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7세 어린이(미래 싱글맘 예정)의 꿈에 대한 이야기
어느 누가 자신의 불행을 예견할 수 있을까? 심지어 갓 입학한 따끈한 초딩이 말이다.
그날의 난 무슨 생각이었고, 왜 그렇게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장래희망을 현모양처라고 썼는지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그때의 나도 20여 년 뒤 싱글맘이 될 줄 몰랐겠지만...
적어도 내 기억에 우리 집안은 그다지 화목한 편은 아니었다. 울 엄마는 감정적으로 여리고 어렸고, 아빠는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의 종아리에 구둣주걱으로 피멍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 가정환경으로 본다면, 동경이었던 건지 내가 엄마에게 바라는 이상이었던 건지 가만히 고민을 해봤지만 도저히 그때의 내 의중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찌 됐든 수 십 년이 흐른 지금, 난 그때의 그 초등학생을 생각하면 눈물이 울컥한다. 그때의 나에게 이런 미래밖에 주지 못한 사연 때문이다.
참 이상하지 않은가? 정말 거짓 없이 눈물겹게 행복한데도 ‘지금의 나’는 ’과거의 어린 나‘에게 새드엔딩처럼 느껴진다.
이래서 스스로 내 인생은 멀리서 보면 비극,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고 생각했는지도.
요즘 난 아직도 마음이 여리고 어린 울 엄마를 위해 많은 대화를 하려고 노력한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무수히 많은 걱정과 생각들을 하시는 탓인지, 아님 이제 나이가 드셔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엄마는 어제 일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옛 기억도 많이 흐려졌다.
그런 엄마가 어느 날 뜬금 나에게 말했다.
“너 그거 생각나? 초등학교 1학년 때 장래희망을 현모양처라고 썼던 거. 난 그때 많이 놀랐는데... 맘이 좀 그렇더라. ”
그게 왜 놀랄 일이지? 그 옛날 일을 선명히 기억하는 엄마가 더 놀라웠다. 그러면서 내가 얼굴에 물음표를 가득 띄웠던 건지 곧바로 엄마가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엄마 눈엔 당시 내가 어른들 말도 잘 듣고, 눈치껏 똘똘하게 행동하고, 똑 부러지게 뭐든 해내는 장녀로 보였는지(내 새끼는 다 이뻐보인다.) 대단히 큰 포부를 가졌을 거라고 생각했었단다. 그런 모습이 엄마 본인이 어렸을 때 바라던 모습 같았다나, 뭐 그랬던 것 같다.
그런 첫째 딸의 장래희망이 현모양처라니... 남자의 뒷바라지나 하는 그런 모습을 꿈꾼다는 사실에 1차로 충격.
그리곤 또 본인의 부족함으로 인해 집안이 화목하지 못했으니 그로 인한 결여로 딸아이가 그런 꿈을 꾸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 마음이 싱숭생숭했단다.
엄마의 이야기를 쭉 듣고 나니 불현듯 내가 왜 현모양처라고 장래를 희망했는지 기억이 났다.
당시 나는 그 유명한 해리포터를 시작으로 책을 무척 좋아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각종 역사책과 위인전도 죄다 섭렵했었다.
그러던 중 흔치 않은 여성 위인인 신사임당(현 5만 원권 등재)의 이야기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나 또한 그런 여성이 되어야겠다! 하여 장래희망이 현모양처가 되었던 것이다.
엄마의 슬픈 마음이 무색하게도 난 나름 당찬 포부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지만 괜히 심술이 나 이 기억을 엄마에게 말하진 않았다.
어쨌든 결국 난 동경하던 신사임당과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도 같다. 회사에서 꽤나 인정받고 있고, (구) 남편은 처가살이를 했으며, 똘똘한 아들까지 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 신사임당은 사실 현모양처가 아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