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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울 Nov 01. 2023

하지만,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사랑은

"난 사랑이란 게 풍덩 빠지는 건 줄로만 믿었는데, 이렇게 서서히 물들 수도 있는 줄은 몰랐어"

내가 좋아하는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심은하의 말이다. 한눈에 반하는 사랑만 믿던 그녀는, 어느새 그녀가 절대 좋아하지 않을 것만 같던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 이런 말을 한다.


얼마 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태껏 그 사람 자체를 좋아한다고만 믿어왔는데, 문득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내가 바라는 그 사람', 그러니까 내 이상형이 투영된 누군가를 좋아한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완벽한 이상형이란 존재하는가? 물론 없다는 걸 알지만 때론 여전히 현실에서 그런 사람을 찾아 헤맨다.(누구나 그럴 것이다.) 가까운 사람은 있을 수 있지만, 완전히 부합하는 사람이란 찾을 수도 없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만든 이상향에 누군가를 끼워 맞추는 건 별로 좋지 못하다는 걸 알았다.


<루비 스팍스>의 남자 주인공은 자신이 쓴 소설의 주인공을 현실에서 만난다. 그녀는 그가 꿈꾸는 이상형 그 자체였기에 그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소설에서 튀어나온 여자가 점점 자아를 갖게 되며 그의 바람으로부터 멀어지자, 그는 고통스러운 방법을 써가며 그녀를 소설 속 인물로, 즉 그가 바라는 이상향으로 남기려 한다. 그리곤 마침내 고통스러워하는 여자를 보며 깨닫는다. '아, 저 사람 자체를 사랑해야 하는구나.'


인상 깊었던 리뷰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사랑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너'라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그러니까 나는 그런 사랑이고 싶다. 내가 만든 틀에 자유로운 상대를 가두어 성장을, 그 사람 자체로 빛날 수 있는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곽진언의 '자유롭게'를 들었다. 문득 이 가사가 이렇게 다가온 적은 처음이지 싶었다.

"나도 참 멍청하지. 너의 모든 걸 알고 싶어. 나도 참 염치없지. 너의 전부가 되고 싶어. 하지만 자유롭게. 하지만 자유롭게. 하지만 자유롭게. 저 멀리."

내가 너의 전부가 되지 못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네가 자유로웠으면 좋겠어.라는 말이 조금은 슬프게, 그리고 성숙하게 들린다. 나는 네가, 내가 바라는 네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너였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런 너를, 나는 사랑할 거야. 그런 말로 들렸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글을 쓴다. 난 아직도 그 사람을 모르겠다. 안다고 생각하면, 익숙하다고 생각하면 또 멀어진다. 처음엔 그 사람이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틀에 가두려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시작부터 달랐다. 나는 프린스를 좋아했고 그 사람은 너바나를 좋아했다. 나는 한 번에 꽂히는 재즈가 좋았지만 그 사람은 이해하기 조금 오래 걸리는 얼터너티브 음악을 좋아했다. 내가 오아시스를 들을 때, 그 사람은 블러를 들었다. 비슷하다고 생각한 사람도 이렇게나 다른 취향이었다. 그래도 뭐. 결국 난 네 덕분에 오아시스보다 블러를 더 사랑하게 되었고, 내 플레이리스트의 형태가 조금씩 변해가고 있지만 말이다.

처음엔 알고 싶어 조급했지만, 그 과정은 내가 모르던 그 사람을 계속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너를 바라볼 것이고, 너는 자유롭게 유영하면 된다. 그런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도 나를 그렇게 바라봐주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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