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이 작다고 꿈이 작아지지는 않으니까
우리 가족의 역사에는 안타깝게도 ‘자가(自家)’라는 단어가 없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남의 집을 빌려 살았기에 이사를 자주 다녀야 했다. 내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 우리 가족은 17평짜리 임대아파트에 입주했다. 짧은 복도를 따라 안방과 작은방, 주방과 화장실이 나란히 연결된 아담한 공간이었다.
현관과 바로 맞닿아 있는 작은 방에서 나와 동생이 함께 지냈다. 싱글 매트리스 하나가 공간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협소한 방이었다. 그동안 계속 동생과 방 하나를 나누어 써야 했던 나는 늘 개인 공간에 대한 갈증을 품고 있었다. 그러다 동생이 결혼하면서 난생처음 온전히 방 하나를 차지하게 되었다. 나만의 공간을 남부럽지 않은 보금자리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예쁜 오브제들로 채우기도 하고, 가구 배치를 바꿔보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았다. 그사이 내 방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변태를 거듭했다. 하지만, 아무리 요리조리 꾸며보아도 작은 방의 크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 소소한 즐거움을 주던 나의 공간이 초라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남들은 직장에서 승진해서 높은 연봉을 받거나,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도 남을 나이에 여전히 엄마에게 얹혀 임대아파트의 작은 방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실패한 삶처럼 보일까 봐 두려웠다. 분명 나에게는 내 집을 마련하는 것보다는 더 중요한 문제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어엿한 작가가 되겠다는 꿈같은 것. 꿈을 꾸려면 돈이 필요했다. 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했고, 시간보다는 돈이 먼저 떨어졌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했고, 그사이 꿈은 멀어졌다. 그런 이상한 술래잡기가 계속되었다. 야속하게 멀어지는 꿈 옆에 자가 소유의 꿈도 함께 달리고 있었다. 아, 너무 멀고 비싸. 나의 꿈은, 우리나라 집값은. 이렇게 살다가 결국 집 없이 거리를 떠돌며 노후를 보내는 건 아닐까? 이런 상상의 끝은 늘 불행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러니 얼른 이 초라한 방을 벗어나야 더 나은 삶의 국면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이런 야심도 모르고 나의 작은 방은 오랜 시간 나를 응원하고 위로했다. 억세게 궂은날로부터 나를 안온하게 감싸주었고, 속상한 마음에 잔뜩 취한 나를 어둠으로 다독였고, 세상으로부터 사라지고 싶던 암울한 순간에 나를 감춰주었다. 내가 얼마나 자기를 도망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면서 늘 문턱 너머에서 다정하고 고요한 정적으로 주인을 맞이했다. 생각해 보면 무릎이 푹푹 꺾이는 순간이면 그 작은 방을 짚고 일어섰던 것 같다. 나의 방과 함께 맞이한 숱한 밤들이 있었기에 지치지 않고 꿈꿀 수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 방이란 고단한 심신을 달래주는 쉼터와도 같다. 더 큰 세상에 나아갈 힘을 충전하기에 나의 작은 방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어쩌다가 내 인생이 싫어지는 순간이 오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작은 방을 청소한다. 방을 쓸고 닦고 정리하면서 삶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도 다시 정돈한다. 작은 방에서도 얼마든지 큰 꿈을 꿀 수 있다는 걸, 자신의 공간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것과도 같다는 걸 나의 방과 나의 밤과 나의 꿈이 알려주었다.