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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울 Feb 21. 2024

헤어짐에 능숙해지는 법

유럽에서 생각한 것들

약 한 달간의 유럽여행을 마치고 왔다.

너무 길게 잡은 게 아닐까? 싶었던 걱정이 무색하게, 한 달은 아주 빨리 흘렀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삼일밖에 남지 않았을 때였다. 마치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친구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왜냐면 그는 얼마 전에 이별을 겪었기 때문이다..(이제부터 그를 이별맨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이별맨은 시차적응에 실패해 새벽 6시부터 일어나 와인 병나발을 불며 하소연을 했다. 다시 연락해 볼까.. 그러면 남아있던 정도 다 떨어질까.. 근데 좋은 풍경만 보면 걔가 자꾸 생각난다.. 이런 얘기 자꾸만 해서 미안하다.. 너무 안쓰러워서 그 얘기를 듣는 내가 다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유럽에 도착하고 5~6일 정도는 그 상태가 이어졌다.


우울해진 이별맨의 기운을 되찾기 위해선 뭔가 새로운 도파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린 새벽부터 유럽 여행 카페에서 동행을 구했고, 우리처럼 시차적응이 덜 된 것 같은 사람과의 점심 약속을 잡았다. 우린 둘 다 낯을 많이 가려서 이상한 사람이면 밥만 먹고 도망가자는 얘기를 하면서 약속 장소로 나갔다.

동행분은 우리보다 한 살 많은 혼여행객이었다. 우리 셋은 학센 맛집에서 고기를 뜯으며 이것저것 어색하게 대화를 나눴는데, 어느샌가 걱정이 무색하게 서로가 편해졌다. 걱정과 달리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기분이 들어, 이별맨도 들뜬 것처럼 보였다. 새로운 사람이 가져다준 도파민은 꽤 성공적이었다. 우린 밥을 먹고 즉흥적으로 카페에 앉아 몇 시간 동안이나 수다를 떨었고, 어느샌가 이별맨은 이별 고민상담을 하고 있었다.

한참을 듣다가 동행분이 내놓은 해답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환경도 너무 달라졌고 그래서 이성적인 사고가 어려울 것이라며, 순간의 감정에 휩싸이지 말고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웬만하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라는 말을 해주었다.


베를린에서는 사촌 누나를 만났다. 어쩌다 보니 누나와 '헤어짐'에 대해 얘기하게 됐다. 사실 우리의 여행에는 이미 헤어짐이 꽤 있었던 탓이다. 이별맨의 일과 동행친구를 만났던 일 말이다. 우린 여행을 하는 동안 그런 만남과 헤어짐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고, 헤어짐이 어렵다는 문제에 대한 결론은 항상 '우리는 정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는 거였다.

이별맨은 내가 사람을 너무 잘 믿어서, 금방 정을 주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내가 그랬나? 생각해 보면 난 그 사람에게 믿음을 갖게 되면 모든 문이 활짝 열리는 유형의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헤어지는 것도 어렵고.. (모두가 그럴까?) 상대에게는 그게 좀 더 쉬울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나는 항상 훨씬 그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쪽에 속했다. 몇 번의 여행을 다니며 많은 헤어짐을 겪어봤지만 언제나 그게 쉬웠던 적이 없다. 여행에서의 만남은 곧 헤어짐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게 두려워서 만나지 않으려 했던 적은 없다. 항상 끝에는 뭔가 아쉽지만 여행이 원래 그런 것이니 말이다.


누나는 우리의 고민을 듣곤, 할 수 있는 경험을 다 해보라고 말했다. 헤어지는 일은 항상 어렵고 낯설겠지만, 헤어지면서 우린 성장한다고. 헤어지며 배우고 성장한다는 건 처음 생각해 봤다. 그런 누나의 말이 멋졌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졌다.


헤어짐을 많이 해보면 그 일에 능숙해질 수 있을까? 그건 아마 천 번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을 일이다. 그냥 매번 즐거워하다가, 또 헤어질 때가 오면 마음 다해서 힘들어하고, 또 어느샌가 새로운 만남을 맞이할 수 있을 만큼은 괜찮아지고.. 그런 일의 반복이 아닐까 싶다. 여행은 그런 연습이 되어서 좋고 말이다.

 

(혹시나 헤어지는 일에 능숙하다. 나는 헤어짐 마스터다. 하는 분이 있다면 조언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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