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미국의 한 대학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을 만나 제 직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족이나 친척 중에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도 자주 듣고 자기도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싶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저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한 번 시도해 보라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 중, 고등학교를 남들과 함께 같은 나이에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고 또 비슷한 시기에 취업을 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 자신의 직업을 찾아가는 과정은 다양합니다. 그리고 미국의 도서관에서 "사서(Librarian)"로 일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경우, 미국도서관협회에서 인증한 대학의 도서관학과, 문헌정보학과, 혹은 요즘은 정보 과학 학과, Information Science로 불리는 학과에서 석사를 받은 사람으로 지원 자격을 제한합니다.
한국에서는 학부에서 개설된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고 2급 도서관 사서 자격을 받으면 사서로 취업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학부에 문헌정보학과가 개설된 곳을 찾아보기 힘드니 대부분의 지원자들이 학부 전공을 다른 분야에서 하고 대학원 석사 과정에 문헌정보학과를 진학하여 학위를 받습니다. 그리고 도서관이 아닌 다른 곳에서 오래 일을 하다가 문헌정보학과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문헌정보학과 대학원 과정의 학생들을 보면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원에 진학한 학생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저와 같이 학교를 다닌 동기들 중에서도 다양한 경력을 가진 이들이 많았습니다. 해군 상사 출신의 전역자, 25년 경력의 트럭 운전사 - 돌아다니는 일에 지쳐 이제 한 곳에 정착하고 싶어 하더군요. - 소프트웨어개발자, 고전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라틴어와 희랍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던 친구 등등 그들의 경력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이미 도서관에서 석사 학위를 요구하지 않는 직종에서 일을 하고 있었지요.
그렇게 석사 과정을 마치고 취업을 하는데 대학교 도서관과 같은 연구 중심 도서관에서 특정한 주제를 담당하는 주제 전문 사서의 경우는 해당 분야의 학사나 석사 학위를 같이 요구하기도 하고 상당한 수의 사서들은 해당 분야의 박사 학위와 문헌정보학 석사 학위를 같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서(Librarian)”이라고 불리는 직종에 대해서 석사학위를 요구한다는 것이지 도서관에서 일하는 모든 직종에 석사 학위를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아울러 말씀드립니다.
미국에 존재하는 도서관 중에는 대학 졸업이나 고등학교 졸업장 만으로도 취업할 수 있는 도서관 직종도 있습니다. 전체 숫자를 두고 보면 오히려 그런 직종이 더 많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석사학위를 요구하지 않는 직종에 일하는 이들 중에도 석사 학위를 가진 이들이 많다는 점도 말씀드립니다. 저만 하더라도 처음 도서관 일을 시작할 때는 도서관학 석사를 요구하지 않는 직종에서 시작을 했고 점점 더 도서관 일이 마음에 들어 일을 하면서 석사를 마쳤으니까요.
도서관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도서관 사서들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도서관에서 직원을 뽑을 때 지원서들을 보면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혹은 책 읽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이런 식의 지원서를 내는 이들은 실제 도서관에서 일을 해 본 적이 없거나 도서관 관련 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일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사서들이 책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책 만 좋아해서는 사서가 될 수가 없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서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책과 함께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서들이 도서관에서 하는 일이 책과 관련된 것처럼 보일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은 책이라는 도구를 통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이 사서들의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사람을 좋아하는 이들,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그들을 이어주는 일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도서관에서 일해 볼 것을 권합니다. 조용하게 앉아서 책 읽는 것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도서관 일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많이 느끼게 될 겁니다.
도서관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던 20여 년 전, 저는 미래에 대해 여전히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도서관에서 하는 일을 정말 좋아했지만 원래의 제 전공과 그것이 주는 매력 역시 컸었고 그랬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구하기 힘든 특별한 자료를 찾고 있던 이용자가 있었고 그를 위해 6개월에 걸쳐 논문 한 편을 어렵게 외국에서 구해서 그에게 내밀었을 때 그의 얼굴에서 떠오른 미소가 제 미래를 결정지었습니다. 그 논문이 없이는 자신의 연구를 더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쁜 일이기도 했겠지만 그분의 미소와 고맙다는 말은 지난 6개월간 제가 들인 시간과 노력 이상의 가치가 있었습니다.
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그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그런 일로 월급을 받으니 이것보다 더 나은 일은 없겠다는 것이 제 판단이었고 그때 이후 20년 이상 그 생각을 가지고 이 일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점점 업무가 관리직으로 옮겨가면서 이용자들과 직접 접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싫어 직장을 옮기면서까지 이용자들과의 직접적인 연결을 찾고 있습니다. 그만큼 제가 믿고 있는 도서관 사서의 일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중매자의 역할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스페인 출신의 소설가 카를로스 루이즈 사폰의 소설 "천사의 게임"에 주인공이 한 권 한 권의 책에는 그 책을 쓴 사람, 읽은 사람, 그리고 그 책에 대해 꿈꾼 사람들의 영혼들이 들어 있다는 말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제가 도서관과 사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하는 대목이지요.
도서관에는 가지고 있는 장서만큼 더 정확히는 그 장서 숫자 몇 배의 영혼들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고 그들을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연결해 주는 것이 사서들의 역할입니다. 책이 좋아서 사서가 되고 싶은 생각을 가진 분들이라면 과연 내가 얼마나 사람들을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내가 책만큼이나 혹은 책 보다 사람과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면 과감하게 도서관에서 한 번 일해 보시라 권해 드립니다.
언젠가 미국의 도서관 협회 연례 콘퍼런스에 참석하셨던 한국의 사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그분이 하시던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미국의 사서들은 정말 행복해 보여요.” 미처 저는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일이었지만 그 말씀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미국에서 도서관 사서들은 누구보다도 자기 직업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설사 이상주의자, 몽상가처럼 보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그것을 꿈꾸는 이들입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비록 작고 보잘것 없어 보이지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이라 믿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믿음으로 지금의 일을 하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상에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꿈꾸고 행동하는 이들도 필요하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도서관과 사서들의 일은 투자 대비 수익률이라는 자본주의의 관점으로는 판단하기 힘든 일입니다. 왜냐하면 도서관에 투자한 것은 도서관 밖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수익으로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수익을 만들어내는 것이 도서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사서들입니다.
* 이 글에서 쓰인 이미지들은 뉴욕 공공 도서관의 디지털 컬렉션에서 다운로드한 사진들입니다. https://digitalcollections.nypl.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