몰려오고 다시 도서관에 갈 의욕이 사라진다. '어차피 갔다가 열한 시에 돌아와야 하는데 두세 시간 집중하기 위해 가야 하나.' 합리화를 시작했다.
집이라는 곳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든다. 따뜻한 보금자리와 부모님이 차려주신 밥은 '오늘 하루 이 정도면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착각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쉬고 싶은데 애증 어린 부모님의 눈초리가 따가웠다. 분명 쉬고는 있는데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쉬는 것도 안 쉬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에서 침대에 누워 눈만 꿈뻑꿈뻑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방 구해서 신림동에서 학원 다니겠습니다."
"학원 실강을 듣고 자극을 받고 싶은데 학원을 집에서 다니면 왔다 갔다 시간이 아까울 것 같고 밥 먹는 시간도 줄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