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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쥐덕션 Feb 21. 2024

아빠가 돌아온다

  집을 떠났던 아빠가 곧 돌아온다. 아빠는 뇌출혈로 쓰러진 후 대학병원에서 한 달, 두 개의 재활병원에서 2년을 보냈다. 여행이었다면 어떤 준비라도 했을 텐데, 아빠는 갑작스러운 입원과 함께 모든 일상을 집에 두고 갔다. 남은 우리 가족들은 그런 아빠의 빈 자리를 우울함으로 채우며 살았다. 어떻게든지 극복해보려 노력하다보니 미안하지만, 아빠가 없는 시간들에 이제는 어느정도 익숙해져버렸다. 마음은 뻥 뚫렸는데, 일상은 그런대로 흘러갔다.


  2년 째인 올해, 우리는 보호자로서 선택을 해야한다. 시간은 다시 조금씩 흔들릴지 모른다. 뇌질환 환자는 2년이 지나면 재활병원에 있을 수 없으므로 요양병원행 아니면 집에서 케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모한 것인지, 당연한 것인지......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   


  엄마와 나는 한달 전부터 아빠를 맞이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주변의 요양보호사 센터에 전부 전화를 걸고, 상담을 신청했다. 화장실 비데를 교체하고 거동을 돕는 보행기와 넘어짐을 방지하는 매트, 미끄럼 방지 양말, 벽과 화장실에는 손잡이도 설치했다. 마비가 심해 굳어버린 몸을 따뜻하게 할 온열매트도 구매했다. 그리고 설 당일에는 예행연습 겸 아빠를 집으로 잠깐 데려오기로 했다. 병원은 아직 코로나에 취약 한 환자를 위해 6시간의 외출만 허락 했다.  


  준비는 끝이 없었지만, 가장 큰 것은 마음의 준비였다. 아빠와 함께 한 집에서 다시 생활 한다는 설렘, 그 뒤에는 곧 흔들리게 될 엄마와 나의 일상이 조금의 두려움으로 몰려왔다. 아빠의 6시간은 앞으로 우리가 더 준비해야 하는 어떤 것들을 가늠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나의 두려움을 미리 다독이는 시간이기도 했다.


  얼마나 오고 싶었을까. 설날, 장애인택시를 타고 거리로 나온 아빠의 표정에는 기대감과 걱정이 반반씩 섞여 있었다. 엄마와 나는 다른 날 보다 좀 더 호들갑을 떨었다.

아빠를 위해 이사한 엘리베이터 있는 집이야.

신축이라 건물도 깨끗하고 좋지?

여기 보행기도 사고, 손잡이도 있어.

내 방도 이렇게 크고 넓어.

퇴원하면 안방에 TV도 설치할거야. 아빠 좋아하는 농구, 야구 실컷 보면 되겠다...

여기에 언니와 형부가 조카들을 데리고 와 좁은 집을 꽉 채워 주었다. 다시 2년 전처럼 우리 가족 모두가 한 집에서 따뜻한 명절을 맞이했다.      


  아름답고, 화사한 우리 그림은 그저 잠깐의 환상이었다. 2년 전과 완전히 같을 수는 없었다. 울컥했던 감정은 아빠를 케어 하기에 아직 미숙한 우리의 허둥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거동이 전혀 안 되는 몸을 휠체어에서 침대로 옮기는 일, 식사를 위해 다시 휠체어에 앉히는 일, 안면마비로 인해 쉴 사이 없이 흘러내리는 침을 닦으며 밥과 반찬을 입에 넣어주는 일, 변기에 앉히고, 뒤처리를 해주는 일. 모두가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일들이었다. 형부와 언니, 나, 엄마까지 온 가족이 6시간을 아빠에게 달라붙어도 쉽지는 않았다. 엄마는 1분이 아쉬워 아빠의 발톱을 깎고, 어깨를 주무르느라 점심까지 걸렀다. 병원에서는 간병사 한명이 하고 있으니 우리도 요령이 생긴다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병든 가족을 몇 년 간 돌봐 온 사람들에게는 사소한 일상일 것이고, 내 이런 힘들었다 라는 감정 조차 우스울지 모른다. 그런데도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빠가 짧은 외출을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간 후 우리 가족은 웃지 않았다. 모두가 아직, 마음의 준비는 안 된 모양이었다.     

  엄마는 계속 한숨만 쉬었고 언니는 예상보다 훨씬 더 굳어버린 아빠를 보고 당황한 것 같았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대로 집에 오면 어떻게 할 거야? 케어 할 수 있어? 오늘은 나도 있고, 남편도 있으니까. 근데 너랑 엄마 둘이 할 수 있겠어?”

언니의 물음에 아무런 장담을 할 수는 없었다. 아빠가 다녀간 그날부터 나는 밤을 꼬박 새는 일이 잦아졌다. 왜인지는 모른다.




  바닷가에 태어난 아빠는 해산물을 참 좋아했다. 그날도 엄마는 문어와 굴 같이 병원에서는 먹을 수 없던 해산물, 그리고 아빠가 좋아했던 나물 반찬들을 잔뜩 차렸다. 식탁 위에  오른 그것들을 보자마자 아빠는 어린애처럼 손부터 가져다 댔다. 그동안 너무 먹고 싶었을테니까. 우리는 잘게 잘라 젓가락으로 하나씩 입에 넣어주었다. 그리웠을 바다의 맛. 지극히 평범했던 일상이 2년 동안 아빠의 인생에서 사라졌었다는 사실은 눈물 나도록 슬프다. 집으로 돌아오면 아빠는 이런 일상을 조금은 불편하게나마 다시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엄마와 나 또는 가끔은 언니의 평범한 일상을 아빠에게 할애 해야겠지.     


  ‘할애’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내가 불효녀처럼 느껴진다. 아빠가 집에 오고 싶을수록 나는 더 집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진다. 이기적인 자식새끼. 아빠를 보는 내 마음은 그래서 더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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