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맞아보면 정말 아픕니다.
아프니까 사장이다 커뮤니티에 쓴 글입니다.
오늘은 돈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4월 20일은 제가 기억하는 특별한 날입니다. 이날부터 한낮에는 반팔을 입어도 되는 날로 기억합니다. 이유인즉슨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봄 소풍을 가기 전에 엄마를 졸라서 반팔티와 운동화를 사러 갔었거든요. 1995년 당시 스포츠 브랜드의 가격은 물가에 비해 상당히 고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30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그 당시 에어조던의 농구화는 15만 원 이상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한 달 월급이 100만 원도 안 되던 시절이었죠. 저는 그전까지만 해도 운동화며 옷은 엄마가 시장에서 사주시는 걸 입었는데 중2 때 결국 엄마를 졸라 제가 원하는 리복 반팔티와 아디다스 운동화를 얻어 냈었습니다. 정말 필사적으로 엄마를 졸랐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합반은 아니었지만 남녀공학이었던 중학교에서 봄소풍은 여학생들과 어울릴 절호의 찬스였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여학생도 있었습니다.
왜 28년 전 오늘이 불현듯 떠올랐냐면요....
"아빠! 나 내일 소풍 가는데 가방이 없어!!!"
초등학교 4학년 딸아이가 내일 봄 소풍을 간다고 합니다. 가방이 저렇게 많은데 왜 없냐고 물으니 이쁜 가방이 없다고 합니다. 즉 봄소풍용 가방이 없다는 거죠. 아... 저에게도 피드백 시점이 왔습니다.
와이프는 자기가 등산 갈 때 가볍게 매는 사이드백을 살며시 내밀어 봅니다.
"엄마가 아끼는 건데 우리 딸 봄소풍이니까 특별히 빌려줄게~~"
우리 딸 입이 대빨 나왔습니다. 눈썹도 10시 10분을 가리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딸과 2학년 아들은 아직 아빠가 사업하다가 쫄딱 망하고 아빠도, 엄마도 신용불량자라는 것을 모릅니다. 집에만 있던 엄마가 일하러 가는 걸 보니 형편이 안 좋아졌다는 걸 큰 딸은 눈치챘겠지만 둘째는 아직 돈 개념도 없고 '우리 아빠 회사에서 100만 원도 넘게 벌어~~~'라고 친구들한테 이야기하는 수준입니다.
"부인아~ 큰 백화점 말고 집 앞에 작은 백화점은 밤 10시까지 하니까 우리 딸 데리고 가서 마음에 드는 가방 하나 사다 줘~"
저는 저녁부터 야간근무가 있어서 같이 갈 수 없어 와이프에게 딸의 봄소풍 미션을 부탁했습니다. 저는 운동화였는데 여자는 역시 가방인가 봐요.
근무 중 잠시 쉬는 시간에 와이프에게 전화가 옵니다.
"백화점 와서 우리 딸 마음에 드는 가방 골랐어!"
"얼마짜리 잡았어?"
"39,000원!"
"마음에는 든데? 혹시 마음에 안 드는데 어쩔 수 없이 이거라도 사자 분위기는 아니고?"
"아니 아니 마음에 쏙 든데... 그리고 다행히도 검은색으로 골랐어~!"
다음 주는 아들 봄소풍인데 동생에게 빌려주는 조건으로 사줬다고 합니다. 핑크색이나 빨간색 고를까 봐 와이프는 마음을 졸였다나요... 누나 가방 자기도 들고 갈 거라고 좋아하는 아들에게 미안합니다.
아들에게 미안한 것이 또 있습니다. 10년 전 예물을 도둑맞고는 집에 귀금속이라고는 아들 돌반지 하나가 전부인데 아들은 가끔 장롱 속에 반지를 꺼내어 자기 반지라고 자랑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남편아 이번달에 차도 사고 보험료도 내고 추가 지출도 있어서 월급날까지 힘들 것 같은데???"
(제가 지하철 타고 다니다가 영업 기동력을 높이려고 150만 원짜리 중고차를 샀습니다.)
둘 다 신용카드가 없다 보니 익월결제나 할부구입이 안됩니다. 그래서 큰돈이 나가는 달이면 급여일까지 돈맥경화가 가끔 옵니다. 예전에 장사할 때는 매주 화요일만되면 주말장사 카드값이 들어오니 길어봤자 일주일이면 자금융통이 됐는데 급여생활을 하니 한번 들어온 돈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하니 계획 없이 지출하면 정말 힘든 상황까지도 갈 수 있습니다. 신용카드 없이 말이죠...
"우리 아들 반지 팔자... 30만 원이면 월급날까지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와이프가 반지매각 제안을 했습니다. 결국 우리 부부는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가기로 하고 반지를 팔았습니다. 그러고는 297,000원 받았습니다.
13만 원은 아들 피아노 학원비로 보냈고, 10만 원은 마트 가서 장보고, 우리 딸 소풍가방 39,000원에 사고, 잔고 2만 원 남은 거 우유사고 시리얼 사니 몇 천 원 안 남았네요.
내일이 와이프와 저 둘 다 월급날입니다. 참 잘 버텼습니다.
17년간 신용카드를 사용했고 2년간 없이 살았습니다.
신용카드가 없으면 좋은 점도 분명 있습니다. 월급이 들어오면 어디에 쓸지. 가장 중요하게 필요한 자금 우선순위를 계획하게 됩니다. 최대한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려고 노력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짜 잔고가 구멍 나면 안 쓰거나 빌리러 가야 합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니 아쉬운 소리 하며 빌리는 것이 짜증 나서인지 계획을 보다 잘 세우게 됩니다. 그래도 잔고에 구멍이 나면 당근마켓에 안 쓰는 물건을 팔거나 배달아르바이트를 뛰던지 최대한 자체 해결 하려고 합니다.
"내일 월급 들어오면 제일 사고 싶은 게 뭐야? 딱 하나만 사자~!"
"나는 머리도 하고 싶고 옷도 사고 싶은데?"
"그래도 딱 하나만 정한다면?"
"그럼 운동화 살래~!"
(가방이라 얘기 안 하고 운동화라고 해줘서 고맙습니다.)
"나도 운동화 사고 싶은데 커플로 살까?"
"그래 내일 저녁에 abc마트 가자!!!"
없는 잔고에 버텨낸 게 웃프긴 하지만....
신용카드로 생각 없이 쓰다가 펑크 나면 리볼빙 하다가 터지면 신용대출로 막고 추가대출 안되니 집담보 사업자 추가대출로 메꾸고 그래도 안되면 캐피털로 막고 다시 그걸 카드론으로 막고 그것도 터지니 현금서비스로 돌리고 갑자기 줄어든 카드한도와 낮아진 신용등급. 은행에서는 기대출 과다로 추가대출 불가... 매출은 점점 줄어들고 비상구 계단에 쪼그려 앉아 줄담배만 피웠던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지금은 조금은 부족해도 돈 쓰는 것에 행복을 느끼며
우리 가족이 여전히 함께 한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저 오늘이 있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