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테이와 룸렌트 1

외국생활 초보백서 1-1

by 정하서


언제 고향을 떠났다는 걸 느껴요?




유학원에서 보내준 차량에서 내리자 평생을 아파트에서 살았던 내게는 완벽히 낯선 주택이 나타났죠. 그 모양이 아주 평범한 캐네디언 하우스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지만 당시에는 그 집이 어찌나 부잣집 같았는지. 늦은 밤이라 나를 맞이해 준 건 단단한 인상의 중년 남자였어요. 우리 아빠보다는 젊은, 아저씨 정도의 호칭이 걸맞은 남자. 홈스테이 파파.


반지하의 방은 아주 깨끗하고, 넓고, 쾌적했어요. 퀸 사이즈 침대에 조그마한 책상과 의자도 있었네요. 늦었으니 자고 내일 다시 인사를 나누자며 아저씨가 방 문을 닫고 나갔어요.


잘 잤겠어요? 그냥 멍하니 천장을 쳐다봤던 것 같아요. 한국과 달리 페인트 칠로 마무리된 그 천장이 어찌나 노골적으로 내게 소리치던지.


너 내일부터 혼자야! 잘해라!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어요. 그 당시의 우리 엄마는 늘 내가 잘나길 바랐거든. 그 유명한 K-장녀예요 내가.




네 가족이 사는 안락한 집이었어요. 아직도 기억이 나요.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3-4학년 남자아이, 중학교 2학년 여자아이, 그리고 엄마와 아빠. 요리는 항상 아저씨가 담당이었고 빨래는 아줌마와 일주일에 두 번씩 오던 이모님이 해줬죠. 돌아보니 부잣집이 맞긴 하네요. 여긴 인건비가 많이 비싸서 이모님 비용이 만만찮은데 말이죠.


두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며 저를 받아들였어요. 매달 혹은 몇 달에 한 번씩 새로운 사람이 반복해서 왔다 가는 상황이 익숙해 보였어요. 심심하다며 제 손을 끌고 나간 남자아이가 농구를 하자며 나를 잡아 두기도 했죠. 그 쉬웠을 말들을 못 알아들었던 내가 계속 대답도 못하고 삐걱거리자 흥미가 떨어졌는지 그 이후론 농구공을 가져온 적이 없었지만요. 여자아이는 그 나이대 아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새침했어요.


아저씨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보고 냄비로 만든 쌀밥을 주기도 했어요. 한식은 아니었지만 그게 어디냐, 아주 맛있고 감사하게 먹었어요. 그러다 첫 일주일을 처음 겪는 물갈이로 크게 앓았어요. 뭘 먹어도 화장실로 직행! 친절만 하던 아저씨는 처음 보는 증상이고 이전 학생들은 한번도 이런 적이 없다며 갑자기 자기네 수도 잘못은 아니다 하고 물러났어요. 네가 불편하다면 생수를 사 와 마셔. 라고 아주 단호하게 대화를 끝내버리고 2층으로 올라갔죠.


그때부터였어요. 유학원이 자랑스럽게 설명하던 것과는 어딘가 다르다는 걸 깨달은 순간.


고향집과 가까운 부산에서 찾았던 유학원은 토론토에 지부가 없었어요. 대신 대형 유학원과 파트너십을 맺어 학생 관리를 맡겼죠. 한국 시간으로만 대화가 가능했던 유학원은 토론토에서 생기는 어려움에 대한 도움을 받기 어려웠어요. 관광비자로 6개월 비자를 받은 20대 초반 어린 학생이 뭘 알겠어요? 약국도 돈이 무서워 못 가니 그냥 버티는 수 밖에.


겨우 설사가 멈출 때쯤 드디어 이 생활에 적응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홈메이드 페퍼로니 피자, 파스타, 눅눅한 쌀밥과 연어 스테이크, 구운 야채들. 엄마 반찬이 죽을 듯이 떠올랐지만 잇츠 딜리셔스! 웃으며 매일 이 가족에게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어요. 좋은 사람들이긴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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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아니었어요. 처음 홈스테이를 구할 때 여러 옵션이 있었는데, 필리피노 가정, 캐네디언 가정, 한국 가정. 가격과 음식, 규칙이 달랐고 저는 캐네디언 가정을 선택했죠. 영어를 배우러 가는 거니까 이곳이 가장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물론 캐네디안 가정도 집마다 분위기가 다를 수 있죠. 하지만 이건 확실해요. 캐네디언들은 친절하지만 그만큼 단호해요. 책임 소재를 따져야 하는 순간엔 더욱 그래요. 쉽게 말해 붙일 정이 없어요.


어느 날 학원이 끝나고 집에 와 저녁밥을 먹으러 부엌으로 올라왔어요. 아저씨와 아줌마가 집에 없었고 여자아이가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었어요. 요란한 하키 경기가 틀어져 있던 기억이 나요. 사실 이미 한 시간쯤 참다 올라온 참이라 나는 더 이상 주린 배를 견디지 못하고 여자아이에게 물었어요.


Do you know when papa come?


아이는 모른다 대답했어요. 난 또 물었어요. 디너는? 아이는 또 똑같이 대답하더니 2층으로 올라가 버렸어요.


I don't know.


별 수 있나요. 부엌 불은 사용금지라 컵라면 하나도 제 맘대로 끓여 먹을 수가 없었어요. 주위에 한식당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식당에서 영어를 쓰며 밥을 혼자 사 먹어 본 적도 없었죠. 기다리는 동안 과일이나 먹을까 하고 항상 비치되어 있던 사과를 씻고 우유를 꺼내 마시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어요. 거기 아주 잘 보이는 곳에 랩이 씌워진 음식 접시가 하나 들어있었어요. 내 이름이 적힌 쪽지가 위에 붙어있었죠.


네 맞아요. 아저씨는 내 저녁을 챙기고 아이에게 알려준 뒤 나간 거였어요. 그 아이는 왜 모른다고 대답했을까요.


홈스테이는 4주가 기본 계약 주기에요. 처음부터 여러 주를 계약할 수 있었지만 첫 4주를 살아보고 뒤를 결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 4주만 계약한 상황이었죠. 여러 일이 있었지만 나는 이 집에 계속 살고 싶었어요. 다른 집에 가 봤자 다를 것 같지도 않았고 집과 내 잠자리는 늘 깨끗했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또 한 번의 단호함을 마주해야 했어요.


우리 잘못이 아니야. 네가 유학원에 연락해. 우리는 4주 이상을 받지 않겠다고 처음부터 말했으니 널 계속 살게 해 줄 수 없어.


퇴실까지 겨우 한 주도 남지 않은 때였어요. 저녁을 먹으며 밝은 얼굴로 나는 여기가 좋아. 계속 살려고! 하는 나의 말에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손바닥을 미는 시늉까지 하던 아저씨는 곧 머물 곳이 없을 내 사정은 알바가 아니라는 말을 기본적인 예의만 곁들어 늘어놨어요. 그날 체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린아이들이 있는 푸근한 백인 가정의 홈스테이는 요란한 광고 문구와 달리 나를 보호하는 곳이 아니었답니다.


그렇다면 룸렌트는 날 안전히 보호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