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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궁이 Sep 28. 2023

구사일생(3)

생과 사

살아남은 자의 눈물


집사님께서 내일 오전까지 같이 있어 주시겠다고 하여 집사님께 동기단원을 맡겨둔 채, 정신이 혼미한 행정원 옆에서 밤을 새기로 했다. 집사님이 계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열이 펄펄 끓던 행정원은 Paracetamol(해열진통제)을 주입하면서 열이 조금씩 잡혀 갔다. 열로 2차 감염이나 합병증이 생길까 봐 걱정되니 내 입에선 간절한 기도가 절로 흘러나왔다. 눈물, 피와 땀 그리고 흙이 뒤덮인 몰골, 골절로 인한 통증을 호소하고 불안정했던 행정원은 주사맞으 금세 들고 깨서 통증이 조금 가라앉는지 기억을 더듬어 사고 경위를 말해주었다. 정면충돌 후 도로 옆  풀 숲으로 튕겨나간 것 같다 했다. 그리고 정신이 들 때마다 발가락에 감각이 없다고 자기가 많이 다쳤냐고 묻다가 운전사가 사망한 것이 사실이냐고 확인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행정원이 이곳에 파견된 후로 줄곧 같이 다녔던 현지인 운전사였는데, 첫 장기 출장 중에 그 친구가 사망했고 본인은 살아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괴로것이다.

그 운전사를 본 적 없는 나도 이렇게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픈데, 행정원은 오죽하겠는가?

잠에서 깰 때마다 울며 미안하다며 괴로워했다.

생각해 보면 너무 끔찍한 기억이고 큰 상처일 것이라 뭐라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아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너무 힘들겠지만, 지금은 많은 생각을 하지 말라고 말해 주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흙을 뒤집어쓴 행정원을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열을 내려야 하기도 했고 발끝 감각이 없다고 했기 때문에 수건으로 닦아내며 마사지를 살살해주며 감각이 어떤지 계속 물어보았다. 양쪽 고관절이 골절과 늑골골절, 척추손상까지 의심된다는 행정원의 상태는 오늘 밤 꼬박 살피는 것이 내 의무였다.

얼굴부터 팔, 다리를 젖은 수건으로 닦아 주고 더러워진 매트를 닦아냈다.


다행히도 밤까지 다른 환자가 병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진통제로 통증은 조금 가라앉고 있었지만, 골절 및 척추 손상부위는 여전히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기에 조금만 움직여도 큰 통증을 호소하고 고열도 완전히 잡히지 않았다.


모기도 많고 벌레도 많은 병실에서 모든 것에 예민해지는 밤근무였다.



드디어 후송


어느덧 아침이 밝고 예상보다 더 이른 아침 7시경에 김박사님이 오셨다.

외과의사이신 박사님은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특유의 투박한 말투로 내가 밤새 간호한 것에 대해 놀라시며 물수건으로 닦아주기까지 했냐며 사심 있는 것 아니냐는 재미없는 농담을 던지며 행정원 상태를 살펴보셨다.

긴장을 풀어주시려 한 농담인 줄 알지만, 초긴장 상태였던 나는 기분이 나쁘지도 그렇다고 전혀 편해지지도 웃고 싶지도 않았다. 사심이 아니라 사명감에 불타버린 나의 무덤덤한 반응에 멋쩍은 듯 바나나를 내미셨지만 거절했다.


잠을 한숨도 못 잤고 어제 점심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배가 고프지도 졸리지도 않았다.


본국 후송을 위해

일단, 사고 경위부터 초기 증상과 치료과정에 대해 알고 있는 나에게 수도 야운데로 같이 가자 하시니, 집사님께 내 짐과 집 열쇠를 드리며 부탁드리고 구급차에 올라탔다.


동기단원과 행정원을 함께 태운 구급차는 야운데에 있는 프랑스병원으로 향했다.  


오후께 도착한 병원은 현지에서 본 적 없는 깔끔한 현대식 건물이었다. 동기단원과 행정원은 도착하자마자 준비 중인 팀에 인계가 되고 여러 가지 검사를 받으러 갔다.


어제 하루가 공포영화 같다. 꿈이라 해도 믿기 힘든.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이곳에서 생사가 오가는 사고라니...


이제 긴장도 풀리고 마음도 조금 편해졌지만, 하루아침에 두 사람이 걸을 수 없는 외상을 입은 사실이 믿기지 않아 눈물이 계속 흘렀다.

내 탓은 아니지만, 내가 있는 바푸삼을 오다가 당한 사고라니 뭔가 모를 미안함에 이들 곁을 내가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어젯밤을 꼬박 지샌 것 같다.


검사실을 거쳐 병실로 돌아온 행정원은 몸통에 보조기를 채우고 양쪽 다리에 기브스를 단단히 하고 왔고, 진통제와 주사를 새로 갈아 끼웠다. 여전히 열이 있었지만, 어제보다는 더 나아진 것 같았다. 몸을 보조기와 기브스로 목부터 다리까지 고정시킨 행정원은 예전의 행정원처럼 말이 없었지만, 가끔 나를 불러 쳐다보면 눈에 눈물이 가득 차 있었다. 여전히 마음이 많이 아픈 것 같았다.


동기 단원은 긴장이 풀렸는지 몸 여기저기가 아프다 통증을 호소하면서도 애써 웃으며 안 죽은 게 어디냐며 여유를 부다. 


검사 결과 행정원의 상태는 보기보다 심각했고, 신경이 돌아오지 않는 것 때문에 주치의가 자주 오가며 신경검사를 했다.


아직 젊고 미래가 창창한 동기단원과 행정원이 봉사하겠다고 이역만리 아프리카까지 와서 돌이킬 수 없는 부상과 장애를 입지는 않을까 너무 걱정되었다.  부디 꼭 회복하고 재활해서 예전처럼 건강해지게 해달라고 기도할 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며칠 지나, 국제 SOS 후송으로 두 사람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바자매 동기단원은 치료만 받고 곧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 차 밖으로 튕겨나갔으면서도 자기가 제일 괜찮고 충격도 덜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 걱정되면서도 고마웠다.



남은 자


얼마 전 같은 말라리아 양성이었는데 뇌사상태로 일본에 실려간 대사관 직원이 생각났다.

다 말라리아 감염이었는데 그는 그렇게 되었고,

나는 감기 앓듯 지나갔다.

행정원의 운전사는 명을 달리했고,

행정원과 동기는 살아남았다.


삶을 이어가고 살아가는 것이 내 뜻과 의지가 전혀 아닌 분명 조물주의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누군가가 남겨놓은 시간을 빌려 쓰는 것이며, 그들이 다 하지 못한 일들을 하도록 남겨진 삶을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사는 것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한 선교사님이 이 소식을 듣고 하신 말씀이 마음에 남는다.

코이카는 참 좋다고, 이렇게 다치면 여기서는 그냥 불구가 되던지 죽는데 한국으로 데려가 치료해 주니 얼마나 고맙냐고. 선교사인 자신들도 그렇게 보호받지 못하는데 참 감사하다고...


그래 그러고 보니, 동기와 행정원 안전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그 사고로 다쳐 들어온 30여 명의 현지 환자들을 돌아보지 못했다.

불평등 속 생과 사.

같은 상황에서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는...

우리는 생에 속했으니 다행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남은 우리는

한동안 마음이 허전하겠지.

특히 우리 옆동네 바함도 조용하고 가끔 전화하던 동기가 그립겠지.



그래도 살아있어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니 그것만으로 감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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