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대고 깔짝대고 손을 번쩍 들어라

캐나다 학생비자로 미대에서 살아남기 2-4

by 정하서


언제 고향을 떠났다는 걸 느껴요?




Design 을 Desing 으로 써서 제출한 적이 있었어요. 알파벳 자리 하나가 실수로 바뀐 것뿐이지만 엄청 큰 차이잖아요. 디자인에 관련된 피드백을 마친 교수님도 스펠링 체크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며 디테일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언급하셨어요. 저는 대답했죠.


"마지막까지 디자인을 완벽하게 마무리 짓고 싶은 욕심에 스펠링 체크를 하지 못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다. 방금 언급해 준 디자인의 이런 저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콘셉트를 가지고 어떻게 진행했는데 잘 표현된 것 같아서 좋다. 나는 이러저러한 부분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이것저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


깔끔하게 인정하고 말을 돌렸어요. 당황했지만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했죠. 자꾸만 꼼지락 대려는 손을 아예 등 뒤로 보내버렸어요. 교수와 학생, 그리고 학생과 학생 사이의 비평이 중요한 캐나다 학교의 분위기 상 자신감은 중요도 1순위라는 걸 이젠 너무 잘 알았거든요.


저는 한국에서 2년까지 다니던 대학에서 자퇴해 캐나다로 왔어요. 그러니까 이미 한국어로는 대학생활을 해 본 상태였죠. 그 시절에 저는 무조건 발표를 맡는 학생이었어요. 애랑 조별과제를 같이 한다는 말은 얘가 당연히 발표한다는 말이었죠. 당연히 저도 처음부터 발표를 잘하진 못했어요. 1학년이 수강해야 하는 수업 특성상 조별과제가 많았고, 열심히 참여하지 않는 다른 조원 때문에 점수가 낮아지길 원하지 않았던 단순한 마음에 발표를 연습했죠. 대본을 써서 줄줄 외우고 질문에 대비하고 시선을 둘 곳까지 미리 정해두곤 했어요.


그래서 더 속이 부글부글 끓었던 것 같아요. 한국어로 하면 내가 얼마나 더 잘할 수 있는데, 고작 언어 때문에 매번 절절 매고 있다니. 1년이 넘게 온갖 사건들을 겪고 나자 자존심에 더 갈 금도 없었어요. 하지만 순식간에 캐나다인만큼 표현력이 좋아질 수는 없잖아요, 아쉽게도 전 천재가 아니니까요. 대신 어느 순간부터 그냥 부딪치기로 했죠.


질문 있는 사람? 교수님의 그 한마디가 나오는 순간, 손을 번쩍 들기 시작했어요. 발표한 친구의 프로젝트가 잘 이해가 안 갔다면 이러저러한 부분이 흥미롭다고, 왜 그런 주제를 선택했느냐 물었어요. 비주얼이 엉망인 친구에게는 색의 선택이 대담한데 폰트와의 관계성을 의도했는지 물었고, 박수가 나올 만큼 잘한 친구에게는 생각을 넓히게 해 주어 고맙다고 언급했어요. 할 말이 있든 없든 무조건이요.


4학년쯤이 되면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대략 좁혀져요. 같이 수강 신청을 하기도 하고, 휴학을 하지 않고 남은 학생들끼리 좋아하는 교수님을 골라 수강하는 과정에서 계속 마주치는 거죠. 취향과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말이니까요. 단점은 서로의 스타일을 잘 알게 되고 익숙해지면서 비평을 하기 어려워져요. 다들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니까 조심스럽기도 한 거죠. 그런 상황에서 '무조건 손들기'는 저만 변화시키지 않았어요. 고작 한 두 명이 손을 들고 비평을 하거나 언급을 하던 수업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죠.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서로 표현하기 시작하니 5분이면 끝났던 발표가 한 사람당 10분, 15분을 넘길 때도 있었어요.


캐나다는 가만히 있는 사람을 돌아봐 주지 않아요. 한국도 어느 부분에서는 마찬가지겠지만 이곳은 억울할 정도로 조용히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절대 빛을 볼 수 없어요. 심지어 학생 신분일 때도요. 지난 인터뷰 때 과제는 엉망진창이면서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고 했잖아요? 물론 점수가 높게 나오는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 친구들은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프로젝트나 도전을 시도할 때 그 화려한 언변 실력으로 교수님의 지지 혹은 지원을 받을 때가 있었죠. 열심히만 했던 저는 억울했지만 억울할 수 없었어요. 그 친구들이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참 이상하게도 언뜻 잘해 보였거든요. 아 물론, 시니어로서 학교를 벗어난 그 친구들을 인터뷰한다면 안 뽑겠죠, 이제는 학생이 아니니까요. 이 이야기는 다음 주제에서 풀어볼게요.




학교를 졸업할 때가 다가오니 취직을 걱정할 때가 되었죠. 아무리 당당하게 말하고 다닌 들 제 영어는 완벽하지 않았어요. 만약 제 옆에 앉아있는 캐나다인 친구와 제 포트폴리오가 같은 수준이라면 당연히 저는 떨어지고 옆의 친구가 붙을 확률이 높았죠. 그럼 캐나다인과 어떻게 차별점을 둘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을 좀 바꿨죠. 캐나다인 친구들은 하지 않는 걸 해보자! 전 곧바로 그 당시에 가장 관심 있게 들었던 강의의 교수님을 찾아갔어요. 타이밍은 막무가내 같았지만 실제로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대본을 짜고 할 말을 다 외워 갔어요. 최대한 예의 있게 직설적으로 물어보고 싶었거든요.


"제가 할 수 있는 걸 보여드릴 테니 만약 교수님의 회사에 자리가 있다면 절 고려해 주세요."


교수님은 당황하신 듯 잠시 말씀이 없으셨어요. 하지만 못내 아쉬운 듯 웃어 보이시며 대답하셨죠. 교수님이 운영하는 회사에는 현재 정말 자리가 없다고요. 대신 메일을 보내주겠다고 하셨어요. 그 메일에 뭐가 들었는 줄 아세요? 현재 인턴 혹은 주니어 디자이너를 구인하는 회사들의 인사팀 개인메일 목록이었어요.


한편으로는 무섭지 않나요? 같은 수업을 들었던 친구들 중 취업과 관련된 목적으로 교수님 방을 찾아온 학생은 딱 저 한 명이었어요. 그 해에 저 목록을 받은 사람도 저 한 명이었다는 말이에요. 나대고 깔짝대야 살아남는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 순간이었죠.




저희 학교의 졸업작품전은 토론토에서 아트 앤 디자인 무료 전시회로 제법 유명해요. 그래서 매년 수많은 인파가 방문하고, 또 재능 있는 학생을 스카우트하거나 인터뷰 기회를 주기 위한 구인팀이나 디자이너들도 방문하죠. 총 5일간 진행됐는데 기대했던 만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봐주셨어요. 그 옆에 서 있는 제게 작품이 어떤 의미인지 질문을 하거나 인상 깊었던 부분을 전해주기도 했죠. 이번에 그 당시의 제 졸업작품을 한번 찾아봤는데요, 작은 요소들에서 고쳐야 할 부분이 제법 보였어요. 주니어 디자이너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경험이 부족한 데서 나타나는 디테일이 아쉬웠던 거죠. 제게 말을 걸었던 업계 선배님들도 다 아셨을 거예요.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어떤 부분이 아쉬운지.


그럼에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서서 질문을 해 주고 대화를 나누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건 적극적이었던 제 노력이 한몫을 했다고 믿어요. 그런 경험을 또 언제 해보겠어요? 지난 온갖 고생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지나쳐갈 만큼 큰 발전을 해냈잖아요.


유학을 고민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딱 한 마디뿐이에요. 문제가 문제인 줄 모르게 하라고요. 언어든 실력이든 성격이든 교우관계든 교수와의 관계든. 한국과 한국어를 떠나온 순간 우리는 새로운 나라의 사람들보다 몇 배는 잘해야 해요. 맞아요, 힘들어요. 어쩔 수 없어요. 그런데 그러려고 나오는 거잖아요, 그렇죠? 조금 더 큰 세상을 보고 싶고 조금 더 다양한 세상을 보고 싶다면 조금 더 움직여야죠.


누군가가 제게 유학생활은 어땠냐 물으면 전 속으로 이렇게 대답하곤 했어요.


내 딸은 이렇게 살지 않길 바라요.


유학생활이 궁금해서 검색하다 이 글을 읽게 된 친구들이 편안하고 별 탈 없는 유학생활을 하기 바라요. 공부하고 과제하고 친구들과 맥주 마시러 나가고 가까운 소도시나 미국으로 여행을 가고 콘서트를 가고 취미를 가지고 운동을 하며 살길 바라요. 그리고 잊지 말아요. 언제나 가까운 곳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아는 사람일 수도, 모르는 어른일 수도 있지만 분명히 있으니까 겁내지 말아요.


언제나 한국 출신이 외국에서 제일 잘났다는 걸 기억해요!




[첫 장. 외국생활 초보백서] 완료!

1-1 홈스테이와 룸렌트

1-2 당신은 어학원에 돈을 갖다 바쳤다

1-3 영어를 빨리 배운다고? 제일 조심해야 하는 게 바로 연애!

1-4 당신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의외의 가까운 사람들


두 번째 장. 캐나다 학생비자로 미대에서 살아남기 완료!

2-1 한국어는 생명줄이야

2-2 Your Work is Disgusting

2-3 배움에 인종차별이 없다고? 아닐걸

2-4 나대고 깔짝대고 손을 번쩍 들어라


세 번째 장. 한국 출신이 외국에서 제일 잘났어

3-1 내 영어 인터뷰 속 문법은 다 틀렸다

3-2 MBTI요? 당신은 이제부터 그냥 E인 거예요

3-3 동료에겐 쉽게 회사에겐 어렵게

보너스 - 택스리펀을 이해하면 매해 200만원이 돌아온다


네 번째 장. 그래서 나의 고향을 되찾았을까요?

4-1 내 웨딩플래너는 보이스톡

4-2 웨딩 리셉션에서 제일 만취하는 사람은 바로

4-3 외국에 사는 나의 부모님

4-3 따뜻해진 토론토의 날씨 속에서 마무리하는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