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과 섬을 잇는 길 위에서

[二輪紀行] ep. 08 영광에서 신안

by 최기훈
섬의 길은 끝나도, 바다의 호흡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그 호흡을 잠시 빌려 달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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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을 떠나 칠산바다를 지난다. 바다는 여전히 거칠고, 바람은 짠내를 싣고 불어온다. 연륙교가 생기고 나서 길은 바다 위로 놓였다. 옛날에는 뱃길이었을 곳을 이제는 오토바이로 달린다. 바다와 하늘 사이를 비행기인 듯, 배인 듯 가르며 물결 위를 지나간다.


무안 해제면을 건너 지도읍에 닿는다. 신안의 1004개 섬 가운데 읍소재지를 가진 곳은 드물다. 이곳 지도를 거치지 않고서는 임자도도, 증도도 나설 수 없다. 섬과 섬 사이의 관문, 바다의 교차로다. 지도읍은 생각보다 번화하다. 차량의 행렬이 바다에서 육지로, 다시 육지에서 바다로 이어진다.


길은 임자도로 향한다. 대광해수욕장은 이름 그대로 광활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사장이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난다. 그러나 내가 찾는 것은 이 관광지화 된 해수욕장의 질서정연이 아니다. 진리마을을 지나 남쪽 이흑암리로 간다. 그 길은 온통 파밭이다. 푸른 파가 사방에 깔려 있다. 바람이 불면 잎사귀들이 물결처럼 흔들리고, 그 물결이 바다보다 먼저 나를 휘감는다. 흙냄새와 풀냄새가 바람에 섞인다. 정원처럼 단정하면서도, 바다와 맞닿아 있는 야생의 힘이 있다.


다시 지도를 건넌다. 다리 위에서 바람은 사납게 몰아쳤다. 차선은 좁고, 좌우는 끝없는 바다다. 거센 바람이 헬멧을 강타하자, 순간 오토바이가 바람에 휘청인다. 순간, 길이 끊어질 듯하지만 다리는 끝까지 이어진다. 다리의 끝은 곧 또 다른 섬이었다. 엔진은 작은 숨결로 이어지고, 바다는 그 숨결을 받아낸다.


증도에 들어서면 태평염전이 펼쳐진다. 끝이 보이지 않는 소금밭이 햇살을 받아 하얗게 반짝인다. 재래방식 그대로 남아 있는 천일염은 바다가 증발해 남긴 흔적이다. 바다의 시간이 소금 결정이 되어 땅 위에 쌓인다. 수레바퀴는 쉼 없이 돌아가고, 햇살은 또 다른 소금을 만든다. 나는 오토바이를 세우고, 자연과 인간의 협동작업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짱뚱어다리를 건너면 끝없는 갯벌이 드러난다. 진흙 위에서 튀어 오르는 짱뚱어의 몸짓은 낯설고 생경하다. 증도 면사무소 소재지 주변으로는 짱뚱어요리를 파는 식당들이 줄지어 있다. 짱뚱어탕은 추어탕과 닮았으되, 국물에는 바다 냄새가 배어 있다. 밥상 위에서조차 섬의 바람과 흙의 기운이 느껴진다.


길 옆으로 상사화가 듬성듬성 피어 있다. 잎은 이미 사라지고, 꽃대만 홀로 서 있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곧게 선 자태. 계절의 고요 속에서 빛나는 꽃. 나는 괜히 흙먼지를 덜 일으키려 속도를 늦춘다.


섬과 섬을 잇는 다리 위에서, 나는 이 여정의 리듬을 배운다. 달리고, 멈추고, 다시 달린다. 바다는 길을 막기도 하고,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오토바이는 그 틈새를 숨 가쁘게 이어간다.


신안의 섬들을 오가며 나는 이곳의 호흡을 듣는다. 바다와 염전, 파밭과 상사화, 갯벌과 다리들. 그 모든 풍경이 하나의 맥박처럼 이어진다. 남도의 바람은 짙고, 바다의 향기는 오래간다. 이곳의 길은 화려하지 않으나, 바람과 바다가 늘 곁에 있다. 섬에서 섬으로, 나는 바다와 더불어 달린다. 느린 오토바이의 바퀴로 섬과 섬 사이를 하나의 길로 잇는다. 섬의 길은 끝나도, 바다의 호흡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그 호흡을 잠시 빌려 달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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