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 슈퍼커브 예찬

[二輪紀行] ep. 07 평택에서 태안

by 최기훈


느림은 결코 낭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충만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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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여정의 절반쯤에 닿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00cc의 고배기량 바이크라면 눈 깜짝할 사이 스쳐 지나갔을 길이지만, 슈퍼커브는 달리듯 멈추고 멈추듯 달린다. 작은 엔진이 토해내는 호흡은 길 위의 모든 풍경을 내 곁에 오래 붙잡아 두었다. 평택호의 잔잔한 수면과 멀리 보이는 서해의 바다는 그렇게 110cc 엔진의 속도로 흘렀다.


아산만방조제를 건널 때, 갈매기떼가 하얀 곡선을 그리며 날아올랐다. 날갯짓은 바람을 타고 자유로웠다. 예열을 마친 슈퍼커브의 기동도 제법 가벼워졌다. 삽교천방조제의 긴 직선로는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활주로 같았다. 느린 속도로 나는 한참 동안 달려야만 했다. 그 시간 동안 바다는 더 깊어졌고, 하늘은 더 멀리 밀려갔다. 공간은 길게 늘어졌고,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세세한 풍경과 오래 마주했다.


서산의 방조제 구간을 마주하기 전까진 솔직히 지루했다. 바다는 한동안 모습을 감추었고, 길은 끝없이 이어졌다. 슈퍼커브의 작은 엔진은 묵묵히 돌아갔지만, 몸은 조금씩 무거워졌다. 그러나 다시 바다가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모든 피로는 씻겨 내려갔다. 논두렁과 갈대숲 사이로 푸른 물결이 열리자, 나는 오래 묶인 족쇄에서 풀려난 듯 숨이 트였다. 이 작은 기계의 바퀴가 또 하나의 바다를 내 앞에 가져다 놓은 것이다. 그 순간 안도감이 찾아온다. 오늘 하루 반대편 바다에서 출발했을 태양도 어느덧 서해바다 위로 다가와 있다.


태안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발견했을 때, 나는 서울에서 출발해 경상남도 어디쯤은 내려와야 느낄 법한 피로감과 뿌듯함을 지근거리에서 미리 맛보았다. 작은 엔진의 진동이 온몸에 쌓여 들었고, 그 진동이 축적된 시간만큼 기쁨도 묵직했다. 고속의 질주는 목적지에 닿기 위해 풍경을 희생하지만, 느린 속도는 오히려 나를 풍경 속에 스미도록 했다.


투수 유희관의 느린 직구가 속도는 더디지만 그 느림이 상대의 방망이를 흔들듯, 슈퍼커브의 느림은 내 시선에 변주를 가져다주었다. 길가의 잡초 한 포기, 지붕 위에 앉은 새 한 마리, 논두렁에 앉아 담배를 태우는 노인의 주름까지, 모두가 내 여행의 일부가 되었다. 빠른 속도로 달렸다면 결코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풍경들이다.


안면도로 들어섰을 때, 저 멀리 바다가 트이고 그 위로 붉은 노을이 내려앉았다. 꽃지해수욕장에 이르니 두 개의 섬이 검은 그림자로 서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할아버지섬, 할머니섬이라 불렀다. 오랜 세월 파도와 바람을 견디며 마주 선 두 바위. 저녁노을이 바다를 붉게 덮자, 두 섬은 서로의 그림자를 맞대며 서 있었다. 여행자의 시선도 그 앞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느림은 세상을 더 가까이 당긴다. 빠른 속도에서는 스쳐가는 소음일 뿐이던 바람이, 느린 속도에서는 살결을 스치는 온도가 된다.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숨소리와 냄새와 질감으로 다가온다. 느림은 순간을 늘려, 기억을 깊게 새긴다.


슈퍼커브는 정직했다. 대단한 힘은 없지만, 그 느림으로 세상을 내 눈앞에 붙잡아 준다. 작은 엔진의 숨결은 오히려 길을 더 크게 보이게 만들고, 시간을 더 오래 머물도록 한다. 느림에는 분명 미학이 있다. 느림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그것은 가장 충만한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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