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輪紀行] ep. 06 남양주에서 광주
길은 계속되고, 계절은 변한다. 하지만 나는 또 이 순간을 위해 꼬박 1년을 기다릴 것이다.
팔당역을 출발한다. 두 대의 오토바이가 동시에 시동을 걸며 조용한 새벽 공기를 깨운다. 두물머리 즈음에서 경춘로를 따라 북한강을 오른편에 두고 달린다. 강물은 잔잔하게 흐르고, 길은 한적하기만 하다. 아직은 쌀쌀한 가을 아침의 기온이 손끝으로 전해진다. 새벽의 물안개는 강 위를 떠돌고, 먼발치의 산은 물안개 너머에서 숨바꼭질을 한다.
이 길 어딘가에서 다산 정약용도 강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유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말년을 보냈던 여유당은 바로 팔당댐 건너편에 있다. 그는 이 강변에 터를 잡고, 평생의 저술을 정리하며 인생의 마지막을 보냈다. 한때 정조의 총애를 받던 문신이었으나, 강진에서 18년의 유배를 거치며 그는 한층 더 깊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가 남긴 글들은 돌처럼 무겁지만, 여유당이라는 이름은 의외로 망설임과 주저를 뜻하는 노자의 문장에서 따온 것이었다. 겨울 강을 건너듯, 사방을 두려워하듯 신중한 삶. 오토바이로 강변을 달리며 맞는 바람 속에서, 나는 그 신중함이 어떤 무게였을지 어렴풋이 짐작해 본다.
안개를 가르며 한참을 달려 신청평대교를 지나면 장락산이 보인다. 산자락을 끼고 달리는 동안, 바람은 제법 냉랭하지만 상쾌하기만 하다. 한덕유원지에 닿았다. 강변 모래톱이 눈앞에 펼쳐진다. 누군가 이곳이 이름난 유원지라고 알려주지 않았더라도, 텐트가 있었더라면 모래톱 위에서 잠시 쉬어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자연이 주는 고요함 속에서, 나는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른다. 다산도 긴 유배와 고된 사색 끝에 고향 강가에서 이런 평온을 찾았을까. 그러나 그 평온은 쉼이 아니라 저술로 이어졌다. 그는 끝내 여유당집을 완성하지 못했으나, 후대는 여유당전서로 그의 뜻을 엮어냈다.
다시 시동을 걸고 길을 나선다. 길은 소리산 자연발생 유원지를 지나 단풍터널로 이어진다. 나무마다 붉고 노란 단풍잎이 가득하다. 햇살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황금빛 비처럼 쏟아졌다. 낙엽이 바람에 파르르 떨리는 감각이 오토바이의 진동으로 고스란히 느껴진다. 단풍터널을 지나는 동안, 나는 계절의 절정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유명산을 돌아 나오면, 길은 다시 넓어진다. 산길이 끝나자 눈앞에 남한강이 나타났다. 북한강을 떠나 달려온 길 끝에서 마침내 또 다른 큰 물을 만난 것이다. 남한강을 따라 달리는 길, 강물은 가을빛 윤슬로 노랗게 반짝였다. 두 대의 오토바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만들어내는 하모니만이 이 길 위에 존재한다. 바람을 가르며 달릴 때, 나는 자유롭다. 이 길은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넨다. 가을의 속삭임, 그리고 오래전 여유당에서 강물을 바라보며 세상을 새로 써 내려가던 다산의 발자취.
가을이 깊어가는 남한강변, 그 길 위에서 나는 자연과 하나가 된다. 북한강의 물안개가 새벽의 서정을 주었다면, 남한강은 낮의 햇살을 받아 풍요롭게 빛나고 있었다. 길 위에서 만난 모든 풍경들이 내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강을 바라보던 옛 선비의 시선과, 그 길을 달리는 오늘의 나. 두 시선이 겹쳐지며, 남한강은 단순한 풍경을 넘어 세월을 담는 그릇이 된다. 길은 계속되고, 계절은 변한다. 하지만 나는 또 이 순간을 위해 꼬박 1년을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