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람쥐덕션 Jun 05. 2024

답정너 인생

  얼마 전 소소한 건으로 들른 병원에서 진료를 받다 의사의 화를 돋우고 말았다. 이상소견은 없다 라는 말에 “재검 안와도 되죠?”라고 묻자, 의사는  ‘환자분이 괜찮다면’ 이라는 전제를 붙였다. 거기에 대고 “그러니까 정상이니

다시 안 와도 된다는 거죠?” 라며 나는 대여섯번이나 같은 질문을 해댔다. 의사는 기어이 짜증을 냈다.

“다시 안 와야 한다 아니다 라고 말씀 드린 적 없고, 환자분이 괜찮다고 하시면 안 와도 되는데 걱정되면 다시 오시라고요. 왜 듣고 싶은 것만 듣죠? 환자분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계시네요”

나는 이렇게 병원에서 종종 의사의 짜증을 끌어낼 때가 많다.  “이 약 먹으면 확실하게 낫는 거 맞죠?” 와 같은 수준

낮은 질문들을 하면서.     


  2년 전, 초기 암진단을 받은 적 있었다. 다행히 조기 발견으로 잘 치료를 받았고, 6개월 만에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왔지만 그 후부터 내게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뭐든지

항상 확답을 받아야지 마음이 놓였다. 의사의 입에서 “당신은 정상”이라는 말을 들을 때 까지 질문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사들은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해주지 않았다.

정확히는 내가 원하는 답을 해주지 않았다.

“당신은 이제 괜찮을 것이고, 다시 예전처럼 평범한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미래는 정상적일 것이다” 라는 의미가 담긴 말들 말이다.      


  마음이 무겁고, 내일이 마치 뿌연 안개 같기도 하다. 불확실한 미래에 타로를 보고, 별자리 운세를 검색하며 내일을 확답 받고 싶어 한다. 누가 나에게 괜찮을 거라고, 그러니

용기를 갖고 살아가라 말해 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일어날 사건과 문제를 미리 점쳐본다 한들 나는 마음의 평온을 받을 수 있을까? 어차피 인생은 변수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속에서 늘 불안을 품고 살아가는 것은 지옥이다. 그리고 그 불안을 타인의 확답에서 잠재우고 싶어 하는 것도 꽤 괴롭고 비겁한 일이다. 내가 원하는 답은 누구도 해줄 수 없으니까.      


  어떻게 하면 의존적이지 않고, 더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건강한 삶을 위해 운동을 하고, 몸에 해로운 짓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 앞날을 걱정하기 보다 현재에 더 충실해지기. 나를 위한 인생의 ‘답’을 낼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뿐

일거다. 그러니 지금 내가 나에게 확답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다. 타인으로부터 집요하게 답을 구하려 했던 그 에너지로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너는 어떤 파도가 와도 다 이겨

낼 수 있다’고.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버리지 말라고. 끊임없이 말해주는 것.

작가의 이전글 E가 아니면 어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